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말로 내용을 채워 넣는 강연록은 다루는 주제의 난이도가 높고 가파르다 해도 상대적이나마 쉽게 대할 수 있게 하는 점이 좋습니다. 그건 장점이자 단점인데, 쉬워지려면 단순한 동시에 논리적 비약도 감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중과 시공을 공유하며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강연에서 앞의 것들은 장단이라기보단 오롯한 색깔이 아닐까요?
 

 강연자 아타루는 읽기와 쓰기가 만들어 내는 ‘혁명’을 무한 지지하고 신뢰합니다. 여기서 방점은 ‘읽기와 쓰기’에 있는데, 본문을 따를 때 그것은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아타루가 “읽어버린” 철학자인 니체가 즐겨 쓰는 회임과 임신의 은유를 따라 개념의 어원을 훑어보자면 “철학은 개념을 낳습니다.” 영어 ‘concept’의 근저엔 ‘conceptus’ 곧 잉태된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회임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났는데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개념화로 산출된 개념인 것”입니다. 그 개념의 끝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라는 하나의 몸이 생성되고 어떤 식으로든 이 몸은 세계를 뒤바꿨습니다. “여성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강연자가 종교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매 강연의 알짬은 책과 혁명이지만 그 꼴에는 종교에 관한 일화와 해석이 우세하게 많습니다. 그 중 이슬람교의 뿌리를 되짚는 셋째 밤 강연은 생경하면서도 흥미진진했습니다. 마치 『천 하룻밤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문맹자였던 무함마드에게 읽으라고 하는 신의 역설적인 명령, 『코란』에서 잉태된 책의 개념 그리고 무함마드의 아내 하디자를 집중 조명하는 점에선 앞서 말한 “여성이 된다는 것”과도 직접 통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강연자는 자세한 논의를 건너 뛸 때마다 그의 전작 『야전과 영원』을 참고하라고 하는데 그 덕에 본서를 일독 후 가장 간절해지는 건 『야전과 영원』의 신속 정확한 번역본 출간입니다. 올해 들어 아타루의 책을 읽은 것이 저에겐 혁명이었습니다. 저 역시 사사키 아타루를 읽어버렸습니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고의 혁명이 아타루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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