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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교양의 탄생 - 명작이라는 식민의 유령
박숙자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인간은 비유적으로, 역사의 물길에 들어서 젖어 산다. 샛강이나 시냇물, 계곡 또는 급류일지언정 사람은 시간의 물기를 말릴 수도 털어낼 수도 없다. 역사를 다룬 모든 책은 몸에 묻은 물로 그린 그림이다. 박숙자의 『속물 교양의 탄생』은 조선 근대사의 정신을 수립한 교양의 진실을 묻는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많은 분량의 사실 문건들을 뒤지고 대조하며 해석의 칸을 채워간다. 조선 근대라 뭉뚱그려 부르곤 하는 우리네 과거의 정신 풍경은 ‘명작’ 또는 물질로써 책(정확하게는 명작 전집)을 통해 어떻게 우리 안으로 기입됐고 유통됐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과거의 정신 풍경이라고 했지만 고정된 시간의 풍경이 아니다. 과거로부터의 정신 풍경이 정확하며 이 책은 역사의 기억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의 풍경인 동시에 현재의 자화상이다.
교양은 일상 언어 장에서 개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 또는 지식의 양을 재는 단위일 뿐인가? 이미 동의하는 바지만 교양은 그렇게 쪼잔하지 않다. 교양은 “정신적이고 신체적이고 감성적인 것의 총체로서 시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누군가를 일러 교양이 있네 없네 할 때의 말은 판단하는 수준으로 쓰는 것이긴 하지만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성숙의 척도로 ‘교양’을 호명해 왔다는 것 자체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것은 교양이 “지성과 감성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와 커뮤니티를 품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진실이다. 하지만 ‘교양’의 가치와 자리에 대해 최소한 동의했지만 복원되어야 할 지점들이 많다. “교양이란, 교양의 척도란, 사회가 개인을 시민으로 키어낼 프로그램에 관한 문제이다. ‘학력’과 ‘자본’에 비례해서 소장되거나 과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같이 거주하는 이들의 감응하는 능력”이라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책은 매체이고 전통적으로 “교양의 전유물”이었다. 모든 책이 교양을 실어 나르는 데 유용한 것은 아니다. 흔히 일러 ‘명작’, ‘걸작’, ‘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벗하여 장수하고 쉬이 부서지지 않는 몸체를 갖춘 우람하고 듬직한 작품들이 교양의 퍼스트 클래스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명작은 ‘좋은 책’이어야 한다.아니, ‘좋은 책’이 명작이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에서는 세계문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유명한 책’이라는 세속적 가치로 변용”되었다. ‘명작’이 제대로 된 길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음’이라는 서구적 윤리학의 가치를 안고 있던 책들이 ‘길’이라는 동양적 도덕의 가치에 호응하지 않고 매개돼 건너왔다. 그 사이에 ‘명작’은 가공됐고 오해됐다. 그 결과로 식민지 조선에 도착한 ‘명작’은 기호로 남게 된다.
