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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존중받는 미래를 위한 사람 공부? 


뒤늦게 뛰어드는 상반기 결산. 지난 6개월 동안 읽은 책 목록을 리뷰하면서 ‘이 책이다!’ 싶었던 일곱 권을 짧은 고민 끝에 어렵지 않게 추려봄. 



👉 읽은 순서대로































1️⃣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배럿, 최호영 옮김, 생각연구소, 2021)

2️⃣ 『프로젝트 헤일메리』(앤디 위어, 강동혁 옮김, RHK, 2021)

3️⃣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2021)

4️⃣ 『맹자』(맹자,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2021)

5️⃣ 『위어드』(조지프 헨릭, 유강은 옮김, 21세기북스, 2022)

6️⃣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세라 베이크웰, 이다히 옮김, 다산초당, 2025)

7️⃣ 『그저 하루치의 낙담』(박선영, 반비, 2025)

8️⃣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파리드 자카리아, 김종수 옮김, 부키, 2025)


일곱 권을 가지런히 쌓고 보니 내가 읽고 싶었던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열심히 궁리해보니 첫 머리에 써놓은 것처럼 요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 다양성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고민하게 했던(2️⃣, 3️⃣)

👉 경쟁에서 인간 본성을 찾는 이들에게 반박할 근거를 주었던(1️⃣, 5️⃣, 6️⃣) 

👉 좋은 것이 통용되는 질서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4️⃣)*️⃣

👉 욕망과 윤리가 무리 없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준(7️⃣)

👉 진보를 위해 세계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고민을 안겨주었던(8️⃣)


대단히 거창해서 방구석 여포가 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굳이 이곳에 기록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았으니 거창한 요약도 나름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방구석의 여포처럼 거울 보며 창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한 분이라도 공감해주시는 게 훨씬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사족도 붙여본다.


여덟 권 중 제일 좋았던 책을 꼽아보면, 1️⃣과 6️⃣은 연말 결산 포함 확정. 7️⃣, 8️⃣은 하반기에 어떤 책이 나타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 같다.


그 외에도 장르 편식을 이전보다 줄인 것, 인문학 계열의 책을 많이 읽은 것 정도가 나름의 성과로 꼽아보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쓰는 하반기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모두 즐거운 독서하십쇼!! 📚🐼🙌



*️⃣맹자의 義는 ‘옳은 것’에 가깝지만 나는 이것을 ‘좋은 것’으로 읽어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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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감정 뇌』)을 펼쳐든 것은 이 책이 (현 시점 내 인생 책 중 하나인)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배럿, 이하 『감정은』)의 핵심 이론인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을 기반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구성된 감정 이론이 인간 이해의 중요한 열쇠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이해를 더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더랬다. 


하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운 반전이 있었으니, 『감정 뇌』가 내 짐작과 달리 배럿의 구성된 감정 이론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을 주된 소재로 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 이거 괜히 읽기 시작한 건가 싶으면서도, 저자의 필력과 책의 논의가 재미가 없지 않아서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가던 와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한국말 같은 책이었달까.


이 글은 뇌과학 책에 대한 서평이지만, 동시에 뇌과학을 넘어선 (누군가에게는 장황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장엄한) 이야기를 펼쳐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나는 어느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갈까?


📚 우리는 사실 감정을 몰랐다

『감정 뇌』는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은 저자가 고통스럽도록 슬펐음에도 겉보기에 충분히 슬퍼 보이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뜻하지 않게 부모님을 잃은 사람이 보일 법한 반응(예를 들면 오열이라든지)이 자신에게서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울지 못한다거나 내 감정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p.53) 다만 이 책에서 확인 가능한 가장 확실한 사실은 겨우 58세였던 “아버지를 만나거나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도 못한 채 그 여파를 혼자서 견뎌야 했”던 경험은 “지금까지 삶에서 최악으로 꼽힐 만한 감정적 고통과 트라우마였다”는 것이다(p.9).


