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4
발터 벤야민 지음, 김영옥.황현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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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용의 실험"


 

 역사의 찡그림

 

 대도시에서 인간들이 맺게 되는 상호 관계들은〔∙∙∙∙∙∙〕청각 활동에 대한 시각 활동의 현저한 우위로 특징지어진다. 자유와 권리를 옹호햇던 자들은 나폴레옹 3세에게서 그가 자기 숙부로부터 계승하고자 했던 군인-황제가 아니라, 행운의 은총을 입은 고등 사기꾼을 보았다. (그의) 법은 풍자의 재능과 훈련을 갖춘 일군의 화가들을 일거에 정치로부터 몰아냈다. 포도주는 혜택 받지 못한 자들에게 미래의 복수와 지배의 꿈을 열어준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사회에 대해 다소간 은근한 반항을 품은 채, 다소간 불안정한 새벽 여명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영웅의 근대성

 

 현대는 자살의 기표를 통해 유지될 수밖에 없다. 자살은 적대적 정신 상태에 추호도 굴하지 않는 어떤 영웅적 의지의 근저에서 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러한 자살은 포기가 아닌 일종의 영웅적 정념이다. 영웅은 “근대성”의 진정한 주체이다. 영웅적 풍모는 그들이 대중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거대한 대중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데 있다. 보들레르는 영웅으로서〔∙∙∙∙∙∙〕떨어져 나온다. 보들레르의 고대성은 로마의 고대성이다. 그리스의 고대는 그의 세계에서 단 한 군데에서만 나타난다. 그리스는 그가 보기에 현대로 옮겨질 수 있다고 여겨졌던 여성 영웅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위고의 몽상의 기원인 파국의 고고학적 시상은 보들레르를 진정으로 동요시킨 시상이 아니다. 그의 견해로는, 아테네 여신이 손상되지 않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듯이 고대성은 손상되지 않은 근대성에서 일거에 솟아 나와야 했다. 인간에게도 역시 위대함과 태평함이 서로 일치하는 어떤 특수한 별자리가 있다. 그 별자리가 보들레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는 그 별자리를 해독하고, 그것을 “근대성”이라고 불렀다. 그가 정박지의 배들을 침잠하여 바라볼 때, 이는 거기서 하나의 비유를 거두어들이기 위함이다. 보들레르는 고티에처럼 자기 시대가 유쾌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으며, 르콩트 드 릴처럼 실망할 수도 없었다. 그는 라마르틴이나 위고의 인도적 이상주의를 걸머쥘 수도 없었으며, 베를렌처럼 신앙심으로 도피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 확신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얼굴을 둘러썼다.


“발자크는 커피로 몸을 망친다. 뮈세는 앞생트로 바보가 되어간다.〔∙∙∙∙∙∙〕뮈르제르는 정신병원에서 죽어간다. 바로 이 순간의 보들레르처럼. 그런데 그 작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많은 알레고리를 되풀이하지만 그것을 위치시키는 언어 환경의 덕택으로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그는 근대의 센세이션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 즉 충격 체험 속에서의 아우라의 붕괴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아우라의 붕괴에 동의한 데 대해 그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시이 법칙이다. 그의 시는 프랑스 제2제정기의 하늘에 “분위기 없는 하나의 별”로 떠 있다.『악의 꽃』은 산문적일 뿐만 아니라 도시적인 근원의 낱말들을 서정시에 사용한 최초의 책이다. 『악의 꽃』이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작품이 된 이유는 오히려 그 작품이, 동일한 위안이 무력해지고, 동일한 열정이 좌절되고, 또 동일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는 가운데서도, 조응이 축제를 벌이는 시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시들을 쟁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꽃들은 시의 손때를 입지 못해 그 생경한 빛이 눈에 거슬리는 신어들을 결코 피하지 않는다. 보들레르는 언어 그 자체와 음모를 꾸민다. 보들레르의 악마주의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다면, 보들레르에게 얼마 동안 비순응주의적 자세를 지킬 수 있도록 해준 단 하나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의견을 대부분 정언적(定言的) 형식으로 제시한다. 토론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내세운 앞뒤의 주장들 사이에 엄연한 모순이 있어 논쟁이 필요할 때조차도 토론을 피한다.


