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감정 뇌』)을 펼쳐든 것은 이 책이 (현 시점 내 인생 책 중 하나인)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배럿, 이하 『감정은』)의 핵심 이론인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을 기반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구성된 감정 이론이 인간 이해의 중요한 열쇠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이해를 더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더랬다. 


하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운 반전이 있었으니, 『감정 뇌』가 내 짐작과 달리 배럿의 구성된 감정 이론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을 주된 소재로 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 이거 괜히 읽기 시작한 건가 싶으면서도, 저자의 필력과 책의 논의가 재미가 없지 않아서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가던 와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한국말 같은 책이었달까.


이 글은 뇌과학 책에 대한 서평이지만, 동시에 뇌과학을 넘어선 (누군가에게는 장황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장엄한) 이야기를 펼쳐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나는 어느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갈까?


📚 우리는 사실 감정을 몰랐다

『감정 뇌』는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은 저자가 고통스럽도록 슬펐음에도 겉보기에 충분히 슬퍼 보이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뜻하지 않게 부모님을 잃은 사람이 보일 법한 반응(예를 들면 오열이라든지)이 자신에게서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울지 못한다거나 내 감정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p.53) 다만 이 책에서 확인 가능한 가장 확실한 사실은 겨우 58세였던 “아버지를 만나거나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도 못한 채 그 여파를 혼자서 견뎌야 했”던 경험은 “지금까지 삶에서 최악으로 꼽힐 만한 감정적 고통과 트라우마였다”는 것이다(p.9).


신경과학자로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저자는 본격적인 감정 연구에 돌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하고 만다. 신경과학자로서 다른 이보다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아는 게 많지 않았는데, 심지어 “놀랍게도 여러 세기에 걸친 연구와 논쟁에도 감정이 정말로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들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없이 감정적인 순간을 맞고 있는데,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하지만 “감정은 우리와 무관하거나 주변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모든 것”(p.10)이란 설명을 들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기원전 3세기, 스토아학파가 “모든 상황에 논리와 이성을 적용하라”고 주장한 이래로, 우리는 그들의 정신적 후예로서 이성을 신 이상으로 숭배해왔으니까.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굴지 마”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우리가 감정을 제대로 모른다는 증거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감정은 우리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정을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저자는 감정이 (우리 모르게) 하는 일들을 다양한 일상에서 과학적인 원리를 추적해간다. 이 책의 주된 목표이자, 독자가 얻을 가장 유용한 정보다. 하지만 내가 너무 산만한 탓이었을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자꾸만 곁눈질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데? 특히 몇몇 사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힌트처럼 보이기 시작한 걸 보니, 이건 잘 읽으면 몰입, 잘못 읽으면 망신의 경계선을 걷는 느낌까지 들었다.


📚 감정, 우리 존재의 모든 것

저자가 소개하는 감정의 일 중 내가 주목했던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일단 ‘회사’다. 우리는 거의 모두 회사를 싫어하며 그 이유를 딱히 찾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회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재미있으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에 따르면 일단 회사 일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동기부여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동기부여란 우리가 특정 행동이나 활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인지적 ‘에너지’다.”(p.70) 이 동기부여는 보상이나 처벌이 따르는 ‘외재적 동기’와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는 ‘내재적 동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자, 여기에서 우리를 이끄는 힘 센 동기는 무엇일까? 누구라도 내재적 동기를 고를 것이다. 그리고 “내재적 동기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자극할 때 분명히 발생한다.”(p.79) 


그럼 회사 일은 왜 우리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업무 환경에서 감정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p.225)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직장에서 자율성 상실, 사회적 지위 상실 (…) 등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p.225~226)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뇌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회사 일에는 “부정적 감정이 확실히 뒤따른다.”(p.226) 심지어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처리하거나 다룰 기회를 주지 않는다.”(p.226) 내재적 동기가 생기기는커녕, 번아웃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정리해보면, 회사 업무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해야만 하는 일이다 보니 출근이 ‘괴로운’ 것이다.


