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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ㅣ 경기문학 3
배수아 지음 / 테오리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 작가가 오랜만에 소설 신간을 냈다는 소식을 접한 날, 바로 구매를 눌렀다. 2016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선정작으로 단편 두 편을 함께 묶어낸, 시집만한 크기와 가격의 책인데, 한동안 번역에만 몰두하는 듯 보였던 작가의 새 문장에 목말라하던 나로서는 이 두께도 감지덕지. 단편영화 감독의 하루를 다루는 표제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과, 혼외자로 태어나 집안의 수치로 여겨져 금기시되는 인물 경희를 둘러싼 이야기 <영국식 뒷마당>, 두 편이 실려 있다. 감상을 한 구절로 요약하자면 '반복을 통한 평범의 비범화' 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표제작인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은 단편영화감독 험윤의 하루를 다루는데, 작가의 페이스북을 팔로잉 중인 나로서는 묘하게 작가 본인의 하루 일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얼마 전 그녀의 포스팅에서 읽은 것처럼, 욕조에서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작가의 모습이, "험윤이 가장 사랑하는 일은 미지근한 물속에 잠긴 채 책을 읽는 것이다."라는 문장 위로 오버랩 되기에. 곱게 간 커피 가루에 곧바로 끓는 물을 부어 천천히 식혀가며 마시는, 깔깔한 가루의 촉감을 즐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험윤의 모습도, 심플한 아침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균형잡힌 금욕적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도, 집안 곳곳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서로 다른 종류의 책을 비치해 두고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며 읽는 것도 모두 작가 자신의 하루를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은 묘사들. 디테일은 다를지언정 그 자족적 독립성은 분명 그녀의 모습을 상당 부분 카피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며 읽는 동안 즐거웠다.
소설의 도입부는 이렇게 꼼꼼하며 아무런 사건도 추가 등장인물도 없는 일상의 묘사로 채워진다. 유일하게 비일상적인 사건이라면, 험윤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이 분명한 누군가의 책을 집 안에서 발견하는 것 뿐이다.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정도의 비일상성. 그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를 읽는다. 아무 페이지나 펼친 것이므로 '밀레나'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다. 욕조의 물이 식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어느 여자, 밀레나의 이야기를 읽고 험윤은 밖으로 나간다.
이 부분에는 문체의 맛도 특별한 감성도 딱히 느껴지지 않기에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집중력이 풀리면서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문장들을 꼬박꼬박 다 읽어나가야 하는지 과감히 스킵할지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그저 읽어 나가다 보면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의 묘사일 뿐인 문장들'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반복이 거듭되면서, 시선을 끌고, 힘을 얻는다.
험윤이 아파트단지를 나갈 때마다 지나쳐야 하는 긴 낭하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곳으로 묘사된다.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아파트단지의 긴 낭하를 지나가는, 나가고 들어오는 활동의 묘사일 뿐이다. 그러나 아침에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낭하를 지나 시내로 나간 험윤이 그날 저녁 집으로 되돌아 올 때, 그 낭하는 여전히 같은 풍경이면서 동시에 같지 않은 어떤 것이 되어 있다.
"오전에 집을 나설 때와 같은 풍경이다. 어제도 그리고 그 전날도 항상 같았던 변함없는 집들의 풍경. 늦은 밤, 그의 발소리가 낭하에 유난히 크게 울린다. 손가락처럼 갈라진 커다란 이파리의 화분 그림자가 어느 집의 창가에서 흔들거린다. 고양이가 운다. 수도관을 흐르는 물이 운다. 귀뚜라미와 창틀이 여리게 운다. 긴 다리를 가진 밤의 거미가 운다. 방충망에 달라붙은 채 전 생애를 보내는, 투명한 날개의 회색 나방이 운다. 부유하는 꿈들이 운다. 그 모든 것들의 울음 소리가 낭하에 가득 울려 퍼진다."
낭하를 지나가며 귀에 들어오는 것들은 모든 것들의 울음 소리다. 그리고 그는
"아무와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에 대하여 묻지 않으며, 아무도 그에게 그에 대하여 묻지 않을 것이다."
그 날 하루 그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밤의 낭하를 울음으로 가득 찬, 스스로를 낯설게 만드는 의미 부재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아무와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일상성은 이 반복에서 비일상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작가는 여러 가지 이미지의 묘사를 반복하면서 그 때마다 조금씩 디테일을 더해 간다. 반복의 사이에 벌어진 일이 더해지는 디테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매일의 삶이 의미를 획득하는 방식은 익숙한 것들의 반복과 그 사이의 사건 간의 비관계성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일상의 반복을 채색하는 것이다. 아침에 험윤이 읽었던 '밀레나'는, 아무도 아닌 어떤 여자, 지극히 평범하여 존재를 특정할 수도 없을 만큼 평범한 여자, 단순히 '평범한 것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만남으로써, '아무도 아닌 밀레나'로서 그 '특정할 수 없음'으로 인해 '특별'해진다. 반복을 통해 평범함을 주목할 때 평범은 비범이 된다.
이런 반복에 의한 의미의 획득은 <영국식 뒷마당>에서도 동일하게 전개된다. 화자는 집 안의 혼외자, 뇌수막염에 결려 오랫 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가 친척들 집을 전전하게 된 인물, 경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경희에게서 처음 들은 말, "나는 마침내 영국식 뒷마당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 거야...... ." 라는 문장에 매혹되어 그녀는 금기된 경희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저 경희의 상상 속의 공간인 '영국식 뒷마당으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사건도 아니고 의미도 없지만 운율을 가진 노래의 후렴구처럼 소설 내내 반복됨으로써 그 동화스러운 신비함이 증폭되고, 실재 여부와 상관없이 화자와 독자를 매혹한다. "그것은 이상한 노래 같았고, 여러 가지 동화에서 한 조각씩 가져와 이어 붙인 연결되지 않는 만화경 같기도 했으며,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 같기도 했고, 미친 여자의 독백, 혹은 잠든 사람의 무의미한 웅얼거림, 혹은 고양이나 뻐꾸기의 울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매료시켰다." 는 화자의 독백은 이 소설이 의도한 독자의 심정이 아닐까. <영국식 정원>은 반복의 미의식을 탐구하기 위한 작가의 실험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영국식 뒷마당'이라는 이미지의 반복만으로 '이상한 노래' 같기도 하고, '연결되지 않는 만화경'이기도 하며,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 이나 '미친 여자의 독백, 혹은 잠든 사람의 무의미한 중얼거림' 혹은 '고양이나 뻐꾸기의 울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같기도 한 어떤 것을 창작해 보고자 한 실험.
배수아 작가의 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실험성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작품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채 식기도 전에 게걸스럽게 읽어내려간 문장들이 더 읽고 싶어 아쉬운 글들이었다. 다만, 짧은 길이의 탓이었을까, 조금 너무 실험적인 탓이었을까, 형용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예민한 감성을 발라내는 그녀의 솜씨가 살짝 덜 보인 느낌이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