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정해연 지음 / &(앤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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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절반은 가해자를 다루었고, 절반은 피해자의 이야기다. 제본이 독특하게 되어 있어 앞, 뒤가 따로 없다. 가해자 분량을 다 읽고 나서야 구성이 남다르다는 걸 알았다. 같은 사건, 같은 시간대를 다루고 있는데도 긴장감이 엄청났다. 악의 없는 사람들의 삶이 망가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고령자 운전 사고 기사를 여럿 보았기 때문에 책장을 덮고도 생각이 길게 이어졌다. 사고는 한순간이지만 복구할 수 없는 주변인의 인생은 어떻게 회복해야 좋을까? 자극적으로 편집해 기삿거리로 올리는 정성을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쓸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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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최고 화신미용실입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34
이호영 지음 / 다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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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첫째는 역사를 왜곡했을까 봐. 둘째는 너무 처참한 나머지 오열하게 될까 봐. <경성 최고 화신미용실입니다>는 마지막 장까지 그런 걱정 없이 읽었다. 잘못 다루면 한없이 무거워지는 주제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잘 담아낸 덕분이다. 목숨과도 같았던 머리채를 사수해야 했던 그 시대 여성들이 뼈말라로 대표되는 과도한 미의 기준에 허덕이는 요즘 여성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

모쪼록 요즘 여성들이 상업적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튼튼한 마음으로 건강한 몸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상투를 자른 것은 당신이 스스로 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일본의 강압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 강압을 받아들인 것이다. - P65

일본인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온갖 핍박과 불공평함, 차별에 익숙해지는 것이라 했다. 그것에 의문을 품고 항의를 시작하면 조선 땅에서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걸 하루라도 빨리 바꾸려고 인덕이 부모님이 멀리 떠난 것이라고 했다. 인덕이만큼은 다른 누구의 땅도 아닌 조선인의 땅에서 조선인으로 살게 해 주겠다고 말이다. - P115

"이 경기가 남과의 경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야. 그러니 너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연마해라. 아주 날카로운 너만의 무기를 만들어. 그럼 네 앞을 스치는 단 한 번의 기회라도 잡아 낼 수 있을 게다." - P126

"내 머리칼을 자르는 것이 여기 있는 젊은이들이 자기 꿈을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나설 겁니다. 꿈을 가지고 튼튼하게 자란 조선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조선이란 이름을 되찾아 줄지 누가 압니까? 나는 그 세상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공평하게 노력하고 경쟁하는 세상,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결국 이루어 내는 세상 말입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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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근마켓 -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아무튼 시리즈 59
이훤 지음 / 위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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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지인이 있다. 괜찮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얻을 때도 있고, 진상을 만나 물건을 팔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모습도 보았다. 후자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당근을 해본 적은 없다. 앱은 깔았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당근에 들어가서 한 일도 살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다. 유용한 정보를 얻은 뒤로 방치해둔 앱을 켜보았다. 책에 언급되었던 메뉴도 보이고, 예전에 스치듯 보았던 판매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도 발견했다. 사기가 늘었으니 조심하라는 글과 어느 산 정상에 올랐다는 후기가 같은 화면에 공존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서 펼쳤던 벼룩시장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필요한 물건은 언제든 생기게 마련이니 조만간 나도 당근 해볼까?

물건은 그런 힘이 있다. 유효기간 있는 처방약처럼 즉각적인 위안을 주는. - P12

활자와 이미지로 빼곡한 SNS에서, 중고 거래의 장에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 이름일 동안 당신은 얼마큼 당신인가. - P59

사진도 여느 물건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소실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데, 사진 또한 어딘가 보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화된 사진도 파일로 저장되는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기에, 사진 또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자연스럽게 잊히고 바래고 지워진다. 그것을 간직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 또한 천천히 사라진다. - P66

"너희가 왜 당근 하는지 알겠어. 나도 가끔 여기서 살 것 같아. 근데 지난번에 다솔이가 말했잖아, 패션도 언어라고. 패션은 내가 유창해지고 싶은 언어는 아닌 것 같아." - P77

30여 년 동안 컵과 화병을 계속해서 찾고 들이고 아꼈을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게 들인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혼자 움켜쥐지 않고 놓아주기로 선택한 건 좋음이 내 반경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겠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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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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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깃든 것들은 세월이 흘러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사진이 그렇고 노래가 그렇다. 그 두 가지 모두 있는 싸이월드도 당연히 그렇다. 매일이 그냥 힘겨운 수험생 시절 재밌는 글이 보이면 무조건 스크랩해서 친구들과 함께 ㅋㅋㅋㅋ를 남발하며 웃곤 했는데. 내가 팔로우하는 대상은 적을 수록 좋지만,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은 지금의 SNS 흐름과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달랐던 시대를 살았다.

