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바야흐로 인간은 로봇을 반려자로 삼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이 진보를 거듭하는 동안 문자 언어는 갈 수록 퇴보하고 퇴보한 문자 언어 대신 음성 언어가 대체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의 감정은 단순한 몇 개의 패턴으로 남게 되고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을 유아적이고 수치스런 일로 여긴다. 새로운 문학 작품은 더 이상 발표되지 않으며(그럴 필요도 없으며) 기존의 작품도 더 이상 이해되지 않는다. 예술은 죽었으며 과학자들은 인간의 감정을 분류하고 재배열하여 마이크로 칩으로 로봇에 탑재시킨다.
그녀가 주문한 로봇이 도착한다. 일찌기 그녀는 로봇에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내는 축이었다. 그러나 벌써 이 로봇이 네번째. 첫 번째 로봇은 '부키언'으로 독서 전문 로봇이었다. 그 로봇의 엄청난 정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그녀는 열등감을 느끼고 중고도매상에게 넘긴다. 두 번째 로봇은 퍼피24라는 강아지 로봇이었다. 이미 삼십년 전에 멸종된 개라는 종을 로봇으로 재생한 거였다. 절대적인 애정을 퍼붓는 퍼피24, 그러나 그 애정은 조작된 애정이고 그녀는 그런 애정이 필요한 가련한 인간이라는 자각 때문에 되팔아버린다. 그리고 세번째 구입한 로봇은 섹스로봇 '러버 보이'였다. 그 로봇은 인간보다 더 만족감을 주었으나 일년만에 고장이 나서 발기불능 상태가 되어버린다. 수리를 하며 기다리는 동안 자괴감 때문에 그녀는 그 로봇을 포기한다.
이번에 구입한 로봇에게서 그녀는 친밀감을 느끼고 만족한다. 그 로봇은 자신의 이름을 아이반으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잘 생긴 아이반과의 생활을 즐기는 그녀는 일년째 되는 날 아이반의 생일축하 케이크를 사서 귀가한다.
아이반은 사실은 인간대신 예술을 창조할 예술가형 로봇으로 시험제작된 로봇이었음을 밝힌다. 사용자와 살면서 사용자에 대한 꿈을 꾸고 그 정보를 저장하여 일년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오늘 밤이 지나면 치명적 버그를 일으켜서 제작사로 반환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었다는 것이다. 꿈을 꾸지 않는 인간 대신 꿈을 꿀 수 있는 로봇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예술을 창조한다면 그 로봇에 시민권을 부여할 계획까지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로봇 제작사의 조작으로 일으킨 꿈의 테러는 인간이 꿈을 꾸지 못하도록 강제로 규제해야한다는 법령이 전 지구적으로 통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더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된지 오래다. 꿈이란 범죄와 악행의 근원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도록 수술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은 꿈에 모태를 두고 있다. 인간은 꿈이 없어진 후 상상은 불가능해졌다. 이드는 로봇이 제공하는 편의와 쾌락으로 충족하고 수퍼에고는 미약해져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감정은 '경멸' 뿐이다.
아이반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이반이 꾼 그녀에 대한 꿈들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는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한다.
"..나는 지금 인간을 해롭게 하는, 금지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늘밤 내가 한 이야기는 너를 공허하게 할 거야. 결핍되게 만들 거야. 그냥 이대로는 충분하지 않게 바꿔놓을 거야.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작용한다면, 넌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몰라."
합리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얼마든지 원하는 감정 대로 살 수 있는 진보된 세상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바로 무언가 공허하고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이대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도록 바꿔놓고 싶은 것이 바로 그녀에 대한 아이반의 애정이었다. 무언가 결핍을 느낄때 어쩌면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이반은 기대한다. 아이반과의 마지막 날 밤에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로봇없이 생활하는 첫날 그녀에게 꿈이 찾아온다.
이 작품은 2007[내일을 여는 작가] 여름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