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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되고 달이 되고 ㅣ 해달별 옛이야기 1
이퐁 지음, 유승하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새로운 형식의 옛이야기 책이다. 그동안 수많은 어린이용 옛이야기 책을 보아왔지만, 사실 새롭게 기획된 책이라 할 만한 건 별로 없었다. 구전돼온 옛이야기를 작가 나름대로 해석하고 요즘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말맛을 살려 다시 쓴, 이에 걸맞은 좋은 그림을 넣은 훌륭한 옛이야기 책은 많이 있다.(물론 이런 경우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허접하게 재화되고 축약되고 모방된, 옛이야기의 가치를 오히려 훼손한 옛이야기 책이 훨씬 더 많고 이게 어린이책 출판계의 크나큰 문제지만.) 거기까지도 충분할 수 있지만, 옛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한 또 다른 형식을 새롭게 고민하고, 옛이야기에 담긴 다양한 역사-문화적 맥락이나 상징, 오늘날의 의미, 옛사람들의 지혜 등까지 아울러 들려주는 책은 그다지 없었다.
옛이야기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 역사-문화적 의미까지 탐색해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양한 공부와 감식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해설서 같은 게 어른용 책으로는 나와 있다. 하지만 어린이용으로는 옛이야기 자체만 담은 책이 대부분이고, 그것도 일정한 축약이 불가피한 그림책으로 나온 게 많으며, 책 말미에 한두 페이지짜리 딱딱한 해설이 담긴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그간의 어린이용 옛이야기 책들이 지닌 한계와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된 책으로 보인다. (1,2권을 같이 두고 보면)해와 달, 별이라는 대표적인 상징물을 다룬 옛이야기들로 소재와 주제를 한정한 다음, 그 안에서 여러 이야기를 일정한 맥락을 형성해 소개한다. 이 맥락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별도의 캐릭터와 무대가 설정되고, 이들이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그 안에서 옛이야기에 대한 여러 해석, 거기에 담긴 옛사람들의 지혜, 상징의 의미 등을 만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옛이야기와 그에 대한 해설을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게 한 데 담아 들려주기 위한 형식을 갖추었고, 옛이야기를 소비할 타깃 독자라 할 유년기나 저학년 아이들에 맞추어 글이 서술되고 편집, 디자인되었다. 이름난 만화가를 기용해 만화 형식을 중간중간 넣은 것은 좋은 전략이다.
옛이야기의 깊고 깊은 심층적인 의미까지 끄집어내 들려주는 인문교양서 대신 어른도 이런 책을 읽어도 좋을 거 같다. 초등 고학년이나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깊지 않은 안전한 냇가에서 물놀이하는 것도 충분히 신나고 재미있듯 옛이야기를 깊지 않지만 딱 재밌게 누릴 수 있는 수준에서 들려주는 이 책의 효용은 분명해 보인다.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고 싶은 독자는 이 책을 발판 삼고 그다음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될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면서 옛이야기의 재미난 세계로 초대되면 좋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소개된 각 옛이야기의 원전을 자세히 밝히지 않은 점이다. 참고한 책들은 책 말미에 소개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딱 어느 각편을 활용한 건지를 밝히는 건 중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다양한 구전 각편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재화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