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으로의 초대 - 성구 묵상 모음
앤서니 드 멜로 지음, 송형만 옮김 / 분도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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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출판사, 스산한 표지, 진부한 제목, 오래된 활자, 마디마디 거북하려면 마냥 거북할 수 있는 ‘성구’ ‘묵상’ ‘모음’이라는 표지말. 어느 것 하나 독자에게 매력을 줄 만한 낌새가 없다. 뒤쪽 책날개에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흑백사진과 그분이 쓴 책 제목이 나온 게 지은이 소개의 다인데, 그것도 볼수록 산뜻한 느낌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이 이 책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쉬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 친구가 준 선물이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별 다섯 개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다른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아 마저 읽은 거다. 빌려줄 때는 정말 그 친구가 꼭 ‘깊이 읽어주기’를 바랐다. 읽는 중에 ‘아, 이 책 결코 쉽게 읽을 책이 아니구나’ 하며 처음부터 다시 읽었던 책이기에, 친구도 그렇게 읽기를 바란 것이다. 다시 내게 온 책을 읽어나갔다. 빌려주기 전에 받았던 강한 힘을 다시 느꼈다. 보통 읽다 만 책은 다시 집어들어 끝까지 읽기 어려운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소중하고 고마웠다.

이 책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조금은 겁도 나지만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나를 두드린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 모든 이가 한번씩은 읽어봤으면 좋겠고, 그것도 낱말과 문장 하나하나 깊이 새기고 연구하며 ‘삶’과 ‘행복’에 관해 진지한 고민 한번 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을 줄줄 해대고 싶다.(벌써 해버렸네. ^^;) 하지만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일까. 이 책은 지금 여기에서 자기 존재감을 하나의 충만한 목숨처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아무런 인위와 거짓, 갈등 없이 자기 목숨의 힘을 그것 그대로 살아내는 자연물 같이 자기 존재감을 뿜어대고 있다. ‘현재’를 살라는 말씀, 그러면 자기 목숨이 지닌 힘 그대로 살게 될 거라는 신부님 말씀을 이 책은 책 스스로 보여준다. 책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행복의 조건에 무엇이 있을까 따져보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대로 성찰해보는 경험은 드물 것 같다. 그래서 외면당할 내용일 수 있지만, 나는 앤소니 신부님의 말씀과 닮은 이야기를 불교에서도 들어보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타>의 말씀이나 참자유를 강조하는 정토회 법륜 스님의 말씀과도 닿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시공간을 넘어 자유와 해방, 억압과 집착, 두려움과 용기 따위에 관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렇다고 나는 이 책의 모든 말씀이 다 옳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신부님 말씀이 ‘진리’라는 주장을 하고 싶지 않다. 신부님 말씀으로는, 진리는 본래 신비이다. 언어로 붙들 수 없고 공식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이 딜레마이기는 하다. 신부님도 언어로 진리를 드러내시고자 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딜레마를 시작으로 한 신부님의 말씀이 강요나 아집 같다는 느낌은 내려두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느낌이 신부님 말씀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짧은 혀로 삶을 조각하려 드는 범부의 섣부른 가르침은 거부감을 준다. 그런데 이 책은 진정 다르다. 아까 말한 대로 이 책은 자기 생명력을 그대로 뿜어대고 있고, 그렇기에 그 깊이와 진정성을 거부하기 어렵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고 알아듣기 힘든 내용이 많지만, 그건 자유와 행복에 관해 더 고민하지 못한 내 탓일 뿐.

책 내용을 소개하고 그것에 관한 내 의견을 낼 여력은 없다. 나는 놀라움으로 이 책을 읽었고, 그 놀라움이 얼마간은 신부님이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온 몸 가득 깨닫기에는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걸 말해줬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이 책을 반드시 다시 읽으리라고. 내 삶의 결이 하나 둘 늘어 신부님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또 반박할 건 반박할 수 있을 만한 때를 기다릴 거다. 이 책이 내 손을 당겨 자기 얼굴을 들이밀 때가 꼭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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