신경과학자로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저자는 본격적인 감정 연구에 돌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하고 만다. 신경과학자로서 다른 이보다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아는 게 많지 않았는데, 심지어 “놀랍게도 여러 세기에 걸친 연구와 논쟁에도 감정이 정말로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들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없이 감정적인 순간을 맞고 있는데,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하지만 “감정은 우리와 무관하거나 주변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모든 것”(p.10)이란 설명을 들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기원전 3세기, 스토아학파가 “모든 상황에 논리와 이성을 적용하라”고 주장한 이래로, 우리는 그들의 정신적 후예로서 이성을 신 이상으로 숭배해왔으니까.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굴지 마”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우리가 감정을 제대로 모른다는 증거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감정은 우리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정을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저자는 감정이 (우리 모르게) 하는 일들을 다양한 일상에서 과학적인 원리를 추적해간다. 이 책의 주된 목표이자, 독자가 얻을 가장 유용한 정보다. 하지만 내가 너무 산만한 탓이었을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자꾸만 곁눈질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데? 특히 몇몇 사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힌트처럼 보이기 시작한 걸 보니, 이건 잘 읽으면 몰입, 잘못 읽으면 망신의 경계선을 걷는 느낌까지 들었다.


📚 감정, 우리 존재의 모든 것

저자가 소개하는 감정의 일 중 내가 주목했던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일단 ‘회사’다. 우리는 거의 모두 회사를 싫어하며 그 이유를 딱히 찾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회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재미있으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에 따르면 일단 회사 일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동기부여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동기부여란 우리가 특정 행동이나 활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인지적 ‘에너지’다.”(p.70) 이 동기부여는 보상이나 처벌이 따르는 ‘외재적 동기’와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는 ‘내재적 동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자, 여기에서 우리를 이끄는 힘 센 동기는 무엇일까? 누구라도 내재적 동기를 고를 것이다. 그리고 “내재적 동기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자극할 때 분명히 발생한다.”(p.79) 


그럼 회사 일은 왜 우리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업무 환경에서 감정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p.225)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직장에서 자율성 상실, 사회적 지위 상실 (…) 등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p.225~226)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뇌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회사 일에는 “부정적 감정이 확실히 뒤따른다.”(p.226) 심지어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처리하거나 다룰 기회를 주지 않는다.”(p.226) 내재적 동기가 생기기는커녕, 번아웃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정리해보면, 회사 업무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해야만 하는 일이다 보니 출근이 ‘괴로운’ 것이다.


한편 감정은 정보 저장, 즉 기억과 관련해서도 ‘열일’을 한다. 가령 대부분 사람들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죽어라 암기했던 내용들을 시험 종료와 동시에 잊어버리는 일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뇌는 그런 정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하는데(p.131~132), 여기에서 ‘그런 정보’란 ‘감정적인 요소가 없는 정보’를 뜻한다. 반대로 “공감대를 살 만한 캐릭터들이 있다면 (…) 우리의 뇌가 몰입하는 방식 덕분에 사건, 환경, 상황에 이입하기보다는 또 다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진 개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공감하기가 훨씬 쉽다.”(p.337~338)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그들이 좋아하는 친숙한 캐릭터가 가르칠 때 수학 지식을 더 잘 배웠다”고 한다(p.339).


지금까지 소개한 것은 일부 사례에 불과하지만, 책의 어떤 사례를 보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기부여와 기억, 의사결정, 그 외에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은 감정 없이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해부학적·생리학적·신경심리학적 증거에 의거해 오랫동안 뇌의 기능적 분열을 명확하게 배제해왔”으며, “뇌는 서로 다른 영역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p.121). 다시 말해 “감정과 이성적인 사고를 분리하여 후자에만 의존한다는 개념은 비현실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매우 현명하지 못하게 보인다.”는 것이다(p.123).