“도대체 왜 가난한 자들은 구걸을 하기 위해 장갑을 끼지 않는 것일까? 한 재산 모을 수 있을 텐데”〔∙∙∙∙∙∙〕“나는 ‘혁명 만세’를 부른다. ‘파괴 만세! 참회 만세! 순치 만세! 죽음 만세!’를 부르듯이. 나는 희생자가 되는 것이 행복할 뿐만 아니라 형리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혁명을 두 가지 방식으로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뼈 속에 매독균을 가지듯 혈관에 공화파의 정신을 지녔다."


 보들레르는 고독을 사랑했다. 그러나 군중 속에서 그것을 원했다. 보들레르는 작가의 진정한 상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거리산보자로 시장에 간다. 그는 관찰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벌써 구매자를 찾는 것이다.

 

 

 발가락의 굳은 살

 

 만보(漫步)는 파사주가 없었더라면 그만한 위력을 얻기가 어려웠으리라. 거리산보자는 군중 속에 버려진 사람이다. 군중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거리산보자(Flaneur)의 가장 고유한 관심거리이다. 대도시 군중은 그들을 처음으로 목도한 사람들의 내면에 불안과 적의 그리고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는 자는 쾌락을 추구한다. 그는 개성을 지닌 사람처럼 한가롭게 걸어간다. 그는 또한 전문가들의 산업 활동에도 저항한다. 1840년경, 한동안은 파사주에서 거북이를 몰고 산보하는 것이 품위 있는 일이었다. 거리산보자는 거북이 걸음의 리듬을 따라가며 즐거워했다. 진보가 그 뒤를 따라갔더라면 이 걸음을 배웠으련만. 육체를 찾아 떠도는 혼처럼 그는 제가 원하는 때에 다른 사람의 인격 속에 들어간다. 거리산보자는 관찰에 자신을 집중할 수가 있다. 그러면 아마추어 탐정이 만들어진다. 거리산보자는 이렇게 자기 의향과는 반대로 탐정이 되지만, 그에게 이 변신은 사회적으로 시의적절하다. 이 변신이 그의 무위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태는 겉모습일 뿐이다. 그 나태 밑에는 악한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 한 관찰자의 경계가 숨어 있다. 탐정은 이렇게 자기 자의식에 제법 넓은 영역이 열려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대도시의 리듬 템포에 적합한 반응 형식들을 만들어낸다. 한 사람에게는 알레고리의 이상야릇한 집합장,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음모가의 신비로운 고물 잡동사니. 


 도시인의 사랑은 첫눈의 사랑이라기보다 마지막 눈의 사랑이다.



 간주


 시선에는 그 시선이 향하는 대상에게서 응답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내재해 있다. 이 기대가 응답되는 곳에서는 아우라의 경험이 충만하게 이루어진다. 대도시인의 눈이 위험에 대비하는 방어기능으로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 원천으로 투영되는 소망을 충족해주는 무엇인가가 그림 안에 들어 있다면 이 무엇은 바로 이 소망을 끊임없이 키워낸다. 사진을 그림과 분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왜 사진과 그림 모두에 해당되는 포괄적인 ‘형상’ 원칙이 하나도 있을 수 없는가, 하는 것이 이로써 분명해졌다. 지칠 줄 모르고 한 편의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진의 관계는 오히려 굶주림과 음식의 관계나 혹은 갈증과 음료수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기억이라는 지문과 그 행간의 경험이라는 전통


