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불의 연회 : 연회의 시말 - 하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1. 

개인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공동체라는 집단이 있었을 뿐 개인이 딱히 중요하게 의식되거나 어떤 중심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소설가라든가 음악가, 화가 등 어떤 뛰어난 개인의 예술작품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가 더해지고 더해진 뒤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집단 창작'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유와 그 전개 과정은 까먹었지만, 서양 근대에 이르러 개인이 주목받게 되었고, 현대에는 이 개인이라는 것이 모든 행동과 사고와 개념의 시작이다. 


'도불의 연회'는 서양의 개념인 '개인'이 동양에 급격히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근대적인 개인과 전통적인 공동체라는 두 가지 인식 및 개념의 거리 그로 인한 균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언제나 그렇듯 다양한 요괴가 등장하는데, 수많은 요괴들은 서로 다른 지방에서 다른 역사와 다른 특징으로 생성된 요괴들이, 서로 어떤 지점에서 교차되면서 영향을 주고받아 습합하고 소멸하고 덧붙여지고 새로 창조되어 또 다른 요괴가 된다. 그 과정에서 그 역사나 개념 등의 과정은 모두 사라지고 이름과 형태만 남은 요괴, 또는 이름이나 형태만 남은 요괴 등도 있다. 



2.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쓰려니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구나. 


어쨌거나 교고쿠도 시리즈는 언제나 근대의 과학과 논리라는 것이, 전통의 신앙이나 주술 등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순, 또한 일본 군국주의로 인해 생겨난 왜곡과 균열 등을 그려내고 있으나...


우부메나 망량에서는 이런 것들이 마주치는 과정에서 생긴 우연이나 실수 이런 것들이 사건을 만들어 냈었다. 


그런데 도불에서는 한 명의 절대자(에 가까운 인물)이 모든 사건들을 계획하고 만들어내는 형태를 띠고 있다. 


전지전능한 악이 등장하고 이에 대항하는 전지전능한 신 - 추젠지 - 의 구도라니, 구태의연하다. 


또한, 이 문제는 광골에서부터 계속되고 있는데, 우부메나 망량이 표제의 요괴과 소설 전체의 스토리와 주제 의식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광골-철서-무당거미-도불에서는 끼워맞추기 식이 강하다. 


인물들의 매력도 뚝뚝 떨어져가고 있는데, 광골에서부터 추젠지는 참으로 선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동시에 마지막에만 짠 등장해서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는 사건의 전모를 모두 알면서도 절대 개입하지 않는 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데, 이게 망량까지는 설득력이 있었는데 광골부터는 아니올시다다. 


왜 개입하지 않는지와 왜 개입하는지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기바나 에즈키로 등도 그 전 시리즈까지는 교고쿠도와는 다른 영역에서 나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이번 편부터는 천재 아니면 바보가 되어 버린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모두 마찬가지. 


8편까지 쓴 뒤 10년 동안 새 시리즈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소재가 떨어져서 그런 거 아니냐는 말이 돈다는데 이해가 슬슬 되려고 한다. 


다음 시리즈도 나오면 사기야 하겠지만, 이제 예전만큼 기대가 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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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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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처녓적 이름은 버사 메이슨이었다. 결혼한 뒤에는 버사 로체스터가 됐지만 아마도 그녀의 본명은 버사 에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런 남자를 신랑감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참 안쓰러운 일이었다. 


버사는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내려트린 미인이었고 대농장주를 아버지로 둔 부자였다. 열정적이고 활달한 성격 또한 그녀의 매력 중 하나였다. 반면 그녀의 남편감으로 지목된 남자는 추남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외양이 못난데다 돈 한 푼 없는 가난뱅이였다. 성격은 괴팍했고 영국의 흐린 잿빛 안개처럼 음울했다. 


하지만 남자는 영국의 유서깊은 집안의 차남이었고, 바로 그 이유로 버사의 부모는 그녀를 팔아치우듯 그 남자에게 거액의 지참금과 버사를 떠넘겼다. 

당연히 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주의적인 성격의 남자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버사를 감당하지 못했다. 부부는 서로를 경멸하고 두려워했으며 부부 사이는 마치 대서양을 사이에 둔 것처럼 낯설고 멀기만 했다. 