——



📚 정보가 지각, 감정, 신념이 되어가는 과정

앞서 나는 『감정은』에서 이해한 감정을 보강 내지는 확장하기 위해 이 책을 골랐으며, 내 예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 이해의 깊이를 더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두 책을 따로 놓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두 책은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긴밀하게 이어졌고 작지 않은 영감이 되었다. 내가 몰입과 망신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일단 『감정은』에서 주장한 구성된 감정 이론에서 주변 환경에 따라 감정이 ‘그 자체’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간단히 말해 감정이 내수용 신호·과거 경험·문화적 개념이 통합된 뇌의 능동적 예측 과정에서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구성된 감정 이론의 반대편에 폴 에크먼의 ‘기본 감정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사람이 다섯 가지 기본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나도 감동받으면서 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뼈대가 바로 기본 감정 이론이다). 이는 특정 사건 등에 대한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넘어(가령 축구를 보면서 열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태어난 이후의 환경, 정보 등으로 인해 기본적인 감정의 종류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비단 감정만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에 대한 서평에서도 썼지만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인간의 지각이 ‘예측 처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이전의 경험에 기반해 지각 정보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가 인간 의식을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가 실재와는 별개로 사물 사건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유전자와 문화가 함께 진화한다는 문화-유전자 공진화론(Dual Inheritance Theory, DIT)이나 최근 생물학계의 뜨거운 이슈인 후성유전학(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즉 발현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분과 학문) 또한 문화와 환경이 인격의 후천적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감정 구성의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후성유전학의 경우 환경이 외모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과정을 (맛보기로라도) 살펴본 나는 모든 인간의 지각, 지식, 감정을 아우르는 ‘절대 정보’가 성립 불가능할 거라는 (현시점 기준 주관적이지만 나는 이제 믿을 수밖에 없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사실 관계에 대한 합의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 않나. 사실 관계를 두고도 이런 마당에 도덕, 윤리 같은 가치들은 오죽할까. 물론 살인처럼 몇몇에 대한 절대적인 합의에 다다르긴 했지만, 지금도 어떤 지역에서는 학살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또 그것을 ‘정당방위’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보면, 보편적·절대적 가치에 대해 회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 주의: 다만 강조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인간의 지각, 생각, 감정, 신념은 사람마다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즉,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으며 그러므로 옳은 것은 없다’는 허무주의를 설파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과학의 경우 지각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관찰(지각)의 차이를 합의 과정을 통해 줄여나간다(당연히 그 차이가 완벽하게 소거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념이나 윤리 또한 과학의 방법으로 줄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형성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객관화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존을 위한 만인에 대한 투쟁보다는 공존이 개인과 집단에게 훨씬 나은 방법이자 가치라고 믿는다.


📚 감정 없는 신념이라는 모순

한편 『감정 뇌』를 읽으면서 기억의 형성에 있어 감정의 기여가 100%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책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해 우리 인생에 일어날 법한 일에서 감정의 일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설명하지만, 이런 일상이 우리의 인격, 신념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의 감상을 앞서 언급한 신경과학 이론과 연결 지어 정리하는 것은 비약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정보, 그중에서도 도덕·윤리 같은 가치가 감정에 대한 고려 없이 전달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내면화’가 어렵다는 말이다. 가령 소셜 미디어에서 상식적인 윤리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모르면 외우라”라고 면박 주며 말하지만, 짐작컨대 이 말을 들은 이들은 외우기는커녕 도리어 외면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 ‘외워야 하는 윤리’는 교조화된(감정이 섞이지 않은) 지식일 뿐인데, 그 지식을 모욕과 함께 주입받았다면, 그것은 내가 싫어하는 지식이 되어버릴 뿐이니까. 


한 가지 사례로 ‘정치적 올바름(PC)’을 들어보자. 나는 PC주의를 (속으로나마) 지지했고, 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공감하는 편이다. 그리고 PC 진영의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PC 진영에 대한 적개심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고, PC의 희망을 비웃듯 세계는 극우의 광풍 앞에 불타는 촛불처럼 보인다. 마침 얼마 전 읽었던 『집단 망상』에서 이와 관련한 대목을 읽었는데, “정체성 기반 양극화는 단순한 감정적 반감뿐 아니라 혐오와 반감 같은 신체적 반응까지 포함”하며, “우리의 정치적 성향과 호불호가 이성적인 것보다는 ‘본능적인’ 것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한다.”(『집단 망상』 p.314) 요즘의 갈등이 올바름을 관철하기 위한 정체성 공격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감정 연구가 그리는 인간

지금까지 나는 감정의 두 가지 속성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감정이 태어난 이후에 구성된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 사람의 지각과 기억, 신념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 아직 읽을 책이 아주 많이 남았지만, 이 두 가지 사실은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자신이 믿는 특정 신념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다면, 전달 방법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윤리를 고민할 때, 우리는 무엇이 옳은 윤리인지 고민했을 뿐 그 전달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앞서 언급한 PC가 대표적이지만, 꼭 PC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극우화에서 작지 않은 위기를 느끼는 나는 이 작업이 그동안 우리가 짐작해왔던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에 가까운 수학 지식조차 전달 방법에 따라 성취도 차이가 크게 나는 마당에 소셜 미디어를 숙주 삼아 퍼지는 극우 메시지를 보라.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문화를 침범하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구호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너무나 ‘직관적’이다. 