완전히 잊고 살았던 싸이월드라는 세계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웃었던 순간을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다.

각별하지만 남세스럽고 애틋하지만 오글대는 그것. 어딘가에 안전하게 간직하고 싶지만 ‘굳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 그것.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딱히’ 자주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은 그것. 그래도 절대로 사라지지만은 않으면 좋겠는 그것. - P14

싸이월드 일촌은 혈육과 구분되는 감성의 촌수였다. 일종의 ‘정서적 친족 관계’였다. - P51

싸이월드와 MSN 메신저가 페이스북으로, 카카오톡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바뀌었을 뿐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여전히 동일하다. 차단하고 끊어내고 싶은 사람들, 안 보고 싶은 사람들이 여전히 주변에 득실대고 있다. - P68

그럴 때마다 궁금했다. 수습 주제에 최신곡을 컬러링으로 설정해둘 그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던 것처럼, 야간 보고 자기 차례를 앞두고 동기의 풀 죽은 목소리에 먼저 반응하는 그 세심함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 P80

"이렇게 긴 회사 생활 끝에 남은 게 ‘사내 메신저의 달인’이라니, 결국은 호러인 건가?" - P82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우겼지만, 실은 상처와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성장해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한 시절, 그 관계, 그 감정의 문을 닫고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도 괜찮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을 도통 알지 못했다. - P96

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기묘한 느낌을 기억한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처음 봤을 때의 어리둥절함이 떠올랐다. 분명히 보고는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는 느낌. 마치 용어계의 다다이즘 같았다. 어감도 이상하고, 글자 모양도 이상하고, 의미도 모르겠고, 그 단어의 모든 것이 하나의 전위예술처럼 느껴졌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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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클래식 - 그 속의 작은 길들을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겪은 순간들을 꽤 소중히 여겨왔다 아무튼 시리즈 40
김호경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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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외한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점이 많았지만 예체능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기회가 닿아 감상했던 바이올린 공연, 감상문을 내기 위해 어렵게 구해서 듣던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듣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소리를 언어로 표현하고자 고군분투했는데, 전문 기자도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니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다. 낯선 이름과 곡명이 아직은 글자로 보일 뿐이지만 빈 칸을 하나씩 채워가듯 차근차근 듣다보면 언젠가는 절로 음악을 떠올리며 파생된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좋아하는 마음이란 그 마음의 주인까지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까닭이 뒤섞여 어떤 장면처럼 남는 듯하다. - P12

반면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다는 건 작품의 내적 원천을 발견하고 그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음, 화성, 박자를 하나하나 고려하면서 어떻게 청각적·정신적 구조물을 세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행위다. 당시의 나는 그 일에서 도무지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 P52

고독은 공포하는 순간 고유성을 잃는다. 이제는 누구도 고독하기가 참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가려진 고독의 틈에서 예술의 언어가 피어나고 종이 위에는 시가 쓰인다. - P59

한 손에는 맑고 깨끗한 정신, 다른 한 손에는 세상 속 고통, 절망을 똑같이 나눠 들고, 스스로를 망치지 않을 만큼 노력하면서 군중의 무관심이나 비판에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한 정신력을 다져야만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 P89

어떤 글은 너무 쉽게 쓰이고 어떤 글은 너무 어렵게 쓰인다. 이렇게까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사람이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까지 나 혼자 괴로워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놀랍도록 아무도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있다. - P96

코플런드는 거슈윈의 부와 명성을, 거슈윈은 코플런드의 지적 우월성을 서로 의식했다는 기록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 P127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하는 나를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을 깊숙한 곳에 품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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