결혼하고 4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그녀에게서 밝고 화창한 서인도제도의 태양마저 빼앗아버렸다. 영국으로 데려가 시골 마을의 저택에 가둬버린 것이다. 


그 즈음 남편은 버사와 결혼하던 때보다 더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형이 급사하는 바람에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남자는 버사의 재산이 필요하지 않았고, 버사는 더더욱 필요하지 않았다. 


남편은 버사를 가두어버린 채, 진정한 사랑과 구원을 찾겠다며 유럽 구석구석을 누볐고, 버사는 돈과 젊음, 미래를 모두 잃어버린 채 침울한 저택에서 하루종일을 보내야 했다. 


그 즈음 영국의 다른 곳에서는 한 소녀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눈도 뜨기 전 부모를 잃고 외숙모 손에 자란 소녀는, 한 기숙학교에 입학해 자립할 수 있는 수단을 막 터득하기 시작한 터였다. 


그 동안 버사의 저택은 점점 침울한 곳이 되어 갔다. 


남자가 버사를 이곳에 부려놓은 것처럼 거추장스러운 '자신의 여자'들을 저택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잃고 의지가지없게 된 노인을 가정부로 들였고, 정부가 떠맡긴 딸아이를 처박아 놓았다. 남자가 한때 자신의 편의나 쾌락을 위해 취했지만 이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여자들이, 마치 철지난 가구처럼 저택에 쌓였다. 


처음으로 남자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여자 - 기숙학교에 다녔던 소녀가 이곳에 왔을 때 버사는 자신의 반쪽을 만난듯한 기쁨을 느꼈다. 소녀의 강단있는 태도와 독립적인 자세, 분별력과 판단력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소녀는 겉으로는 퀘이커 교도처럼 절제되고 금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었으나 안으로는 자유와 희락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소녀가 남자에게 끌렸을 때 버사는 조금 골이 났다. 소녀가 그보다는 더 나은 남자를 만났으면 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남자는 버사와 결혼했을 때보다는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저 끝간데 없는 잘난척과 자부심, 여자를 소유하고 보호하려는 마초적인 태도는 여전히 꼴같잖았다. 무엇보다 그가 소녀에게 '해 줄 수 있다'고 뻐기는 돈과 부는 남자 본인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버사가 그에게 준 것이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소녀가 남자의 곁을 떠났을 때 버사는 한편으로는 안심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녀의 눈물로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버사는 소녀가 행복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소녀가 저택을 떠나 또 다른 모험을 만나며 자신과 싸우고 있는 동안, 버사는 소녀를 위해 무언가 해주기로 결심했다. 


어느 밤 버사는 감금된 방을 떠나 아랫층으로 살금살금 내려왔다. 버사는 촛불을 들어, 이제는 낡고 때가 탔으며 유행이 지난 커튼에 불을 붙였다. 바람이 좋은 밤이었다. 커튼에 붙은 불은 기세좋게 다른 곳으로 옮겨 붙었고, 곧 그 붉은 혀를 발록처럼 날름거리며 저택 곳곳을 핥아내렸다. 버사를 가두고 있던 곳, 남자의 여자들이 꼼짝없이 남자의 비위를 맞추며 붙들려 있어야 했던 곳, 버사의 육체와 정신의 구속복이었던 저택이 밝고 환한 빛을 내며 검게 무너져내렸다.  


불길은 남자의 두 눈과 한쪽 팔도 먹어버렸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자신감도 바쳐야 했다. 마치 자신만이 소녀의 유일한 구원이자 의지처인 것처럼 굴었던 오만함도 녹아 내렸다. 


남자는 이제 예전처럼 우쭐거리진 못할 것이다. 타인을 함부로 시험하고 평가하고 재보는 장난질도 치지 못할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버사와 그의 가정부, 정부였던 프랑스의 무희, 그 무희가 낳은 딸, 그리고 이곳을 떠난 소녀보다 더 잘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이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버사는 가뿐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타오르는 불길과 나풀거리는 재속에 몸을 누였다. 


