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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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거리까지의 역사"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정확히, 1년 전이었을 테다. 같은 책을 다른 판본으로 들고 있었다. 버스 간에 앉아 오전의 찬 공기를 폐부 깊이 빨아들이며 앞으로 펼쳐질 중세의 세밀화에 귀 기울일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가독성이 뚝뚝 떨어지는 오래된 판본의 이 책은 나에게 고산이 되기 시작했고, 가을에 맞추어 완독을 하겠다는 일념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리고 1년이 되어 나는 다시, 이번엔 새 판본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인데, 순전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 저간의 사정은 여기 밝히지 않겠다)


 나에게 중세는 고대보다 멀게 느껴진다. 중세라는 어휘도 그렇고, 익숙하게 보거나 읽은 그 시절의 문화와 정치가 “끼여있는” 이질적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 대상화의 느낌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꿈 자리가 묘했다. 익히 썼던대로 “중세의 아우라가 거듭 출몰”하는 기현상이 내가 눈 감을 때마다 벌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부르고뉴 공국이며, 저자가 부각시키는 양 극단의 평화롭게(?) 공존하는 중세인들의 정신과 기사도적 이상의 민낯. 우주적 거리감을 주는, 영겁같은 무지막지한 우주 사이즈를 들이 밀 정도는 물론 아니고, 달 정도 되는 이질적 고향의 토질같은 것이 그 안엔 무궁무진했다.


 하위징아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기본적을 틀은, 중세를 르네상스와 명확하게 구별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고, 중세에 이미 발아하기 시작한 사상이 지금 와서 ‘르네상스’라 부르는 시대에 눈에 띄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중세는 우리가 매도하고 극복해야 할 단순한 타자가 아닌 것이다. 시적 어조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렇게 중세의 가을, 그가 처음 영감을 받아 자주 응시하였던 “깊어가는 저녁 하늘”, “진홍색으로 침윤되었고, 납빛의 구름들 때문에 위협하는 듯이 보였으며, 구리같은 가짜 광채가 가득”한 하늘에 대한 역사서이다.



 * 번역과 판형 등에 불만은 없지만, 출판사 측의 무성의로 오탈자와 띄어쓰기 오류가 남발하는 지경이다. 눈에 거슬릴 정도니, 책의 본새를 깎아먹는 주범이 돼 버린 것이 큰 아쉬움이다. 좋은 책을 내놓고도 칭찬받기는 글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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