둘째, 최근 세계의 혼란을 인간 본성에 기인한 결과인 양 말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와중에, 본성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반박 논리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열쇠가 된다. 신경과학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반박이었고, 그래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과학의 성과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추가로, 깊어가는 혼란 속에서도 냉소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이론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 덧붙임: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회색독자’

여전히 나는 내 글이 설득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과학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내 나름의 방법으로 인문학 영역으로까지 확장해보겠다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지만, 이제 두 학기를 마친 학부생이 시간과 공력을 낭비해가며 화학의 모든 것을 읊어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과학과 인문학을 맘대로 오가는 회색분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과학과 인문학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학과 인문학 그 누구도 윤리와 같은,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혼자’ 성공해낸 것 같지는 않아서다. 가령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인문학자들이 윤리를 현실 세계에서의 실체적 가치로 여기기보다는 윤리의 존재를 ‘논증’하는 데 몰두하는 것 같은데, 실체로서의 윤리 존재를 입증하는 방법으로 논증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논증을 통해 그것의 실체를 증명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지금 이 주제를 다루기에는 이미 너무 긴 글을 써버렸으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한다).


과학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지각, 감정, 신념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데, 여기에서 환경은 대개 문화를 의미하더라. 앞서 잠깐 언급했던 문화-유전자 공진화론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조지프 헨릭은 자신의 책 『호모 사피엔스』에서 문화를 “우리 모두가 성장하는 동안 주로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방법으로 습득하는 관행, 기법, 발견법(휴리스틱), 도구, 동기, 가치, 믿음 따위로 이루어진 커다란 덩어리”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영역은 전통적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다뤄왔으며, 그 분야에서 누적된 결과물만 해도 한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 이런 결과물을 모른 척하고 문화 연구를 하겠다는 건, 내 생각에 TV, 태블릿, 스마트폰 없이 드라마를 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과학과 인문학 사이를 마음 끌리는 대로 오가는 ‘회색독자’(a.k.a 박쥐)가 되어보고 싶었고 이번 서평을 계기로 숙원처럼 남겨둔 도전을 마무리했다. 이 글에 얼마나 큰 정보값이 녹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 안에서 오랫동안 따로 놀던 과학과 인문학이 처음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더욱 키워줄 다른 의견과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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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는 사고 싶었던 책 여섯 권, 지금 아니면 데려올 수 없을 듯한 책 세 권을 책장에 들임. 



📚 7월에 들여온 책들




📘『AI 지도책』

요즘 관심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리스트인데(특히 사고 싶었던 책들은 더더욱), 몇몇은 아마 다른 분들도 관심이 많으셨을 것 같음. 특히 AI 관련해서 할 말이 많아지는데, 아니, 해야 할 말을 많이 쌓아두어야 할 것 같다는 쪽에 가까운데, 그래서 『AI 지도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음(아니, 나한테만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났을까 싶었던 책). 전에 『사고외주』의 서평을 쓰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AI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전력이었고 AGI 수준에서는 국가의 연 단위 소비량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과연 AI의 혁신에 사회적 자원을 쏟아부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으며, 그 사회적 결정을 위해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음. 심지어 팔란티어는 러-우 전쟁 지원을 통해 전쟁 데이터를 AI에 쏟아붓고 있다고 하는데, 사람의 결정 없이 살상 가능한 AI의 출현을 지켜볼 것 같아 대단히 우려가 됨. 대부분 언론은 성능 이야기만 떠들고 있는데, 그렇기에 지금 더더욱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게 들인 것 같기도 하고…).


📘『차별하는 데이터』

얼핏 기술은 그 자체로 편향 없는 가치중립적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음. 가령 사회 통념에서 크게 빗겨선 판결이 보도될 때마다 판사의 편향을 문제삼으며 앞으로는 AI에게 재판을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크게 들리는데, ‘기술=가치중립적’이란 전제가 깔려 있을 것. 하지만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박태웅의 AI 강의 2025』에서 소개한 네이버 뉴스 편집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편집 알고리듬을 만들기 위해 목적함수를 설정해야 하며 그 기준은 사람이 정해야 한다고 함. 입력하는 데이터의 편향성과 기술의 특성도 문제인데, 이게 바로 『차별하는 데이터』가 제기하는 문제. 가령 데이터 입력 시 인종, 성별 등 차별 요소를 제거하더라도 기계가 거주지, 소비 패턴 등 잠재된 패턴을 유추함으로써 차별로 이어진 사례가 있는데, 이는 알고리듬의 기본 공리인 상관관계와 동종선호에 기인한 것이라고 함. AI라는 기술이 편향 없는 판결을 내리게 하려면, 기술과 문화에 강렬하게 관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관여해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들여온 책.


