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나의 비밀친구 웅진 세계그림책 114
앤서니 브라운 그림, 그웬 스트라우스 글, 김혜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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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 그림책이 또 나왔다. 나는 그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돼지책』 같이 그야말로 빛나는 명작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작품은 너무 쉽게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만날 하던 표현방식을 되풀이하는 것 같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헌데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앤서니 브라운 작품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 까닭에는 그의 작품이 너무 자주 출간되는 우리 어린이책 시장 풍토도 있을 듯하다. 그의 작품 편편이 두루 완성도 있고 아이들한테 감동을 준다면 그런 풍토가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종종 너무 많이, 자주 출간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 경향 때문에 그의 작품이 흔해 보이고 무언가 되풀이만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감상을 방해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의 작품이 새로 나와도 그리 눈여겨보지 않게 됐는데, 이 책 『잘 가, 나의 비밀 친구』는 표지 색감이나, 아이가 날아가는 표지 그림이 눈에 쏙 들어와서 집어 들었다. 글을 쓴 이는 그웬 스트라우스라는 사람인데, 남의 글을 앤서니 브라운이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했는지도 궁금했다.

까만색 틀 안에 작게 놓인 그림이 잇따라 나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은 읽기에 적당한 분량으로 그림 아래 있다. 첫 문장 “에릭은 말을 하지 않았어요.”부터, 그리고 그걸 창문 틀 안에 있는 소년으로 그린 그림부터 어느정도 이야기가 짐작되긴 했다. 말이 없는 아이, 그것 때문에 받는 놀림, 그 아이 안의 또다른, 말을 잘하는 아이인 비밀 친구, 그리고 위로와 치유…… 그러고 보면 입으로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데 내 안의 누군가는 속에서 왕왕 떠들고 있을 때가 있다. 또 아이들은 잘 말할 수 있으면서도 어른이 무얼 직접 묻거나 의견을 구할 때, 다그칠 때 말을 삼키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말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래, 이 작품은 그런 아이들 이야기인가 보다고 생각됐다. 그런 아이들을 보듬는 책이라고.

자기 속의 또다른 자아를 비밀 친구로 둔 에릭은 자기가 말을 하지 않는 걸 놀리지 않고 같이 놀아주는 친구 마샤를 만나면서 변화를 겪는다. 둘은 그저 같이 놀 뿐이다. 둘이 같이 있을 때는 책 왼쪽 면이 흰 바탕으로 비고 그 위에 글이 놓인다. 시원스러워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밀 친구가 바로 사라지거나 비밀 친구에 대한 의존을 놓을 순 없을 터. 에릭은 아프게 성장통을 겪지만 그 덕분에 비밀 친구와 인사할 수 있게 되고 마샤한테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어른이 문제라 생각하는 아이의 어떤 모습을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는 이야기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한테 책이 치유의 마당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단순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색깔대로 표현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에릭의 현실은 그저 어른이 생각하는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환상세계도 아니다. 묘하지만 분명하게 자기만의 현실이 있는데, 비밀 친구는 그 현실 안에 있다. 그렇다고 비밀 친구와 에릭이 서로 다른 인물일까? 그렇기도 하면서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런 상황을 검정 모자와 망토, 가면을 쓴 에릭과 그렇지 않은 에릭으로 구분해 나타내고, 모자와 망토, 가면이 늘 에릭 옆에 있는 모습으로 아이 상황을 그렸다. 앤서니 브라운의 특장점이 지극히 세밀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현실적이지 않게 보이도록 하는 묘사와 장치를 잘하는 것이라면, 이 이야기에 잘 들어맞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생활세계의 여러 배경은 단순해지되 아이의 상황과 처지는 묘한 현실 속에 놓이도록 한 그림이 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보는 맛을 좋게 한다. 마샤와 에릭이 같이 넓은 들판에서 연을 날리며 뛰는 모습을 그린 시원스런 그림에선 에릭의 마음이 그렇게 시원스러워졌음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보는 이의 기분도 그렇게 해준다. 크게 튀거나 눈에 띄진 않지만 글과 그림이 조화롭게 잘 만난 그림책이라 생각한다. 여러 아이들이 두루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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