그리고 겸손하고 양순해진 남자를 소녀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버사 역시 소녀의 품안에서 평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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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블로거 문학 대상] 문학에 관한 10문 10답 트랙백 이벤트

질문 자체가 너무 광범위해서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만 답한다.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 생각해보니 별로 가리는 건 없는데... 요즘엔 추리 소설과 가상 역사 소설이 당기는 듯...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 미야베 미유키의 낙원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 최근 접한 작가 중 '발견했다'고 생각되는 작가는 역시 미야베 미유키이다. 대중추리소설 작가이니 가벼울 것이라는 예상을 깼다. 사건을 둘러싼 주변 인물과 상황을, 마치 날실과 씨실로 직물을 짜듯 연결하는 작업이 몹시 촘촘하고 세밀하다. 게다가 속도감있는 문체와 인물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 몰입하게 만드는 구성 등 걸출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시거. '완전한 재앙'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 불가사의한 살인마의 모습은, 피에 미친 싸이코라기보다는, 그리스 신화 또는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운명의 신같은 느낌이다. 아무런 감정없이 재판관이 판결문을 읊조리듯 등장인물에게 죽음을 알리는 시거의 모습은, '노인을 위하지 않는 나라'에서 누구든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운명을 느끼게 해 준다.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 자신과 가장 비슷하나도 느낀 인물은 '사립학교 아이들'의 주인공 리,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은 '모방범'의 아리마 요시오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 대학시절, 20대를 함께 보낸 친구에게 '위키드'를 몹시 주고 싶다.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 2mb에게 모든 책을 안겨주고 싶다. 읽어도 이해는 못 하겠지만, 최소한 책 읽느라 바빠서 다른 짓은 못하겠지.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작품성 물론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책일텐데,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었던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읽고 나서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띵했을 정도였으니... 엄청난 책이었다.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 모방범 "범죄는 사회가 원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지금 책이 옆에 없는 관계로 정확한 문장은 생각나지 않는다.)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인생의 책'이니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꼽을 순 없겠군... 여러권 있지만, 현재로서는 카프카의 '성'과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꼽고 싶다. 이유는... 사람(나 자신)과 사회의 예측 불가능성, 파악 불가능 때문일까... 사람이란 건,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이렇지 않을까라는 예측 (주변의 말에 영향을 받은) 그리고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 속에서 나름 구성하고 있을 뿐... 그렇기 때문에 나를 배신하는 상황은 수도없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게 산다는 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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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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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 코드 네임 007, 제임스 본드의 수많은 본드 걸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본드 걸은 하나의 상징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섹시하며, 무엇보다 남자를 돋보이게 해 주는 인물이다. 또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수명이 끝나므로, 현실적이지 않고 일회적이기 때문에, 얽매지이 않고 연애(섹스)만 하고 싶은 남자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최고의 애인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남성이 원하는 여성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녀의 역할은, 본드 걸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남자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데 있다.

그렇게 수없이 뒤바뀌는 본드 걸은, 제임스 본드가 다른 본드 걸 곁으로 떠났을 때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속의 본드 걸 미미는, 자신이 일회용이고 더 이상 제임스 본드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무엇보다 제임스 본드의 "난 본드, 제임스 본드, 스파이야. 당신은 날 몰라 (p. 46)" 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직접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미미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본드에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쏟아부었던 건 아니다. 그녀는, 다른 모든 여자들이 사랑하는, 그리고 심지어는 남자들도 질투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남자, 부유하고 권력의 핵심에 닿아있는 남자를 획득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결혼 시장에서 1등 신랑감으로 꼽힐 남자를 낚은 덕에 편하면서도 매력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그 동안 힘들게 모은 월급을 여행에 모두 쏟아부은 것도 본드를 만났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괜찮은 투자였다는 위안을 갖다준다. 

하지만 본드가 미미를 배신하고 다른 본드 걸을 만나자 미미는 자신이 꿈꾸었던 유한부인으로서의 삶이 박살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배신감과 절망에 빠진 미미를 더욱 자극하는 것은, 본드가 배신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모르는 그의 삶이다. 남자들의 삶, 남자들의 세계, 남자들이 권력.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들은 수많은 본드 걸들을 양산하고 버리고 휘두르는가. 미미는 그 무한한 힘을 얻기 위해 남자들의 세계에 직접 뛰어든다. 