한편 감정은 정보 저장, 즉 기억과 관련해서도 ‘열일’을 한다. 가령 대부분 사람들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죽어라 암기했던 내용들을 시험 종료와 동시에 잊어버리는 일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뇌는 그런 정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하는데(p.131~132), 여기에서 ‘그런 정보’란 ‘감정적인 요소가 없는 정보’를 뜻한다. 반대로 “공감대를 살 만한 캐릭터들이 있다면 (…) 우리의 뇌가 몰입하는 방식 덕분에 사건, 환경, 상황에 이입하기보다는 또 다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진 개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공감하기가 훨씬 쉽다.”(p.337~338)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그들이 좋아하는 친숙한 캐릭터가 가르칠 때 수학 지식을 더 잘 배웠다”고 한다(p.339).


지금까지 소개한 것은 일부 사례에 불과하지만, 책의 어떤 사례를 보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기부여와 기억, 의사결정, 그 외에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은 감정 없이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해부학적·생리학적·신경심리학적 증거에 의거해 오랫동안 뇌의 기능적 분열을 명확하게 배제해왔”으며, “뇌는 서로 다른 영역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p.121). 다시 말해 “감정과 이성적인 사고를 분리하여 후자에만 의존한다는 개념은 비현실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매우 현명하지 못하게 보인다.”는 것이다(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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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가 지각, 감정, 신념이 되어가는 과정

앞서 나는 『감정은』에서 이해한 감정을 보강 내지는 확장하기 위해 이 책을 골랐으며, 내 예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 이해의 깊이를 더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두 책을 따로 놓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두 책은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긴밀하게 이어졌고 작지 않은 영감이 되었다. 내가 몰입과 망신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일단 『감정은』에서 주장한 구성된 감정 이론에서 주변 환경에 따라 감정이 ‘그 자체’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간단히 말해 감정이 내수용 신호·과거 경험·문화적 개념이 통합된 뇌의 능동적 예측 과정에서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구성된 감정 이론의 반대편에 폴 에크먼의 ‘기본 감정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사람이 다섯 가지 기본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나도 감동받으면서 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뼈대가 바로 기본 감정 이론이다). 이는 특정 사건 등에 대한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넘어(가령 축구를 보면서 열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태어난 이후의 환경, 정보 등으로 인해 기본적인 감정의 종류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비단 감정만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에 대한 서평에서도 썼지만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인간의 지각이 ‘예측 처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이전의 경험에 기반해 지각 정보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가 인간 의식을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가 실재와는 별개로 사물 사건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유전자와 문화가 함께 진화한다는 문화-유전자 공진화론(Dual Inheritance Theory, DIT)이나 최근 생물학계의 뜨거운 이슈인 후성유전학(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즉 발현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분과 학문) 또한 문화와 환경이 인격의 후천적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감정 구성의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후성유전학의 경우 환경이 외모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과정을 (맛보기로라도) 살펴본 나는 모든 인간의 지각, 지식, 감정을 아우르는 ‘절대 정보’가 성립 불가능할 거라는 (현시점 기준 주관적이지만 나는 이제 믿을 수밖에 없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사실 관계에 대한 합의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 않나. 사실 관계를 두고도 이런 마당에 도덕, 윤리 같은 가치들은 오죽할까. 물론 살인처럼 몇몇에 대한 절대적인 합의에 다다르긴 했지만, 지금도 어떤 지역에서는 학살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또 그것을 ‘정당방위’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보면, 보편적·절대적 가치에 대해 회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 주의: 다만 강조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인간의 지각, 생각, 감정, 신념은 사람마다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즉,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으며 그러므로 옳은 것은 없다’는 허무주의를 설파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과학의 경우 지각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관찰(지각)의 차이를 합의 과정을 통해 줄여나간다(당연히 그 차이가 완벽하게 소거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념이나 윤리 또한 과학의 방법으로 줄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형성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객관화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존을 위한 만인에 대한 투쟁보다는 공존이 개인과 집단에게 훨씬 나은 방법이자 가치라고 믿는다.


📚 감정 없는 신념이라는 모순

한편 『감정 뇌』를 읽으면서 기억의 형성에 있어 감정의 기여가 100%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책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해 우리 인생에 일어날 법한 일에서 감정의 일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설명하지만, 이런 일상이 우리의 인격, 신념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의 감상을 앞서 언급한 신경과학 이론과 연결 지어 정리하는 것은 비약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정보, 그중에서도 도덕·윤리 같은 가치가 감정에 대한 고려 없이 전달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내면화’가 어렵다는 말이다. 가령 소셜 미디어에서 상식적인 윤리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모르면 외우라”라고 면박 주며 말하지만, 짐작컨대 이 말을 들은 이들은 외우기는커녕 도리어 외면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 ‘외워야 하는 윤리’는 교조화된(감정이 섞이지 않은) 지식일 뿐인데, 그 지식을 모욕과 함께 주입받았다면, 그것은 내가 싫어하는 지식이 되어버릴 뿐이니까. 


