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도 좋아
김병년 지음 / IVP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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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도 좋아』(김병년, IVP) 

讀後感思(읽은 후의 느낌과 생각)



인생이 어느 날 문득, 고통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돌연히 삶에 처 박혀 들어오는 것이 맞으리라. 고통의 대지가 삶의 구석에 붙박여 있는데, 거기 찾아가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길 잃은 낙타처럼 떠돌던 고통의 두 발이 약속 없이 내 삶의 문을 두드리거나 돌진해 들어오는 것이리라. 여기서 ‘문득’과 ‘약속 없이’에 내 응시는 오래 처한다. 

 고통과의 접점에 섞여 들어가게 되면 누구나 존재의 궁극 또는 존재의 결국이라는 타점을 잡게 된다. 거기엔 허무의 무미(無味)가 일정량 이상은 배음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동시에 희망의 좌표가 재설정되기도 한다. 내 정신에 박아 넣은 말 하나, “영화감독에게서 불안이 없다면 그려낼 이야기가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며, 희망이 없다면 형식이 없을 것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감독) 그리고 곁붙여 들여오는 인용...... 어쩌면, 신음. “삶의 불안과 우울은 내면의 거룩은 고사하고,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어둠을 불러내고 있었다.”(『바람 불어도 좋아』, 19면)

 김병년 목사의 『바람 불어도 좋아』를 거칠게 일독한 후, 1부 1장까지 다시 읽어봤다. “2005년 8월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리고 아내는 도무지 일어날 줄을 몰랐다.”(17면) 고통은 철저하게 몸의 이야기다. 몸에 뿌리 내려 정신에까지 몸피를 불린 검질긴 것의 이야기다. 이 책 역시 몸에 끼쳐 온 전면적인 난항으로 물큰해진 언어가 흘러나와 수렴된 ‘그 이야기’다. 부부라는 몸의 반쪽이 완전히 마비된 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남은 반쪽이 가족이라는 한 몸으로 살아냈고 살고 있는 ‘생활의 이야기다. 절반의 신경과 손으로 그려내는 자화상 연작이다. 

 거듭된 부정의 끝에 긍정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긍정의 경지가 아니라 긍정의 ‘순간들’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런 밝은 순간은 박하나마 온다. 이 책은 “그 순간적인 종합”(리 호이나키)에 제련된 언어로 쓴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더욱 솔직해졌다. 부박한 예의는 버리고 진중한 경의를 담아 쓰여졌다. 우리는 신 앞에 던지는 투정에 있어 동시대의 언어를 너무 적게 갖고 있다. 『바람 불어도 좋아』는 그 빈약한 자산의 곳간에 더할 만한 책이다. 왜인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책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유사 착취와 같다는 절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저 배우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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