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1
올해 서울신문의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은 진보경의 [호모 리터니즈]다. 화자는 어느날 등산길에서 우연하게 낙엽더미 속에서 죽은 '그'를 발견한다. 화자는 '그'의 신분증과 자신의 신분증을 바꾸어 넣고 '그', 정현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서른살이 넘은 무직자인 화자는 그를 탐색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며 정현수가 되어간다. 그러나 결국 화자는 정현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원래의 자기 위치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어느새 정현수의 지갑에는 자신이 꽂아둔 신분증 대신 전혀 모르는 또 다른 자의 신분증이 꽂혀있다.
누구나 지리멸렬한 자신의 삶이 싫어질 때 누군가의 다른 삶을 동경하지만 결국은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을까. 그것이 주제라면 이 소재는 타당하고 재미있는 설정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한 친구는 이런 소재는 이미 미국 드라마에서 넘쳐나고 있는 진부한 소재라고 일축했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이미 누군가가 설파했지만 이 작품의 문제는 진부한 소재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비슷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기량이 있었다면 괜찮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대한 심사평의 언급을 잠깐 보자.
당선작인 진경민(필명 진보경)의 ‘호모 리터니즈(homo returnees’)는 상상력의 진폭이 크고 안정감이 덜하며 우울한 상황을 담고 있으나,소설적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추동력과 적확한 표현력,그리고 현실과 탈현실의 관계를 가늠하는 균형감각 등으로 미루어 볼 때,장차의 성장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당선자에게 축하를,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는 다시 분발하라는 격려를 보낸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 중 하나가 '소설적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추동력과 적확한 표현력, 그리고 현실과 탈현실의 관계를 가늠하는 균형감각'이다. 내가 심사평을 꼼꼼하게 다시 읽은 이유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어떤 점이 뛰어났을까. 심사평을 읽고 나서도 내 의구심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작품의 어떤 점 때문에 심사평에 어깃장을 놓는 걸까?
이 작품은 철저하게 단단한 땅위에 세운 문장으로 되어있다. 이 말은 미적인 것보다 분명하고 현실감있는 문장을 추구했다는 말이다. 이런 면을 혹시 '적확한 표현력'이라고 했을까? 문장은 진지하고 엄숙하기까지 하다. 이토록 진지한 문장들이 왜 어설퍼보일까. 치열한 태도가 짐작되는 작가의 글쓰기( 이 작품도, 당선 소감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는 미안한 말이지만 좀 우스워보인다. 혹시 문장은 진지하고 현실적이면서 설정은 그렇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작가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야한다'는 설정에 강박증을 가진 것 같다. 어쩌면 깊이를 강요하는 것을 싫어하고 진지함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내 취향때문에 그렇게 반발하는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적이고 진지한 문장이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도 치밀하고 현실적이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마치 진지한 정장을 입고서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이제 몇 개월 있으면 신춘당선자들의 신작들을 읽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음 작품은 어떨지, 나를 감탄하게 할지,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