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의 행방불명.  

감독 신재인  

출연 조현식, 예수정, 문슬예, 우준영 더보기 
   


신성일이 행방불명되었다고?

 

라면서 이 글을 클릭했다면, 나와 같은 전철을 밟는 거다. 고3(씩이나)이 된 딸이 갑자기(자기는 갑자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별렀다지만)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그 영화 제목이 바로 [신성일의 행방불명]이다. 요즘 잊혀져가는 원로배우 신성일이 등장하는 무슨 영환가 싶었다. 신성일은 물론이고 엄앵란도 안나온다.

 

이렇게 이 영화는 제목부터 뒷통수를 때리며 나를 끌어들였다.

주님의 뜻에 따라 천사들을 돌본다는 원장의 말도 이중적인 생활로 관객의 믿음을 뒤집어버린다. 원장은 식탐은 죄라는 인식을 고아들에게 세뇌시켰고 아이들은 먹지 않는(고로 싸지 않는) 주님을 닮기 위해 배고픔을 부끄러워하고 인정하지 않으려하며 고통스럽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해결한다. 침대 밑이나 버려진 냉장고 속이나 재래식 화장실에서.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해결해야하는 싸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인식이 심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슬쩍 해치우는 주식은 '초코파이'하나와 '우유'한 팩. '초코파이'는 그동안 광고에서 '정'을 내세웠고, 영화 '집으로'에서도 '정'이라는 이미지가 잡힌 빵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아이러니다. 그토록 금기시하는 '먹는 행위'를 원장이 몰래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안 먹고 어찌 살 수있나. 근엄하고, 따뜻하며, 폭력도 쓰지 않는, 늘 인자한 원장. 영화가 진행되면서 진정한 따뜻함과 진정한 폭력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 또 특기할 점은 유머와 익살이다. 영화가 시작하자 난데없이 목소리가 등장해서 '이 영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오마주도 아니고...'라고 일러주질 않나, 잊었던듯 얼른 음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져왔다고 덧붙이지를 않나. 이런 생소한 장치들이 기존의 영화 상식을 뒤엎었다. 전혀 원래의 이름과 닮지 않은(오히려 그 반대의 이미지인) 신성일이나 김갑수,이영애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나오는 자막처리도 웃음이 나온다. 예를 들면 '신성일의 배(주린)에서 천둥치는 소리'같은.

 

한 번도 먹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보지 않은 우리들은 영화속의 아이들이 불쌍할 따름이지만 바로 이어서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들이 '수치스러운 일'이나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분류하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왔던 것에 대해. 그동안 철썩같이 믿었던 인식들이 잘못된 인식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고아원의 체제를 경험하지 않은, 새로온 고아 이영애는 공개된 장소에서 밥을 아무렇지 않게 먹어서 원생들을 당혹하고 수치스럽게 한다. 뿐만 아니라, "웃겨, 아까 식당에서 먹었잖아(원장이). 그 뭐야, 그거랑. 가자민가? 넙적한거"라고 외친다.

 

영화관을 가는 동안 딸이 독립영화라고 내게 귀뜀을 해주었다.독립영화의 정의가 무언지도 모르는데. 나는 나름대로 독립영화는 상업적인 영화하고 대척점에 있는 영화겠거니 짐작하면서 영화관을 들어섰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설땐 딸이 고3인 것도 잠시 잊고, 야, 우리 2편이랑 3편도 꼭 보자, 했다. 이 영화는 장편영화의 1편인 것이다. 2편은 [김갑수의 운명]이고 3편은 [심은하의 잠적].

 

얼마전 본 [왕의 남자]에 실망해서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영활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왕의 남자]가 세간의 화제가 되어서 그에 대한 글들을 곳곳에서 심심치않게 볼 수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나를 영화관으로 이끈 것은 이준익 감독의 글 중에 이런 부분이 있어서였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술가보다 생활인을 더 존중한다는 뭐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말에 혹해서 영화관으로 갔는데 다 보고나니, 여론 몰이에 나 또한 함께 놀아난 느낌이 참 고약했다. 내가 영화의 수준을 가늠할 위치도 아니고 나의 이러쿵저러쿵 궁시렁 거리는 소리에 귀기울일 사람도 없겠지만 하옇든 내 성에는 차지 않았다. 사극도 경극도 가부끼도 아닌 것이 눈길 잡는 요기와 장치를 영악스럽다할 정도로 영리하게 엮은 영화같았다. 기대를 하고 봐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신성일......]은 뜻하지 않은 행운을 건진 것처럼 흐뭇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