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도서관 사계절 저학년문고 33
박효미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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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떻게 읽을까 무척 궁금한 책이다. 사실 표지나 제목이 지닌 매력이 크다. 곤란한 표정으로 어렵사리 뻔한 일기를 쓰고 있는 표지 속 아이는 '삶'과 '글쓰기'에 대한 통찰 없이 억지로 거짓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이들을 대표하기에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일기'라는 아이템 자체가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부모들에게도 그렇고 무언가 이야기될 만한 거리를 끝없이 생산해내는 것 가운데 하나이니,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보고 작가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 그 두 세계를 넘나드는 일차원적인 세계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유아기 아이들, 취학 전 아이들이 공감해서 볼 만한 '유년동화'가 아니다. 분명 어느 정도 소설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는, 현실에 대한 명백한 인식이 전제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세계와 판타지세계에 대한 작가 나름의 인식과 함께 작품 안에서의 판타지적 리얼리티, 내적 진실 같은 것이 확보되어야 맞다.

 

헌데 이 작품에 나오는 '일기 도서관'과 '일기지기'라는 판타지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설정된 인물은 마치 현실세계에 '실재'하는 공간과 인물인 양 서술된다. 현실세계에 사는 민우뿐만 아니라 벼리와 담임선생님도 그 판타지공간과 인물을 현실공간과 인물인 양 만나고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이는 그 학교, 아니 그 학교 밖 사람들도 누구나 다 그 판타지공간과 인물을 '실체'로 경험할 수 있음을 뜻한다.) 현실세계와 판타지세계의 경계가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설정되어 있고 그 두 세계의 관계에 대한 나름의 장치가 작품 안에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게 없이 그냥 떡하니 현실세계에 실존하는 판타지공간를 그려놓았으니, 그 판타지공간을 '실체'로 이해해야 되나 '뻥'으로 이해해야 되나.

 

결국 작가는 그저 판타지공간과 인물을 설정만 해놓았지, 그것이 현실세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렷한 대답을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제시하지 않은 채 작품을 끝내버렸다. 아무런 단서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단순한 생활이야기로 끝내버린 것이다. "이런 게 있어!" 하고 자기 상상을 글로 표현해놓았을 뿐, 그 자기 상상에 대한 나름의 해명이나 리얼리티 확보를 위한 노력 없이 "그냥 그런 거야!" 하고 독자에게 강요하고는 발을 싹 뺀 꼴이랄까.

 

작가는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판타지공간을 현실세계 안으로 가져와서 그 경계를 허물어버려도 된다고, '동화'란 그래도 되는 거라고 오해한 것 아닌가 한다. 그 오해 덕분에 자기 작품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문장에 현재형과 과거형 어미가 섞여 나오면서 기본은 현재형으로 가는 듯한 표현이 좀 거슬리고 어색하다. 아참, 의문 한 가지. 민우는 벌 서는 것 때문에 도서관 청소를 하는데, 칭찬만 받는 벼리는 왜 만날 도서관 청소를 하는 거지? 벼리가 원래 그곳 청소 담당이고 민우는 벌로 그곳 청소를 돕는 거라 해도 납득이 안 된다. 어차피 둘 다 같은 청소를 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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