➕ 내맘대로 독서리스트1️⃣: :  어둠의 AI 세계, 혹은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책들.





























➕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2️⃣: AI가 흉내내기 어려운 인간 지능 특성에 관한 책까지 추가해봄





























📕『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

얼마 전 서평을 쓴 『사고외주』를 읽으면서 궁금해지는 것들을 따로 서치하던 와중에 AI와 관련해 반전에 가까운 정보 하나를 찾게 됨. 거의 모든 AI 모델들이 2026년 현재 시점에  문제가 주어진 테스트에서 인간 대비 70~80점 전후까지 점수를 올렸으나, 설명서(가이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직접 규칙을 알아내야 하는 시험에서는 인간 대비 0~0.4%만 해결했다는 것(기사 보러가기). 나는 전부터 ‘가설 설정’ 능력만은 AI가 인간을 쉽사리 앞서지 못할 거라고 짐작했는데(몇몇 지인에게는 직접 말하기도 했지만 기록이 없어서 너무나 아쉬움), 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고 있다. 『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는 얼핏 특별한 인간의 창의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게 바로 설명서 없이 규칙을 알아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들여옴.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능력은 인간이 감정,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에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AGI의 출현에 회의적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


➕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인간의 지식, 인간다움, 호기심 에 관해 설명하는 책들







 









📗『편견 없는 뇌』

이 책은 홧김에(!) 지른 책인데, 직전에 읽은 『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에서 인용한 중요한 대목 때문임. 그 인용한 대목이란 남녀의 뇌는 (해부학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특정 감정에 대한 반응이 성차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것. 짐작하기로는 문화에 밴 성 역할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 싶지만, 일단 『감정 뇌과학』에서는 가설을 가능성 수준에서 체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말기에 이 책을 더 읽어보기로 함. 나는 뇌과학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거란 심증을 굳혀가는 중인데, 바로 그 점에서 『감정 뇌과학』은 참 좋았던 책.


➕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뇌가 정보(기억, 감정 등)를 구성하는 방식과 구성한 이후의 사고에 대해 말하는 책들




























📙『자유와 평등』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21세기적 재해석 정도로 소개되는 책. (정의라는 키워드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에 기름을 유조선째로 부어버릴 듯한 기세로 AI가 발전하는 와중에,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나름의 비전을 가져야 할 것 같아 들여옴. 대니얼 챈들러라는 경제학자/정치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하는데(처음 들어봄), 솔직히 『정의론』 한번 안 읽고 이 책을 읽는 게 맞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질 않음(보통의 벽돌책과는 확연히 다름. 책장을 펼치면 알게 됨).



➕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이 주제와 연관 있는 다른 책 추천 부탁드려요 🙇‍♂️

















📕『어머니 내게 오시네』

솔직히 (특히 X라는 이름의 트위터) 초반 물량 공세 외에는 나도 고른 이유를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움. 인도 여성 인권의 대모 격인 어머니로부터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함. 나는 언젠가부터 인생의 아이러니에 굉장히 끌리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어머니가 보여준 아이러니는 그녀뿐 아니라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타인의 아이러니를 껴안을 때, 우리는 결국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 거란 (다소 근거가 희박하지만, 왠지 확신해도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겼기 때문.


➕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옆의 두 권은 선물 받은 에세이인데, 올해 안에는 읽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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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기』 / 『숨쉬는 과학』 /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특가 코너를 돌아다니면서 담아두었던 책 두 권, 저작권 종료를 앞두고 특가에 나왔다기에 냉큼 데려온 책 한 권. 요즘 내 관심사에 관한 책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호기심에서 기차 탈선 수준으로 벗어난 책이 아니었고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구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사려고 보관함에 담아뒀다가 절판되었을 때, 심지어 중고서점에도 없을 때 황망함이란) 여유 있을 때 냉큼 들여옴. 세 권 모두 몇 페이지를 읽어봤는데, 들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름.

















