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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 (2disc)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알렉산드르 카이다노프스키 외 출연 / 영화인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반복과 위로: (또) 실패한 자는 (또) 시를 읊조린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79)
소비하는만큼 소진되는 게 삶의 일반공식이 되어가는 시대에 축축한 몽상의 흐름을 짚어가는 영화<잠입자>는 이물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조용히 외출을 준비하는 남편(잠입자)을 만류하는 아내는 결국 남편을 막지 못합니다. 불구의 딸과 단둘이 남은 집 안에서 아내는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통곡합니다.
목적에 닿기 위한 여정의 식을 취하고 있지만 괴물도 없고('구역'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검은 개가 한 마리 있긴 합니다. 그 개는 털레털레 걸어 잠입자의 꿈자리를 맴돌며 내면의 풍경을 이루는 정물같습니다.) 치열한 싸움도 없습니다. 대신 불쑥 전화벨이 울린다던가, 폭포를 오래도록 보여준다던가, 꾸벅꾸벅 졸며 형이상학적 대화를 하는 장면들은 보기 드문 스펙타클의 조류를 불러일으킵니다. 공공연히 밝혀져 있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적 환희에 물들어 있는 예술가입니다. 일반서사공식을 버린다면 그의 영화를 충분히 즐기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영화 끝 무렵, 잠입자는 술집으로 마중 온 아내와 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진이 빠진 그는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약을 먹고 침대에 눕습니다. 어린애처럼 울며 이번에도 실패했다고,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 못한다고 한탄합니다. 이번에도 실패한 잠입자. 그의 딸은 밝은 방 안에서 시를 읊습니다.
잠입자에게 '구역'은 근원적 귀향이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끝내 상처만 입고 맙니다. 그리고 표면적 귀향일 뿐인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시를 욀 때 그곳은 잠시 '구역'이 됩니다.
저는 이 영화의 첫번째 감상을 이 식으로 수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