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마가리타 테레코바 외 출연 / 마루엔터테인먼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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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했던 것보다 지루하진 않았지만(아마 그건 상대적으로 짧은-1시간 30분 남짓-러닝 타임 때문일 것입니다) 예상 못했던 만큼 무서웠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볼 때도 종종 느꼈던 바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에는 좀 무섭고 섬찟한 구석이 있습니다. 엄마가 외출을 하고 집에 혼자 남은 아들이 갑자기 나타난 중년의 여자(검은 옷을 입고 표정은 무뚝뚝하며 말투는 차갑습니다)가 차를 마시며 아이에게 글을 읽으라고 합니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음산한(한낮이고 조명은 충분한데도) 실내와 쇠를 긁는 듯한 배경음 아래서 화면은 살짝 일그러져 보입니다. 아이는 푸쉬킨의 글을 읽는데, 잠시 후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아이가 나가보니 또 다른 여자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 안. 검은 옷의 여자는 사라져 있습니다. 타르코프스키가 그려내는 이 무의식적인 공포의 회화들은 제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한 축인 것 같습니다. 다만 넘어서야 할 축이기도 합니다. 
 
 17인치 컴퓨터 모니터로 첫 감상을 한 후 약 2주가 지났는데, 저는 이 작품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어 번 더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그 '두어 번'이 '또 두어 번'으로 늘어날 수도 있겠죠? 다만 이 후에는 좀 제대로 준비해서 Camera Obscura(어두운 방) 안에서 이 무의식의 영화를 정직하고 차분하게 보고싶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거울>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난해하고 사적인 작품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독의 무의식을 깊이 들여다보는 가운데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의 어린시절', '지금과 내 유년시절의 어머니'를 굴대로 삼아 모자이크처럼 흩어지고 모이는 영상시 <거울>은 극단적으로 사적이기에 공적인 작품이 됩니다. <봉인된 시간>에 썼듯이 <거울>은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호응과 상찬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타르코프스키의 비석 앞에 꽃 한 송이 아니면(디아스포라 유태인들이 하듯이) 돌멩이 하나 내려놓으며 "<거울>, 잘 받습니다, 고맙습니다."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갔으면 합니다. 그것이 이 어두운 시대에 제가 그려볼 수 있는 희망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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