기호라는 껍질로만 남은 ‘명작’은 장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생활이 살갑게 굴 수 있는 것이 장소라면 전시적 가치와 모방적 값만 갖춘 ‘명작’은 백화점을 만들었을 뿐이다. 백화점에선 “전시물을 함부로 만져선 안 된다.” 만질 수 없는 눈의 선망의식은 욕망을 부채질하고 매개체로만 들어온 명작은 경쟁에서 승리하고 부를 걸머지기 위한 매개체로써만 쓰인다.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서재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서재는 개인의 교양 정도를 대번에 드러낼 수 있는 가시적 공간이다.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꽂혀 있고, 책상과 책장 등 서재 가구의 종류와 수준까지 개인의 수준과 취향을 드러내는 척도가 된다.” 서재는 죽은 책들에 기생한 욕망들의 밀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땅의 역사에서 서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근대 초기만 하더라도 서재는 학교를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서재와 서당이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충분하지 않아 각 마을에서는 ‘재래의 서재’를 이용해서 ‘강습소’로 바꾼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서재는 말 그대로 ‘책을 갖추어두고 읽거나 쓰는 공간’이지만, 근대에 이르러 책을 소장하는 개인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서재는 공공성을 (잃어)버렸고 교양도 공공의 가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교양이자 교양을 담는 그릇인 책은 철저히 상품이 됐다. 공적 장소였던 서재가 사적 공간으로 변용된 것과 같이 ‘개인’이 탄생했다. 그런데 단자화된 개인들은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존재 이전에 소비자였다. 책은 읽어야 할 것이 아니라 소유해야 할 것이 됐다. 자본의 세계에서 잠시나마 식민지 조선의 비극도 희석된다. “’전 조선 독자에 한하여 반가로서 제공키로 결정하였다’라는 결정이 일본 거대 출판사의 독자 서비스로 제시되면서 조선인들이 독자로서 특별하게 취급받는다”고 제공된“환상”은 일본제국주의의 대의보다 앞선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정언은 청소년을 위한 추천도서 목록을 만들고, 문학전집에 농축된 서구 중심의 명작 계보가 도서목록을 조각한다. “우리는 당연하게 <일리아드>와 <신곡>을 시작하는 세계문학을 상상하는데, 과연 이러한 기억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세계문학이 곧 서구 문학으로 동일시된 이 기억과 구성, 그리고 목록은 언제부터 고정된 것일까. 이런 의문 속에서 흥미로운 것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대중이 한결같이 ‘세계문학전집’을‘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으로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은 ‘세계문학전집’ 우리는 당연하게 <일리아드>와 <신곡>을 시작하는 세계문학을 상상하는데, 과연 이러한 기억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세계문학이 곧 서구 문학으로 동일시된 이 기억과 구성, 그리고 목록은 언제부터 고정된 것일까. 이런 의문 속에서 흥미로운 것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대중이 한결같이 ‘세계문학전집’을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으로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은 ‘세계문학전집’의 대명사처럼 통용되었다. 말 그대로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민족적인 공유 기억의 대명사처럼 통용되었다. 말 그대로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민족적인 공유 기억”이 됐다.
다시, 자본은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 국가도 활용한다. 일본이 대중잡지를 통해 반미 내셔널리즘을 고취시키는 것이 그렇고, 조선의 민중에게는 생존의 논리로 다가가 민족’의식’에 불을 당겼다. “가난한 백성은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를 ‘민족적 생존’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개인의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를 민족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적용하면서 속물적 인간형을 양산해냈다.” 비극적 인식을 카테고리 한 뒤 메커니즘을 조립하고 가동시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기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돌고 있다. 기계에 집중하는 응집력의 악순환은 국가의 무의식과 언어가 됐다. 그 앞에서 질문은“어떻게 플러그를 뽑을 것인가?” ‘속물’ 교양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근대성의 풍경에서 어쩌면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한다.
질문은 한 사람이 시작하지만 그것이 멀어질수록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돼 버린다면 하릴없이 세다가 잊고 말 하늘의 별만큼도 안 된다. 두 개, 세 개의 소실점으로 분화되고 그만큼 폭과 깊이를 확장해 갈 때 질문은 타인에게 인지되고 의미 있게 존재한다. 질문은 다음 질문을 불러온다. 질문하는 타자들의 공동체는 질문과 질문 사이의 답들이 기하학적 수순으로 발전하는 입체들이 조형한 다층 공간 안에서 숨쉬고 있다. “책 자체가 아니라 독서하는 커뮤니티를 매개하는 것, 그것이 명작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미 우리 역사 안에서 그러한 가능성이 있었으며, 그렇게 책을 읽었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했다. ‘좋은 책’으로 가는 역사, 그 역사가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질문들의 사이 장소는 이미-커뮤니티의 기억을 복원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박숙자 씨가 이 책 이후, 우리 역사 안에 이미 있었던 ‘좋은 책’의 역사를 연구하여 또 한 권의 책을 써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