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 예상 외로 두껍고 흥미진진했습니다. 번역된 제목만 봐서는 야사 풍의 가벼운 입문서일 것 같았는데 오해였습니다. 꼼꼼하고 치열한 연구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스피노자를 흠모하게 되고 라이프니츠를 동정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화상을 본 것 같아 쓴웃음 짓게 됩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가 정치적 인간 라이프니츠와 닮았고 모차르트는 흡사 스피노자와 닮았습니다. 구도가 그럴 뿐 동일한 건 아닙니다.
먼저 라이프니츠. 스피노자라는 이단아를 적을 규정한 채 철학적 과업들을 수행했고 스스로를 철저히 안티-스피노자주의자라고 공언했지만 결국은 스피노자의 자장에서 철학한 ‘최초이자 최고의’ 스피노자주의자라는 게 저자의 해석입니다. 그는 사유하는 즐거움만으로 삶을 연명하기엔 세속적이었습니다. 기회주의자에 속물이었지만 비범한 능력으로, 빛나는 지적 유산을 남긴 이 못생긴 독일인은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그 많은 사람이 천재는 아닙니다.
다음으로 스피노자. 그는 여러모로 라이프니츠와 대척점에 있었습니다. 유태인이며 과묵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 내뱉는 말과 분위기에 담긴 특출난 지성, 유물론과 진보주의를 내장한 위험 인물, 게다가 검소하기까지 했으니 라이프니츠와는 정확히 거울상을 이루는 셈입니다. 책을 다 읽고나면 이 ‘철학계의 그리스도’(질 들뢰즈)의 단조로운 삶 안에서 빚어진 뜨거운 사유의 울림을 가만히 우러르게 됩니다. “어떻게 유물론자가 영적일 수 있는가?” 여기 스피노자라는 답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 모두 그 과정과 결과는 선연하게 달랐지만 인간이라는 본질은 동일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모순과 이율배반입니다. 우리가 모두 두 사람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수는 없겠지만 두 가지 삶의 양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조신과 이단자』(the courtier and the heretic)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