희망과 설렘, 동경을 안고 뛰어든 스파이의 세계. 하지만 그것은 미미의 예상과는 달리 미미 언니가 운영하는 고깃집처럼 누추하고 현실의 때가 묻어 있다. 어떤 이는 편하게 노후가 보장되는 공무원 생활을 위해 뛰어들었고, 어떤 이는 자신이 맡은 부서의 일이 자신의 꿈과 맞닿아 있다고 믿고 들어왔지만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주어지는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힘들다. 스파이의 세계 밖에서는 마냥 매력적이었던 제임스 본드도, 이곳에서는 상사의 명령에 이리저리 시달리는 고달픈 샐러리맨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이곳은 코드 네임의 세계이다. 미미는, 미미라는 이름을 버리고 코드 네임 013, 또는 작전에 주어진 이름인 오란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자신의 과거-사생활(언니, 형부, 친구 등)과 결별할 것을 강요받는다. 사(私)는 없고 공(公)만 있는 세계. 또는 사와 공이 어지럽게 뒤얽힌 세계. 모든 인간관계와 감정이 업무로만 이해되고, 때에 따라선 누구든 배신해야 하고, 그래서 누가 자신을 배신할 지 몰라 모두를 의심하며 지내야 하는 세계.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보는, 남자들의 세계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와 너무나도 이질적인 이 곳에서, 미미는 미아가 된 듯한 어지럼증을 느낀다. 이곳에는 미미가 원했던 권력은 없었고, 권력의 이미지만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소설에서 미미는 몇번이나 되풀이하며 "나는 여자가 아니라 훌륭한 스파이랍니다. 따라서 여자가 흔히 저지르는 감정 상의 실수를 범하진 않아요." 라고 강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미미의 방식은 대단히 여성적이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게 됐는지 혼란에 빠진 미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적국의 스파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쭉 들려준다. 미미는 "검은 방에 앉아 있는 적국의 플라이에게서 내 얼굴을 보았고, 그녀가 나의 잃어버린 쌍둥이, 짝패같다는 생각(p.186)을 하며, 그녀와의 공유점을 찾아가고, 적국의 스파이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교감을 형성한다. 이렇게 얻어낸 정보로 미미는 내부의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내지만,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 역시 지극히 여성적이다. 미미는 그것을 상부에 알려 공로를 세우는 대신,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차가운 조직사회에서, 애정(사적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고, 질투까지 섞이면서 왜곡됐던 남자들의 애증은 미미 안에서 정화된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여자와 여자 사이의, 아버지와 딸 사이의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것이다. 

남자들의 세계를 여자들의 감성으로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미미가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제임스 본드를 사랑한다. 본드 걸로 만났을 때는 평생 뜯어먹고 살 수 있을 남편감으로 사랑했다면, 그래서 그의 남성적이고 마초적인 매력을 사랑했다면, 스파이가 된 지금은 아직 너무 어리고 여리고 작은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사랑한다. 그녀가 직접 들어가서 본 남자들의 세계는, 껍데기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발렌타인 데이 초콜렛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대사, "난 본드걸 미미. 013. 스파이야. 당신은 날 몰라."(p.208)은, 앞에서 제임스 본드가 했던 말과는 다른 울림을 준다.