7월 책장 정리 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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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에 관한 책은 읽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데, 그의 행적을 현대적 리더십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개 세종대왕께서 그 누구보다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남의 이야기는 잘 들으시며, 천재적인 학습 능력으로 한글까지 만들어냈다는 서술에 그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위대하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잘 알겠는데, 사실 그 정도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만 따라 부를 줄 알아도 꿰고 있는 사실 아닌지. 


아쉬운 걸 넘어 ‘불호’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책들도 있으니, 그에게서 회사 경영의 리더십을 발견하는 책들이다. 세종대왕이 이윤 창출을 위해 권력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그려지질 않는다. 유교와 비즈니스는 세계관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내 생각에 후손들이 그런 모습을 그려봤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세종대왕이 ‘불경하다’며 불같이 화를 낼 것 같다.


『세종대왕실록』 또한 앞서 읽었던 세종의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실록 요약에서 세종의 행적을 상세히 다뤘다는 것은 장점이었지만, 신하들의 일대기와 논평이 정작 책의 주인공인 세종의 분량보다 더 많은 것이 그 장점을 상쇄하고 말았다. 이 책 역시 내가 읽고 싶었던 ‘그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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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 세종·문종 편을 급하게 꺼내 읽었는데, 단순 나열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종대왕실록』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청소년을 위한 학습 만화임에도 한글 창제나 과학기술 발달, 궁중음악 정비 등의 성과가 무엇을 계기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졌는지 상세히 서술했는데, 이 점이 세종의 통치에 입체성을 더했달까. 개인적으로는 이 책 덕분에 만원권 지폐 밖에서 살아 움직이는 세종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는데, 일단 청소년 학습 만화인 탓인지 세종의 업적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부각되었다는 점이 그랬다. 대군 시절부터 책벌레로서 유교 경전을 꿰고 살았던 임금이라기엔 너무나 단순한 설명이었달까. 게다가 부민고소금지법 관련 대목에선 현대적 관점을 지나치게 투영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유교적 상하관계의 수립이란 관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극상으로 인해 극심했던 고려사회의 혼란,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이 지방 출신 아전을 통제하지 못했던 배경까지 아울렀다면 그 서술이 입체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식민사관을 넘어 


그래서 대체 어떤 책을 읽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 분들께 드리는 답변은 이런 것이다. 나는 세종의 업적이 그의 통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 업적을 그 철학에 기반해 해설하는 책을 기다렸다. 재위 후반기에 불교 친화적인 모습이 잦아지면서 신하들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유교적 이상 국가를 완성하는 것이 세종의 최종 목표였다. 그렇다면 그의 업적은 유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는 없는지 궁금해졌고, 그의 통치를 통해 유교를 지금과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굳이 지금 유교의 다른 면모를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반문에 나는 이런 답을 내어놓고 싶은데, 하나는 세종의 시대와 유교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유교를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취급하지만, 사실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존경받는 세종의 사상적 기반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취급이 꽤나 부당해 보인다. 게다가 세종이 유교를 기반으로 한글 창제,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과학기술 발달, 국방력 강화 등을 일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 유교 때문에 망한 조선?

최근 들어 유교의 전근대성과 경직성을 이유로 조선의 존재(또는 정통성)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유교의 후진성이 민중의 부양을 방해한 동시에 그들을 억압했으며, 그것을 국시로 삼은 조선은 비문명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중 몇몇은 이런 논리로 근대화 실패, 나아가 한일합방의 책임까지 유교와 (세종을 포함한) 조선 왕조에 추궁한다. 이들에게는 유교가 제국주의 이상의 적폐였던 것이다. 마치 식민 지배를 피지배민족의 무능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논리인데, 혹시 이거, ‘식민사관’으로 부르기로 하지 않았던가?

