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고 싶은 날
정유경 지음, 조미자 그림 / 창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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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동시집을 읽어도 사실 '와, 좋다!'고 여긴 동시집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정유경 동시집 [까불고 싶은 날]은 읽고 난 감상이 '와, 재밌다!'였다. 예전에 읽었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니 마찬가지로 좋고 재밌다. 그리고 요즘에 동시단에서 어린이 화자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서 그런지 의미 있게 읽혔다. 어린이 화자를 참 잘 설정하고 그 화자의 목소리를 참 효과적으로 담아낸 동시집이랄까. 화자가 어린이로 설정된 시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단점들을 이 동시집의 작품들은 꽤 잘 극복해 간다. 그래서 나로서는 김미혜 동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과 함께 어린이의 목소리를 잘 담아낸 동시집으로 이 동시집이 꼽혔고, 그래서 좋은 동시집의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고 싶다.

 

그리고 수록작들이 꽤 고른 성취를 보인다는 점도 인정할 만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흔히 시집 한 권에서 그야말로 참 좋은 시가 네다섯 편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고른 수준의 좋은 시를 써내고 그걸 한데 묶어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겠다. 또 사람마다 감동받거나 공감하는 시가 다를 테니 시집 한 권이 온전히 여러 독자를 두루 만족시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뜻도 있겠다. 하지만 적게는 40편, 많게는 60편 정도의 시가 실리는 시집에서 네다섯 편만이 남는다니, 독자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까불고 싶은 날]은 읽고 나서 그러한 아쉬움이 없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어떤 어떤 시는 이 시집에 담지 않는 게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 시편도 있지만, 그 몇몇 편 말고는 꽤 고른 성취를 보인다고 봤기 때문이다. 시편들이 각각 자기 색깔을 띠는 걸로 보아 지루하게 반복되는 느낌 없이 고른 수준을 보이고, 또 그러면서도 그 전체가 모여서 이 시집만의 색깔을 만들어 냈다고 할까.

 

또 이 동시집이 좋은 동시집의 한 가지 모습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흔히 동시집에 실리는 종류의 동시들, 그러니까 귀여우려고만 한다거나, 말의 유희에 몰두한다거나, 풀이나 나무 얘기에 빠진다거나,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교훈적인 잔소리로 일관한다거나, 구체성 없는 관념으로만 흐른다거나, 요즘 아이들은 거의 모를 시골 얘기만 한다거나, 벌레나 동물을 한없이 불쌍해한다거나, 독특하다 싶은 발상 하나에 매달린다거나, 그 독특한 발상이 재밌지 않으냐고 강요한다거나 하는, 누가 썼건 그저 엇비슷하게 읽히는 동시들의 경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그러한 시로 읽히는 혐의를 둘 시편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록작 전반에서 고학년보다는 저학년일 듯한 아이들의 생활 감정과 심리가 꽤 발랄한 톤으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가볍다'고 여길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읽기에는 그저 속이 빈 가벼움이 아니라 독자와 눈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 이룬 가벼움, 그래서 의미 있는 가벼움으로 읽혔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를 읽는 것에 대한 부담을 안 느끼면서 볼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도 무겁지 않게 적절하고, 삽화들도 무겁지 않게 시들과 잘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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