너무나도 발랄한 제목과 표지 때문에 기대치가 너무 낮았던 탓인지, 오히려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내용은, 성정치학에 대한 이론으로 뒤덮힐 여지가 충분하지만, 오현종은 시종일관 캐릭터를 유지하고 그들의 스토리를 이어감으로써 그런 위험을 피해간다. (최근에는,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면 되지 이걸 왜 읽어 - 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자신들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쓴 게 아닌가 의심갈 정도로 이야기는 없고 이론만 가득한 소설들이 너무 많다. 농담이 아니고 그럴려면 차라리 사회과학 서적을 쓰시라고. 계몽하니? ) 다만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고 허를 찌르는 깊이가 부족한데다, 뒷부분에선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흔적이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게 겨우 두 번째 장편소설인 점을 감안한다면, 담백하고 세심한 캐릭터를 만들어낼 줄 아는 이 힘으로 새로운 이야기꾼이 태어나길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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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 -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의 기억 한 자락이다. 내가 프랑스란 나라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이었다. 문제는, 내가 모순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한 나라는 프랑스였다. 이유는 프랑스 혁명때문이었다. 화려한 궁중과 아름다운 귀족들, 한 편의 영화같은 사랑과 비극적인 운명. 그리고 단어만으로도 설레이는 자유와 평등, 박애의 기치를 높이 들고 봉기한 민중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붉은 피를 흩뿌려야 했던 그들의 의기.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무엇보다 낭만적으로, 그리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혁명이 성공했다는 점일 게다. 유럽 국가 중에서(잘못된 상식으로는 세계적으로) 최초로 왕정을 뒤엎고 현대 민주주의 기초를 자력으로 이룬 나라, 그것도 모자라 자유, 평등, 박애라는 진리를 전 세계에 전파한 나라. 반대로 내 미움을 산 나라는 영국이었다. 역시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와 앙숙이었기 때문이다. 이 놈의 영국이란 나라는 어쩌면 그렇게 프랑스와 맞붙었을 때마다 족족 이겼는지. 나는 언니들의 세계부도에서 영국와 프랑스의 식민지 수를 비교하면서 남몰래 가슴아파하곤 했었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나라이기 때문에 좋아했던 프랑스가, 식민지를 영국보다 적게 거느린 사실에 대해 슬퍼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때 내 감정에는 아무런 거짓도 거리낌도 없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못했던 내 감정과 사고방식, 정말 슬픈 일은 그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과 감정을 그렇게 오래도록 느낄 수 있었을까? 짐작도 못 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우승열패의 신화’는 그 이유의 단초를 준다.


내가 약간 나이를 먹은 후-아마도 중학생이 된 뒤였든 듯 하다.- 제국주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됐을 때는, 프랑스가 영국보다 나쁜 짓을 덜 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좀 더 웃긴 사실을 고백하자면, 아마 프랑스가 일부러 식민지를 덜 거느렸을 거라고 생각했다.)한 마디로 나는, 프랑스가 영국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생존경쟁이다. 생존경쟁의 전제는 약육강식이다.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며,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뼛속깊이 박혀있다. 서구에서 발생한 약육강식 논리를 주로 삼고 있는 사회진화론과 함께 서구의 발달된 과학문명과 강대한 군사력을 접한 동양인들에게 서양은 강함-진화(개명, 인류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길)로 인식된다. 따라서 서구의 자유 민권주의조차 민중이 무수한 피를 흩뿌리면서 쟁취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강대함을 갖추게 된 하나의 조건-발전단계로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린 날 매력을 느꼈던 프랑스 혁명의 자유,평등,박애 사상은 그 이데올로기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늘날의 선진국 프랑스를 있게끔 한 동력으로 보였던 것이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나에게,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단히 종교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 전세계의 절반을 식민지로 거느릴 수 있는 강한 국력을 동급으로 생각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박노자는 이 ‘우승열패의 신화’의 시초를 찾아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구 열강의 문화와 사상이 한국 사회에 유입되던 시점이다. 당시 서구에서는 사회진화론이 대세였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약한 것은 자연 소멸되고 더 우열한 인자가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점을 사회에 접목시킨 사회진화론자들은, 사회 역시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가 소멸하는 것이 당연하며 사회가 발전해나가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리라기보다는 당시 왕조시대를 갈아엎고 세력을 키워나가는 부르주아 계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헤게모니 작업의 일종이었다.

