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다. 오늘 읽은 [다섯째 아이]가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작품이다.

 

처음 도입 부분은 지루했다. 처지에 맞지 않게 많은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고 호텔 규모의 주택을 역시 처지에 맞지 않게 구입한 헤리엇과 데이비드는 주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산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부부는 아이를 계속 낳는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면 이 커다란 집은 몰려온 친척들과 북새통을 이루며 긴 파티의 나날을 보내고 헤리엇은 지쳐간다. 그러면서 가족의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헤리엇이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는. 
 

다섯째 아이는 임신기간에 벌써 특이한 점을 보이면서 헤리엇을 힘들게 한다. 헤리엇은 자신을 죽이려는 괴물을 잉태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여덟달 만에 태어난 아이는 아이답지 않은 면모를 보이며 온 가족으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 아이로 인해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자 했던 부부의 삶은 쑥대밭이 된다.  

지루한 처음 부분이 지나자 나는 이 책을 결코 놓을 수 없었다. 도깨비나 괴물이 틀림없다고 여기는 아이 벤 때문에 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헤리엇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던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아팠다. 우리 모두 외면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 속에 숨어있는 잔인성을 돌아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 여자로서 무력하고 고독한 헤리엇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녀의 다른 작품 [황금빛 노트들]을 어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