 영화에 이르러서는 충격의 형식을 띤 지각이 일종의 형식적 원리가 되었다.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생산의 리듬을 규정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수용 리듬의 근거가 된다. 질적인 시간의 인정과 양적인 시간의 측량을 합친 것이 달력이라는 작품인데, 달력에서 사람들은 기념 축제일이라는 이름으로 회상의 자리를 말하자면 비워두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주저하지 않고, 흘러가버린 것은 “이지(理智)적 능력이나 그 영향권 밖의 어떤 실제적 대상 안에” 있다고 요약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죽기 전에 그 대상을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끝내 만날 수 없을지, 그것은 우연에 속하는 일일 뿐이다.”우리가 원래 무의지적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관조 대상의 주위로 모여두는 연상들을 그 대상의 아우라라고 부른다면, 그러한 관조 대상에서의 아우라는 사용 대상에서 연습으로 남게 되는 경험에 상응한다. 지난 19세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철학은 문명화된 대중의 규범화되고 변질된 일상적 삶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경험에 대항해 ‘참된’ 경험을 확보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을 행하고 있었다. 사실상 경험(Erfahrung)이라는 것은 집단생활이나 개인생활에서 모두 일종의 전통 문제이다. 경험은 기억(Erinnerung) 속에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Gedachtnis)의 산물이다. 물론 이러한 기억을 역사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베르그송의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경험을 역사적으로 규정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거부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무엇보다도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 문제의 경험에 근접하는 것을 피했다. 그의 독자적 철학은 바로 그 경험에서 생겨났으며 특히 그 경험에 반하여 형성된 것이다. 인간의 내면적 관심사들은 이것들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마련인 사적인 성격을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내면적 관심사들이 사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주위의 외적 사실들을 자신의 경험에 동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신문은 그러한 감소 현상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신문이 제공하는 정보들을 독자의 경험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데 신문의 의도가 있었다면, 신문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문의 의도는 이와는 정반대이며, 이러한 정반대의 의도는 달성되고 있다. 신문의 본질은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영역으로부터 제반 사건을 차단하는 데 있다. 베르그송의 말을 따를 것 같으면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인간의 영혼에서 없애주는 것은 지속(duree)의 현재화이다. 프루스트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이 믿음에서 그가 평생 과거의 것을 현재화하는 데 몰두할 수 있었던 어떤 명상의 상태가 생겨났다. 무의식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세포 속으로 뚫고 들어온 온갖 기억들로 가득 찬 과거의 것 말이다. 



 미래의 독자


 충격 체험이 규범이 되어버린 경험 속에서 어떻게 서정시가 자리 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그러한 서정시엔 고도의 의식성이 기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그러한 시는 그것이 창작될 때 작용했던 어떤 계획을 상상하게 만들 것이다. 예전의 관계를 정보가 대체하고 그 정보를 다시 센세이션이 대체하는 과정 속에, 점차 위축되는 경험이 반영되고 있다. 이 모든 전달 형태들은 그 나름대로 이야기(Erzahlung) 형태와 구분된다. 이야기는 사건을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보고자의 삶 속으로 침투시키는데, 그것은 그 사건을 듣는 청중에게 경험으로 함께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도자기에 도공(陶工)의 손자국이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에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게 된다. 우리는 충격 방어의 본래 업적을 궁극적으로, 사건의 내용을 포기하는 대가로 의식 속에서 정확한 시간의 지점을 사건에 지정해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성찰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일 것이다. 이 성찰이 사건을 하나의 체험으로 만들 것이다.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즐거운 경악 내지는 (대부분) 불쾌한 경악이 나타날 텐데,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경악은 충격 방어의 결락(缺落)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보들레르는 하나의 끔찍한 이미지 속에서 포착하였다. 서정시의 수용 조건이 열악해졌다면 그것은 서정시가 아주 예외적으로만 독자들의 경험과 관계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의지력이나 집중력은 독자들의 강점이 아니다. 대신 그들은 감각적인 향락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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