약육강식의 세계질서가 재현될 조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민사관을 내면화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어이없어서, 마시던 커피가 비강으로 넘어올 지경이다. 양보해서 ‘유교=구시대 유물’이란 고정관념까지야 이해할 여지가 있다 치더라도 말이다. 세종과 유교가 시대에 미친 영향을 보다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더욱 필요해진 것도 그래서다. 힘의 논리가 전부였던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서평을 쓰다 보니 읽은 책보다 다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책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정리한 셈 치려고 한다. 만원권 지폐 밖에서 살아 있는 사유의 대상으로서 세종과 유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 덧. 이어서 『세종의 선택』이란 책을 읽고 있다(대체 병렬로 몇 권을 읽는 건지). 이런저런 정책의 시행 배경을 두 책보다 깊게 파고든 덕분에 당시의 조선과 세종이란 사람이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수확 하나는, 세종 치세의 조선이 결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기후 이상으로 인한 흉년, 전염병 등등 별별 자연재해가 정말 잦았고, 세종은 끊임없이 대처하는 와중에 나라의 기틀까지 세워갔다. 이러니 조선 왕들이 장수할 리가 있겠나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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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퀴엠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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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크레이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봄 『투 미닛 룰』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사실 처음엔 이 작가에게 그렇게 호감이 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딱히 이유를 꼽기는 어려운데, 굳이 찾자면 아마도 표지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요. 8년 전 표지에 대해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투 미닛 룰』은 책장 안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죠.

이 책이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 꺼내들었던 건 책을 산 지 10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책을 덮었을 때 마음가짐은 완전히 달랐어요. 왜 때문에 젠장, 이런 책을 안 읽고 있었던 거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넘쳐나는데요. 범죄소설로서의 완성도야 말할 것도 없었어요. 사실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작가라면, 이 정도도 못해내는 게 더 이상하니까요. 결정적인 계기는 캐릭터였어요. 마음 따뜻한 은행털이, 범죄자를 돕는 전직 FBI 요원. 자칫 유치해지기 쉬운 그들의 마음가짐을, 너무나 완벽하게, 그리고 읽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그려놨던 겁니다. 

이 작가의 신작 『L.A. 레퀴엠』의 출간 소식을 듣고 또 이벤트에 응모했던 이유는 당연히 "공짜 책"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죠.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저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하고 있어요. 세상만사 기쁨과 슬픔을 범죄소설에 어떻게 녹여냈을까, 기대했고 읽고 싶었거든요. 번쩍 손을 들었고, 운이 좋게 책을 받아들게 되었네요. (이런 운이라도 있어야죠.)

시작은 좀 기대와 달랐습니다. 이야기가 이상했던 건 아니었어요. 각별한 인연의 독지가의 딸이 죽고, 함께 일하는 파트너 조 파이크와 엘비스 콜이 사건을 의뢰받고, 알고 보니 그 독지가의 딸이 조 파이크와 연인 사이였고,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는. 사건 자체는 기대를 품게 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네요. 대사도 누구의 것인지 일일이 찾아봐야 했고, 문장만으로는 얼개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거든요. 초반은 좀 아귀가 맞지 않는, 서툴게 쓰였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중반 이후부터는 만듦새도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범인이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인물들은 하나둘 무언가를 잃어갈 위협에 시달립니다. 가령 범인으로 지목받는 조 파이크가 대표적인 경우죠. 예전 애인을 잃었는데, 누명까지 쓰게 되었으니 말이죠. 감정을 좀체 드러내지 않았던 조 파이크도 행동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마냥 뻣뻣하게만 느껴졌던 이 인물이 좋은 의미에서 느슨해져요. 반면 애당초 이런저런 감정이 풍부했던 엘비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애인 이상의 존재인 조 파이크를 잃게 되고, 그 뒤로도 무언가를, 누군가를 꾸준히 잃어갑니다. 당연히 읽는 사람도 위기감을 느끼게 되죠.

이 소설이 좋았던 것은 인물들의 위기가 범인의 위협에만 빚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이기에 저지를 수밖에 없는 헛발질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구체적인 예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들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이라면 어느 순간, 엘비스 콜의 선택을 눈여겨보시기를 권하겠습니다. 사건의 종료 이전까지 거듭되는 실패 또는 비극은 많은 물리적인 불가항력에서도 비롯되지만, 또한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하지만 당사자는 저지를 수밖에 없는 헛발질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L.A. 레퀴엠』이, 끝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고 또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이곳의 독자 입장에선 "가깝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후반부, 엘비스 콜이 한 LA 경찰과 함께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범죄소설에서, 그것도 주인공 남자가 우는 모습은 참 특이하죠.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살짝 함께 울었어요. 어떤 말로 이 책에 대한 감정 또는 감상을 요약하라고 한다면, 저는 이 순간을 말씀드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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