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0

 

  • 나는 내 방 책상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창 밖을, 어둑어둑해진 골목길과 가로등을, 꽃잎이 모두 떨어진 목련과 장독대를, 녹이 슨 자전거와 비 맞은 야구 글러브를, 화단 한켠에 놓인 쥐덫과 오래 전부터 비어 있던 개집을, 불 밝힌 교회 십자가와 밤하늘 카시오페이아를, 눈이 아플 때까지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보는 것도 지겨워지면, 수학공책 뒷장에다가 무언가를 끼적끼적,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 없이, 갈팡질팡, 적어나갔다.



    꽃이 폈네, 꽃이 졌네,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야, 어쩌자고 또 임신을 했다더냐, 글러브가 웃는다, 글러브야, 글러브야, 어서 빨리 페달을 밟으렴, 쥐가 쫓아온단다, 쥐에게 잡히기 전에 개집으로 숨으렴, 해피는 아빠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란다, 아빠 뱃속에서 부활해, 저 하늘 카시오페이아가 되었단다, 카시오페이아가 내려와 목련꽃을 피웠으니, 해피가 목련이구나, 해피가 폈네, 해피가 졌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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