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온달 힘찬문고 34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자연의 수많은 목숨과 속 깊은 교감을 나누던 그 순박하던 온달은 왜 '전쟁 영웅'이 되었을까. 평강공주는 왜 온달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죽기 전, 온달과 평강이 흘린 뼈아픈 눈물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책 뒤표지에 있는 글이다. 이 글이 입으로, 그리고 머리로 가슴으로 빨려 들어온다. '왜'. 왜 그런 것일까. 그들은 어떤 눈물을 흘린 것일까.

놀림이나 받던 천덕꾸러기 온달이 평강공주를 아내로 맞아 고구려 제일가는 장수가 된다. 하지만 끝내 자기가 일으킨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이야기에 담긴 진실은 과연 무얼까. 이 책은 온달이 영웅이 되기까지, 한 존재가 왜, 그리고 어떻게 변해가고, 그의 죽음은 어떤 것인지를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자연과 사람, 물질과 정신, 어리석음과 지혜, 그리고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를 고민하게끔 한다.

온달은 자연 그대로를 터 삼아 살던 아이였다. 산이 놀이터였고, 산 속의 온갖 동물이 친구였다. 강물에 휩쓸려 가던 새끼 곰을 구해준 뒤로 그 곰과 단짝이 되어 산을 누빈다. 그러면서 둘은 함께, 그리고 건강하게 자란다. 자연은 온달을 건강한 몸과 정신을 지닌, 귀한 사람으로 튼튼하게 키운다. 온달은 비록 누구나 아는 바보였지만, 자연과 뭇 목숨을 제 목숨처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지혜를 지녔고, 그러기에 화를 낼 줄도, 누구를 미워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평강공주의 뜻 모를 꿈이 온달의 지혜, 곧 어리석음을 하나씩 잃게 한다. 온달은 평강에게 말타기와 활쏘기, 칼쓰기를 배우고, 자기가 쏜 화살로 난생 처음 목숨 붙은 것을 죽이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온달은 자연과 목숨을 귀히 여기며 그것과 하나 되어 살아가던 힘을 잃어간다. 여기에 명예와 승리에 대한 집착이 더해져 고구려 제일가는 장수로 인정받게 되고, 마침내 단 한 발의 화살로 사람을 죽이기에 이른다.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온달의 명예와 승리에 대한 집착은 결국 온달에게 신라와 전쟁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다. 하지만 그때, 평강이 온달을 말린다. 누구 하나 미워할 줄 모르던 온달의 눈에서 미움과 살기가 이글거리자, 평강은 자기가 뭔가 잘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온달은 끝내 전쟁터로 나가고, 그곳에서 옛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는 온달의 옛 모습, 가장 순수하고 지혜로웠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준 뒤 눈을 감는다.

이야기는 길지 않으면서 뜻이 분명한, 매끄러운 문장으로 힘을 받으며 펼쳐진다. 마치 작가가 이야기 속에 침잠하여 자기 눈앞에서 실제로 보이는 것을 써내려간 듯한 힘이 엿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인물과 상황, 사건 전개가 일궈내는 분위기를 탁월하게 만들어내고, 이야기 전개 속도도 적절히 유지하여 지루함을 줄인다. 대강의 줄거리나마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궁금함과 긴장감이 놓이지 않는데, 작가의 공력이 한껏 드러나는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다만 평강공주란 인물 설정에 아쉬움이 좀 있다. 매맞는 온달을 처음 본 평강, 온달을 고구려 최고의 장수로 키우고자 결심하는 평강, 바보는 이제 죽었음을 선언하는 평강, 그리고 전쟁터로 나가려는 온달을 말리며 후회하는 평강을 두고 볼 때, 이 네 장면에서 드러나는 평강이라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전체 이야기 전개의 핵심 동인인, 온달을 장수로 만들려는 평강의 동인이 부족해 보이고, 바보의 죽음을 선언하는 평강은 온달을 처음 봤을 때의 평강이나 전쟁에 나갈 온달을 말리는 평강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 이번에 작가가 작품을 고치면서 덧붙인 마지막 부분이, 그 앞부분까지 잘 이어오던 작품 분위기를 잘 이어가지는 못한 느낌을 준다. 슬픔의 정조가 좀 약해 보인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이 작품은 충분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책 시작부에 붙인 작가의 말 '물질을 중심으로 삼는 낡은 문명의 황혼에 서서 정신을 중심으로 삼는 새 문명의 동터오름을 바라보며, 새천년의 어린 주인공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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