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낙 칭찬을 많이 받은 동화. 황선미를 일약 훌륭한 작가로 올려놓은 동화. 잘 팔리는 동화.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다 읽고서 나는 과연 어떤 느낌을 받을까 하는 궁금함이 이야기보다 먼저 들어왔다. 별 재미도 없고 그리 훌륭한 작품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런 내 생각에 대해 나는 또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궁금함이 잇달았다.
하지만 그런 궁금함은 금세 사라졌다. 일단은 읽는 게 쉽고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책을 이렇게 금방 읽어버리기가 참 오랜만이다. 물론 내가 금방 읽었다는 게 이 책이 정말 재미있고 훌륭하다는 걸 말해주는 충분한 근거는 아니다. 나는 감정 상태에 따라 아무리 재미있고 좋은 책도 읽는 데에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다행히 요 며칠 조금 안정된 상태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상태가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 책은 색다른 경험을 주었다. 이렇게 금방 읽어버리다니. 재미있었다.

주인공 잎싹은 암탉다운 암탉이 되기 위해 자기 알을 품고 새 생명을 보고 싶어했다. 자기다운 자기, 존재다운 존재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꿈을 끝까지 추구하며 어려움을 이겨갔다. 초록머리도 청둥오리다운 청둥오리가 되기 위해 사랑하는 엄마를 두고 자기 족속을 따라갔다. 나쁘게만 나오는 족제비도 족제비다운 족제비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사냥을 한 것이었을 거다.

자기다운 자기, 자기 존재다운 존재가 되기 위해 무언가 소망한다면, 내가 나답기 위해, 사람답기 위해 품어야 할 소망은 무얼까. 내 처지와 현실, 그리고 그 소망의 한계, 그런 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고민하며, 어디까지 포기하고 또 극복해야 하는 걸까. 쉽지 않은 문제다. 책 끝에 있는 아동문학평론가 김서정 님의 말처럼, 길은 정답 없는 물음과 반성 속에서 찾아지는 걸 테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물음과 반성, 그것만 해도 나다운 나,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 될 터. 당장은 물음과 반성이 없는 삶을 살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소망이 되는 것도 같다.

이 작품은 자칫하면 생명과 사랑, 꿈에 관한 뻔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잎싹의 처지와 바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려움을 이겨가는 모습도 잎싹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힘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됐다. 잎싹의 처지에서 충분히 힘들어하고 고민했을 것들이 잘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의 처지와 마음을 잘 살피는 미덕이 살아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림도 참 좋다. 글 위주 책에 컬러 그림이 많다는 것에 대해선 말이 많을 수 있지만, 군더더기라는 생각보다는 분위기와 상황, 인물 따위를 잘 살펴 세심하게 드러낸 그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색감도 아주 좋고, 개성이 있다.

아쉬움 한 가지. 잎싹이 초록머리를 떠나보내며 느낀 허전함과 외로움이 내 마음도 무척 아프게 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정당하고 필요하다는 걸 아는 것, 그건 정말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다. 자기를 던져 사랑했지만, 또 상대방도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떠나보내야 하다니,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게 있을까. 그래서인지 나는 잎싹의 마지막 꿈이 초록머리처럼 하늘을 훨훨 나는 것으로 설정된 게 못내 아쉽다. 좀더 잎싹다운, 늙고 지쳤지만 그 처지에서 최대한 꿀 수 있는 더 자기다운 꿈은 무엇이었을까. 초록머리처럼 나는 것? 과연 그럴까? 그것이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다운 자기를 찾는 꿈이었을까? 잎싹은 암탉인데? 허전함과 외로움을 방어하려는 순간적인 바람 아니었을까?

죽음의 벽을 넘어 더 큰 자유를 얻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멋졌지만, 훨훨 날고 싶은 것이 자기의 또 다른 꿈이라는 걸 깨달은 때에 족제비에게 잡혀 그 꿈을 이룬다는 건 좀 작위적인 것 같다. 사랑하는 청둥오리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뒤 허전하고 외로웠다면, 외려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생명력에 충만한 다른 꿈을 꾸었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긍정 또한 자기다운 자기가 되기 위한 조건일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