이러한 사회진화론은 동양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일단 그들은 서구의 발달한 산업과 과학, 강력한 군대와 경제력 등에 찬탄하면서 그들의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서구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계층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는가. 일단 글줄을 읽을 줄 알았고 서양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산층 계층이되, 인맥과 집안세력에서 밀려, 한학만으로는 지배층 중심으로 파고 들어갈 수 없는 비주류 지식인들이었다. 서양의 부르주아들이 그랬듯이, 동양의 비주류 양반계층 역시 기존의 세력판도를 바꾸고 자신들이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 사회 진화론이 매력적인 것이었음에 틀럼없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진화론과 함께 민권주의를 받아들이되, 이때 민권은 우둔한 민중을 다스릴 수 있는 자신들의 민권이지, 진정한 의미의 모든 인민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애국의 실체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잡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국가로, 인민들이 중심이 된 국가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은 서구의 자유, 민주,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를 국가주의로 변형해 포섭하게 된다. 이때 일본사회를 등장으로 함께 등장한 것이 아시아주의다. 일본의 신지식인층이 주창한 아시아주의는 세계의 패권을 황인종과 백인종의 대결로 이해해, 황인종이 대동단결하여 백인종의 침략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다.


사회진화론과 아시아주의의 공통점은, 삶은 생존경쟁이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이보다 강해야 하고, 강해지는데 필요한 요소들은 선(善)이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예전의 유교적 이념인 전통적인 충,효 개념도 역시 부강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애국해야 하는 이유는 애국해야 나라가 부강해지기 때문이고, 나라가 부강해져야 세계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주의가 통한 것도, 세계는 황인종과 백인종의 대결의 장이며, 싸워 이겨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단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개인의 인권과 행복, 자유는 모두 무시된다.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논리, 또한 국가주의는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오롯이 살아있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짓밟는 것이 당연하다 느끼는 이가, 그리고 황인종의 단결과 부강을 이끄는 것은 일단 개화와 개혁에 가장 먼저 성공한 일본이라 느끼는 이가 친일파롤 변절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여기서 최남선, 이광수 등 일제 강점 이전에 계몽운동을 비롯한 부강운동을 이끌던 이들이 친일파가 된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게 나와서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될 정도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진화론의 대항 이데올로기가 조금씩 형성되지만 이들은 여전히 비주류였고, 또한 아마도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 비극성이 더욱 커지는 6.25, 그리고 6.25로 인한 우편향적인 사회분위기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사회진화론의 기본 인식이 주류 이데올로기로 팽배해있다.


박노자의 이 책은 일단 한국 사회의 19세기 말 사상사-사회진화론의 유입과 영향력-를 주제로 한 역사책이다. 박노자가 보론에서 밝힌 것처럼, 반 사회진화론의 입장을 확실히 한 뒤, 역사적 사실을 전문적으로 참고해 사회진화론의 유입과 형성과정을 도출한 ‘전문적이고 대중적(이게 무슨 소린지 솔직히 말하자면, 역사책을 거의 안 읽은 관계로 잘 모르겠지만)으로’ 저술한 역사책이다. 개화기에 대해 무지한 것을 떠나,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책으로만 접해 본 내게는 여러 가지 유익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신채호와 독립협회, 그리고 당시의 친일파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혼란이 많이 정리될 수 있었다. 또한 최남선, 이광수 등에 대해 단지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여기저기 붙는 소인배라는 단순한 인식에서 벗어나 그들이 왜 친일파로 흐르는 것이 당연했는지 그들의 의식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수확이다.


한국 사회가 박노자라는 냉정한 눈과 뜨거운 가슴을 가진 역사학자를 얻은 것은 큰 수확이다. 그는 남북의 대립으로 인한 좌파 사상의 탄압과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피해의식에 찌들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냉정한 제 3자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든 하지 않든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얻는 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다가 마지막 후기 부분에서 제동이 걸렸다. 세계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꾸준히 진화, 발전한다고 말하는 듯한 부분은, 내가 동의하기 힘든 점이다. (여기에 대해 확실한 내 주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어렴풋이 느끼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달 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악당이 슬쩍 살아나면서 후속편을 예고하는 영화처럼, 이 책 역시 후속편을 예고하고 있는 듯 하니, 20세기 초반 식민지 조선에서 대한민국 수립까지 이 ‘우승열패의 신화’는 어떻게 명맥을 지켜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는지에 대한 심도있는 박노자의 후속작이 기대된다. (음? 안 써주려나?)

 

ps: 마지막 장에서는 한용운에 대한 애정이 구구절절이 묻어난다. 문득 저자가 불교신자라는 사실이 떠올라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박노자를 비롯한 몇몇 지식인이 진정 존경스러운 이유는, 언행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반성한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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