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벤구르 을유세계문학전집 57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윤영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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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몇 문단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 먼 곳에서는 이미 고요해진 정오의 바람이 무테보 호수의 수면을 살랑거리게 했다. 드바노프는 말을 타고 물가로 다가갔다. 어린 시절 그는 여기서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시고 살았다. 물은 언젠가 그의 아버지를 깊은 곳에 안식시켰으며, 이제는 드바노프의 마지막 피를 나눈 동지가 좁은 땅속에서 고독한 수십 년이 세월 동안 그를 애타게 그리워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힘은 고개를 숙이고 제자리에서 발걸음을 옮겼는데, 발아래에서 뭔가가 방해를 했다. 드바노프는 아래를 살펴보고는 호숫가에서부터 말의 발에 걸려 딸려 온 낚시 도구를 발견했다. 낚싯바늘에는 바싹 마르고 부서진 작은 물고기 뼈가 걸려 있었다. 드바노프는 이것이 어린 시절 여기 놓아두고 잊어버린 자신의 낚싯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잠잠해진 호수를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였다. 사실 아버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의 뼈와 그의 살아 있던 육체의 물질들과 땀으로 젖은 셔츠 조각, 모든 생명과 우정의 고향 말이다. 그리고 저곳에서는, 어느 날 아버지의 육체에서 아들을 위해 분리되어 나간 그 피의 귀환을 영원한 우정으로 기다리는, 좁고도 더 이상 아무와 헤어지지 않아도 될 장소가 알렉산드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바노프는 프롤레타리아의 힘의 가슴까지 물에 잠기도록 물속으로 들어간 다음 말과 작별을 고하지도 않은 채, 생명을 계속 이어 가면서 말에서 내려 직접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언젠가 아버지가 죽음의 호기심 속에서 지나갔던 바로 그 길을 찾아서. 드바노프는 그 잔재가 무덤 속에서 지쳐서 쉬고 있는 약하고 망각된 육체 앞에서, 삶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걸어갔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르는 아직도 파괴되지 않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희미한 흔적을 따라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쉴새 없이 아름다운 문장이 흐르는 소설. 체벤구르의 체푸르니가 공산주의를 도래할 구원으로 기다렸듯이, 많은 독자가 이 소설을 기다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걷고 또 걸으며 이건 아니라고 여기며 속에서 자라는 질문을 수긍하여 뒤섞이며 플라토노프의 이 소설을 기다려온 것 같습니다.

 이것은 완성된 유토피아를 그리는 사회정치적 공상의 문건은 아닙니다. 적어도 오늘의 상식으로 체벤구르의 생활은 그것이 공산주의가 됐든 아니든, 낙원의 그것에 가까운 편이 아닙니다. 분명 깊고 진한 상흔을 남겼지만, 한번의 독서로 그 열기를 정리하고 참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간추리고 정리해보자면, "인류애를 짊어진 추구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한없이 맑고 순진한 정치적 행위는 가장 종교적"일 수 있다는 가정.

 정성일 평론가가 들려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이야기 중 그가 영화로 진로를 정한 계기는 그의 영화처럼 시적이었습니다. 당시 해양탐사를 위해 바다 속에 들어간 타르코프스키는 느린 물의 움직임을 보며 "이것을 카메라도 담고싶"은 영감을 받았고 애초 마음에 없던 영화로 정향을 하게 됩니다. 물의 흐름. 역시 정성일 씨가 밝힌 것이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는 물의 이미지가 주조음을 이루고 있죠. 플라토노프의 이 소설 역시 물의 소설입니다. 


 느리게 흐르는 물의 문장과 추구자의 고뇌가 당신 옆구리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 영감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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