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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평점 :


사두의 나라 인도
이 책은 류시화 시인과 떠나는 인도 여행기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인도에 대해 전혀 무지 했던 청소년인
나는 그 책을 읽고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쳤던 기억이 난다.
인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갠지스 강, 카이스트제도, 부정부패, 핵 그리고 사두 정도 이다. 사두(Sadhu)는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의 생애를 보내는
요가 행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두가 인도에 천 만명 이상 있다고 하니 언제 어디서든 영적 스승을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인도는 면적은 세계 7위, 인구는
세계 2위, GDP는 세계6위이며
종교는 힌두교 80% 이슬람교 13% 그 밖에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 공식적인 언어만 18가지이고 방언이 1600가지에 이르는 나라다. 이러한 다양성이 한데 어울려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전세계의 유일한 나라인 듯 싶다.
저녁 5시에 출발해야 하는 기차가 다음달 새벽 5시에 출발해도 어느 누구 화를 내지 않고 신의 시간이 있음을 믿는 다는 인도인의 모습은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한국인은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인 듯 하다.
류시화 시인은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인도의 여러 부분들과 생각들을 보여준다.
지역을 상세히 설명하지도 일정을 자세히 공유하지도 않는다. 인물 중심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가운데 겪었던 사건 사고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그 매력이 너무나 반갑고 좋다.
외국인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이들은 저자가 배가 아파 볼일을 보기 위해 들판으로 뛰어들어갔지만 현지인 아이들은
외국인이 어떻게 뒤처리를 하나 보려고 죽 몰려와 반원을 그리며 앞에 선다. 저리 가라고 아무리 손짓을
해도 아이들은 어린 공작새 같은 눈을 뜨고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다. 휴지를 꺼내자 한 소녀가 작은
물통을 내밀며 더러운 종이를 쓰지 말고 물을 쓰라고 한다. 소녀의 정성이 고마워서 휴지를 도로 집어넣고
물로 뒤처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고백은 모든 것이 생생하게 눈에 그리듯 그려진다.
12년을 주기로 열리는 축제를 가기 위해 사전 예약을 마쳤지만 비행기의
착륙지연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만난 한 인도인은 좌절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여행을 계속하라는 충고를 한다. 결국 며칠 늦기는 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 친구들과 감격적으로
재회하고 12년 동안 벼르고 벼르던 마하 쿰브멜라 축제에도 참가해 새벽의 갠지스 강물에 무사히 카르마를
씻어 보낼 수 있었다고 밝힌다. 이러한 일들은 인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듯 한 저자의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더 인도를 신비롭게 여겨지게 만든다.
말도 안 되는 여인숙에 머물게 되자 불평 불만이 절로 튀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줄기차게 여인숙 주인은 마치 딴 세상 사람처럼 대답한다. ‘신이 준
성스러운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 하지 말라’ ‘그 대신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 하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무얼 얻을 수 있는가?’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등등.
어제 죽은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는 간디의
말도 인용한다. 마지막 결정타로 ‘당신은 지금 인도에 여행을
온 것이지, 불평을 하러 온 것이 아니잖소’ 그의 말은 세상이
어떠한가 보다 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듯 하다. 어찌 보면 궤변(詭辯)에 가까운 말도 곱씹어 생각해보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을 많이 하는
인도인들의 모습 인 듯 하다.
삼각팬티만 걸친 구루지는 저자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와 더불어 배낭 속에 아무도 모르게 넣어놨던 파파야 3개를 내놓으라고 당당히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서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 나타나 그대에게
배움을 주고 그대를 목적지로 인내하는 안내자들이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맛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이다.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된다. 메뉴판에 적혀 있는 것과 실제 주문 할 수 있는 것이 다른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인도의 식당 주인에게서도
이러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인도인 듯 하다.
당신이 만일 진정한 작가라면, 종이 위에 적어 놓은 메모들이 아니라
당신의 가슴에 새겨진 자신의 경험들을 갖고 글을 써야만 한다. 당신의 영혼 깊이 새겨진 진실한 경험이
아니라면 글로 쓸 가치도 없다. 머릿속에 한 순간 스쳐 지나가고 마는 그래서 금방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들을 갖고 글을 쓴다면 그것이 어찌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당신이 쓰는 글을 다른 사람이
읽기 전에 맨 먼저 읽는 사람이 당신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말라 당신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당신의 신이 맨 먼저 당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도 당신이
쓰는 글은 당신의 영혼에 맨 먼저 새겨질 것이고 신은 언제나 당신의 영혼 속에 새겨진 것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까지 45시간이나 걸리는 기차 여행 중 만난 글을 읽지 못하는 노인의 대화 속에는
작가 보다 더 본질을 꿰 뚫는 통찰력을 발견 하게 된다.
남의 말에 귀를 전혀 듣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끼고 있다. 타인이 말을
걸면 무조건 손사래를 친다. 어른은 전부다 꼰대 라고 생각하고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는 태극기 부대로
치부해버린다. 젊은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 가고 세대 차이를 넘어 이념 차이가 되는 것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인도에 수많은 사두가 있는 것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 누군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들의 특별한 상황과 종교의 역할도 분명히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통해 다시금 변화되고
새롭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 일도 발생하는 듯 하다. 류시화 시인의 오랜만에 인도 여행기를 읽고 나니
몽환적인 느낌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