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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ㅣ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아침에 먹은 안정제의 기운이 떨어지고 저녁 약을 먹기 직전 자정 무렵의 생각의 속도가 좋다. 너무 빨라 타이핑으로는 물론이고, 말로도 따라갈 수 없는 생각의 점핑. 여기서 저기로 핑 핑 날아다닌다. 술에 취하는 것처럼 생각에도 취할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은 밀도가 높아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미약한 정신으로는 따라갈 수 없어서, 박상미 에세이집 <나의 사적인 도시>를 뒤적거린다. 예술과 삶에 관한 저자의 전반적 견해랄까, 취향이랄까 하는 부분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예술작품과 작가들 속을 넘나들며 뉴욕에서 오래 타향살이 해 온 그녀의 독특한 경험이 잠깐씩 책장을 멈추게 만드는 통찰을 보여준다. 예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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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시간 개념이 없다. 그래서 과거를 지난 일로 취급할 줄 모른다. 의식은 시간이 갈수록 지난 일을 잊기도 하지만 무의식은 그럴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그 일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 속의 일들이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다양할 것이다. 아침을 괴롭히는 꿈일 수도 있고, 불면의 밤일 수도 있고, 엉뚱한 순간에 떨어지는 눈물일 수도 있고, 한쪽 입가에만 생긴 주름일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종이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원더풀한 단어들일 수도 있다.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우리가 지금 어떤 과거를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할 뿐이다. (176쪽~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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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있는 약이 기억에 약간 영향을 주는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뜬금없이 생생하게 최근의 일처럼 재생되고, 바로 하루나 이틀 전의 일들은 대개 한 달쯤 전의 일처럼 모호하게 흐리다. 심지어 한 순간, 예컨대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가 적었던 어떤 글과 같은 순간들이 통째로 편집되어 날아가버리고 전혀 기억을 못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일까. 저 구절을 읽는 순간 생애 어떤 때보다 무의식에 가까운 요즘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그 일을 '살고' 있는 무의식. '어떤 일도 잊지 못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유사 체험하고 있는 요즘, 공감이 가는 구절이다. 나의 경우 재연되는 기억은 주로 깊이 상처 받았던 순간, 처음 겪은 모멸의 순간, 당황과 수치, 배반과 분노의 순간들이다. 사무실에서, 학교에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그런 순간들로 소환당해 다시 한 번 배반당하거나, 상처받거나, 모멸과 자괴감에 주먹을 움켜쥐게 된다.
멍하니 생각 속에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읽어내려간다.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방대한 양의 예술 정보에 있다. 처음 만나는 화가, 시인, 소설가, 조각가, 팝아티스트들이 책장 사이 사이에서 반짝이며 독자를 기다린다. 그들이 소개되는 방식은 우아하면서 시적이다. 예컨대,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산책에 대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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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는 아무리 짧은 산책이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모험심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부모와 형제와 아내와 자식과 친구들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을 다시 보지 않을 생각이라면, 만약 빚을 다 갚았고 유언을 썼고 온갖 일들을 다 처리했다면, 당신은 자유로운 인간이다. 당신은 비로소 걸을 준비가 된 것이다."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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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나가 듯 가볍게, 어디 멀리 가지 않을 것처럼 턱 턱 집을 걸어나와 그대로 계속 걸어 사라지고 싶다. 나는 걸을 준비가 되었나. 언젠가 썼던 유언은 아직도 유효한가. 빚은 없고, 세금도 다 내었고, 꼭 처리해야할 일도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날 준비는 되었나.
잠시 손이 멈추었다. 다시 스스륵 책장을 넘겨 본다. 에세이집이라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가 없어 책상 한 켠에 두고 머리가 복잡할 때, 활자가 필요할 때 부담없이 읽기에 좋다. <깨질 수 밖에 없는>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와 꼼꼼히 읽어 본다. 월리드 베쉬티 Walead Beshty 라는 작가를 나는 처음 보는데, 그는 FedEx 상자 안에 꼭 맞는 크기의 육면체 유리 상자를 아무런 완충제 없이 넣어 전시장으로 배달시킨다고 한다.
출처: http://www.thisiscolossal.com/2017/01/fedex-works-walead-besh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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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랩 같은 보호막 없이 페덱스 상자에 꽉 맞는 육면체 형태의 긴장으로 버티는 유리 상자는 도착하면 물론 깨져 있다. 수없이 금이 갔지만 그 형태는 간직한 채, 어딘가 다다르기 위해선 반드시 깨져야 하는 무언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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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간직한 채, 어딘가 다다르기 위해선 반드시 깨져야 하는' 것이라...... 여기서 누구나 인생을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무수히 금이 가 형태를 유지하기 힘든 요즘의 나는, 아직 덜 깨진 것인지, 너무 많이 깨져서 힘이 드는 것인지, 얼마나 더 깨져야 할 것인지를 잠시 생각해 본다.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되었을 모험, 굳이 겪을 필요 없었던 사랑, 굳이 집착할 필요 없었던 성취들이 쩍 쩍 금을 내고 있었던 것일까. 아주 작은, 공기가 겨우 통할 만큼의 틈이라도 벌어지면 와장창 무너질 것 만 같다고 생각하며 훌쩍 책장을 넘기는데, 필립 로스의 책 <유령 퇴장 Exit Ghost>의 한 구절이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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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란 걸 상상할 수 있어? 당연히 못하겠지. 나도 못했으니까. 어떤 건지 전혀 몰랐지. 그림을 잘못 그렸던 것도 아니야. 전혀 그림이 없었던 거지. 아무도 상상해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아. 직접 당하기 전까지 원하지 않는 거지. 이게 다 결국 어떻게 될 거냐고? 둔감함이야말로 필수적이지. 내 인생보다 앞서 있는 어떤 인생도 상상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야. (중략) 중년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지. 하지만 노년은? 재밌게도 이 시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이 그 안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그 밖에 있게 되는 그런 시기야. 내내 자신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계속되는 활력 때문에 그 소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심지어는 완전히 독립된 것 같기도 하지. (중략) 그 객관적인 거리의 잔임함이야 말로 끔찍한 거야.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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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와아!! 하고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그 거리감이야 말로 끔찍하게 잔인하다는 마무리에 김이 샌다. 모르겠다. 아직 중년도 되지 않은 나로서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자의식과 함께 한 몸에 갇힌 느낌이고, 통계적으로 본다면 이대로 최소 수십 년 동안 더 이 룸메이트와 화해하고 어떻게든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모옵시 짜증난다. 자의식이라니.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단 건 어떤 느낌일까. 여기서 이렇게 행동하고 숨쉬고 있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통제불능의 느낌인 걸까.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뭔가 끔찍한 느낌일 것 같기도 하다. 노년이 오면 편안해 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금이 갈 일도, 그 금이 형태를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일 일도 더 이상 없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이렇게 발길 닿는 대로 산책하듯이 책을 탐독한다. 시종일관 밀도가 높은 것도, 가슴 저미는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자주 손이 가는데, 그렇다고 소일거리를 위한 책은 절대 아니다. 글, 현대미술, 패션, 음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이 정도 큐레이션을 이 정도 깊이로 경험할 수 있는 책도 드물다. 엄마 새가 먹이를 꼭꼭 씹어서 소화되기 쉽도록 만들어 새끼 새를 먹이는 것 같다. 저자만의 통찰력 있는 필터링으로 현대 예술은 의미불명의 잡동사니가 아닌, 세상에 대한 유일무이하고 재미있는 해석이 되고, 그로 인해 독서는 여유롭고 즐거운 산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