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학 작품 속에 사랑처럼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진부한 소재다.
진부한 얘기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는 데에 소설의 비극이 있다.
롤랑 바르뜨(나는 그를 잘 모르는데 이렇게 말하면 바르뜨가 화를 낼까)는
사랑의 메카니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의 권력 관계는 현실의 권력 관계와 정 반대다.
현실에서는 주는 자가 권력자지만
사랑에서는 받는 자가 권력자다.
사랑을 주고도 비탄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사랑이야 말로 자본주의 원리에 가장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고진씨도 용서하시압)은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실연의 아픔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읽어보지도 않고 나는 아는 체...)
"<한>여자로 대치할 수 없는 <이>여자를 잃는 것이 실연이다.
<이>여자로 사랑이 시작되고
<이>여자로 상처받고
그리고 드디어 <이> 여자가 <한>여자로 바뀔 때 실연을 극복할 수 있다."
<이>여자는 단독성이지만 <한>여자는 복수성이다.
첫사랑의 소설 구조는 패턴화 되어있다.
싹틈-엿보기-접근하기-이별하기
이 네가지 과정을 거친 후 성인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첫 경험은 사라지고 일상의 경험(안일, 권태)만이 남는다.
권여선의 [사라을 믿다]는
<이 남자>에 대한 사랑이 어느덧 <한 남자>에 대한 옛 이야기로 바뀐 후의 이야기다.
그래서 화자는 좀 더 냉정한 거리를 두면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사랑이 전부라고 믿는 순간 사랑은 거짓말이 된다.
사랑에 빠지면서 보지 못하는 '사소함'을 정말 보게될때 비로소 사랑이 된다.
사소함의 의미를 발견할 때 비로소 사랑의 존재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김연수의 [첫사랑]을 볼까.
나는 갑자기 한 마리 나비에 현혹되지만 죽이고 만다.
나는 정인을 보는 순간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때리고 만다.
사랑을 욕망했지만 그 사랑은 얼마나 훼손되기 쉬운 것인가.
모욕하고 비난했던 술집 누나 혜지를 통해 비로소 나는 사랑을 알게 된다.
김인숙의 [모텔 알프스]도 첫사랑이 어떻게 변질되고 아픔이 되는지 보여준다.
사랑은 본래 접촉이다.
접촉할 수 없는 사랑도 사랑일까.
러브호텔을 반대하는 시위대들도 있지만
"사랑을 어디서 하란 말이야"라는 사장의 말을 듣고
나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모두가 모텔에서의 섹스를 더럽고 추잡한 것으로 비난하지만
사장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장과 시어머니, 그리고 늙은 고양이를 절묘하게 동일시시킨 것도 인상적이었다.
첫사랑을 다룬 작품들
전경린의 [첫사랑]
성석제의 [첫사랑]
배수아의 [그 남자의 첫사랑]
김별아의 [첫사랑]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