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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정부
자크 피에르 아메트 지음, 정장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2008. 11. 4
이 책의 표지는 만화 그림으로 되어있다. 화려한 꽃장식이 된 챙이 넣은 모자를 쓰고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연미복을 입은 남자 앞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다. 배경에는 연주자들이 멀리 보이고 그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여자와 남자가 마주하고 있는 장면을 베레모를 쓴 한 남자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만화 그림 밑에 이 장편에 대한 언급을 몇 줄 넣어놓았다.
현대 연극의 신화적 인물 브레히트의 삶의 이면을 형상화한 대작
브레히트의 앨범에 끼워져 있던 빛바랜 사진 속의 한 여인을 작가 아메트는 '마리아'라 이름한다. 정보부 지시로 브레히트의 정부가 된 마리아의 시선을 통해 연극계의 천재 브레히트의 감춰진 속물적 근성, 칡넝쿨처럼 얽힌 여자관계를 속속들이 밝혀낸다. 실존인물과 창조된 인물 사이를 넘나들며 브레히트의 삶의 이면을 생생하게 재현한 기념비적 명작.
자, 이쯤되면 읽지 아니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브레히트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책을 집었는데 나는 지금 그때의 내 행위를 낚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브레히트라는 이름 때문에 난 너무 브레히트에 포인트를 두었다. 이 장편을 읽으면 그에 대해서 알게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진 모양이다.
이 책은 브레히트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떤 작품을 썼는지,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궁금해서 선책할 건 아니다. 읽어나가면서야 나는 읽는 포인트를 바꿨다.
문화계의 권력자이자 지식인으로서의 한 인간 브레히트 옆에 사랑과 염탐을 하는 마리아 아이히라는 가공 여배우가 있다. 여배우의 배후에는 첩보부 한스가 있다. 마리아는 브레히트의 일거수일투족을 한스에게 알려주다가 서베를린으로 떠나고 이후 베를린은 동서로 분단된다.
현대연극을 상징할 수 있는 브레히트, 맑시즘의 선동자 브레히트. 이 작품이 브레히트의 그런 면들을 속속들이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떤 사상에도 편향되지 않은 불쌍한 여배우의 시선을 통해서 브레히트의 모순과 역설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미의 해설은 말한다. 브레히트에 촛점을 맞추고 읽을 게 아니라 무명 여배우와 권력을 가진 극작가, 당시 동-서의 상황, 개인의 모든 것을 이념이라는 이름하에 속속들이 주시하던 감시자들, 이기적인 여성편력가 브레히트와 여성편력을 묵인하는 아내 헬레네,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표지를 보면 마치 마리아라는 여인의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서 브레히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프랑스 콩쿠르상을 수상한 이 장편에 대해서 나는 처음부터 다른 시각을 가지고 기대를 품었으니 내 실망은 누굴 탓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자꾸 궁시렁거린다. 표지가 이게 뭐야. 책은 많이 팔려야하고 좋은 작품일지라도 일단 읽혀야한다. 그러나 너무 상술이 드러난 유치한 표지다. 아메트도 동의했을까, 이 표지를.
악의 작품이라면 이걸 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