한 가지 사례로 ‘정치적 올바름(PC)’을 들어보자. 나는 PC주의를 (속으로나마) 지지했고, 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공감하는 편이다. 그리고 PC 진영의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PC 진영에 대한 적개심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고, PC의 희망을 비웃듯 세계는 극우의 광풍 앞에 불타는 촛불처럼 보인다. 마침 얼마 전 읽었던 『집단 망상』에서 이와 관련한 대목을 읽었는데, “정체성 기반 양극화는 단순한 감정적 반감뿐 아니라 혐오와 반감 같은 신체적 반응까지 포함”하며, “우리의 정치적 성향과 호불호가 이성적인 것보다는 ‘본능적인’ 것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한다.”(『집단 망상』 p.314) 요즘의 갈등이 올바름을 관철하기 위한 정체성 공격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감정 연구가 그리는 인간

지금까지 나는 감정의 두 가지 속성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감정이 태어난 이후에 구성된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 사람의 지각과 기억, 신념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 아직 읽을 책이 아주 많이 남았지만, 이 두 가지 사실은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자신이 믿는 특정 신념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다면, 전달 방법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윤리를 고민할 때, 우리는 무엇이 옳은 윤리인지 고민했을 뿐 그 전달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앞서 언급한 PC가 대표적이지만, 꼭 PC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극우화에서 작지 않은 위기를 느끼는 나는 이 작업이 그동안 우리가 짐작해왔던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에 가까운 수학 지식조차 전달 방법에 따라 성취도 차이가 크게 나는 마당에 소셜 미디어를 숙주 삼아 퍼지는 극우 메시지를 보라.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문화를 침범하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구호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너무나 ‘직관적’이다. 


둘째, 최근 세계의 혼란을 인간 본성에 기인한 결과인 양 말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와중에, 본성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반박 논리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열쇠가 된다. 신경과학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반박이었고, 그래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과학의 성과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추가로, 깊어가는 혼란 속에서도 냉소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이론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 덧붙임: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회색독자’

여전히 나는 내 글이 설득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과학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내 나름의 방법으로 인문학 영역으로까지 확장해보겠다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지만, 이제 두 학기를 마친 학부생이 시간과 공력을 낭비해가며 화학의 모든 것을 읊어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과학과 인문학을 맘대로 오가는 회색분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과학과 인문학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학과 인문학 그 누구도 윤리와 같은,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혼자’ 성공해낸 것 같지는 않아서다. 가령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인문학자들이 윤리를 현실 세계에서의 실체적 가치로 여기기보다는 윤리의 존재를 ‘논증’하는 데 몰두하는 것 같은데, 실체로서의 윤리 존재를 입증하는 방법으로 논증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논증을 통해 그것의 실체를 증명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지금 이 주제를 다루기에는 이미 너무 긴 글을 써버렸으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한다).


과학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지각, 감정, 신념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데, 여기에서 환경은 대개 문화를 의미하더라. 앞서 잠깐 언급했던 문화-유전자 공진화론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조지프 헨릭은 자신의 책 『호모 사피엔스』에서 문화를 “우리 모두가 성장하는 동안 주로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방법으로 습득하는 관행, 기법, 발견법(휴리스틱), 도구, 동기, 가치, 믿음 따위로 이루어진 커다란 덩어리”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영역은 전통적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다뤄왔으며, 그 분야에서 누적된 결과물만 해도 한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 이런 결과물을 모른 척하고 문화 연구를 하겠다는 건, 내 생각에 TV, 태블릿, 스마트폰 없이 드라마를 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과학과 인문학 사이를 마음 끌리는 대로 오가는 ‘회색독자’(a.k.a 박쥐)가 되어보고 싶었고 이번 서평을 계기로 숙원처럼 남겨둔 도전을 마무리했다. 이 글에 얼마나 큰 정보값이 녹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 안에서 오랫동안 따로 놀던 과학과 인문학이 처음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더욱 키워줄 다른 의견과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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