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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ㅣ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요시다 슈이치를 정말 좋아한다.
펑소 "정말"이라는 수식어를 굉장히 자주 쓰고 좋아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에게 붙는 "정말"이라는 수식어는 보통 내가 사용하는 "정말"보다 천배 이상의 애정이 농축되어 있다.
얼마 전 까지 나는 일본 문학의 대표적 이미지는 '채울수 없는 상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봤던 유명 작가의 작품들은 정말 작은 감정 하나로 어마어마한 상실을 표현해 내곤 했다. 처음에는 그 감정의 폭풍에 정신없이 휘말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마치 내 안에는 상실감만이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일본 문학을 많이 읽기는 했어도 즐길수는 없었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일본 문학을 놓을수는 없었다. 영미 소설이나 독일, 프랑스 고전에 한참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늘 일본문학 코너로 돌아와 책 등만이라도 훑어봤다. 오며가며 들은 작가와 작품들이라고 해도, 마치 신 세계인 것 같이 낯선 서양 문학 코너보다는 푸근하게 느껴졌다. 지긋지긋한 집이라도 들어가면 왠지 안심되는 기분이랄까.
그 와중에 찾아낸 작가가 요시다 슈이치.
요시다 슈이치는 특별하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을 하자면 울리고 웃기고 사람 정신을 쏙 빼놓는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청춘물과 추리물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청춘물이 더 좋다. 그의 청춘물에는 늘 바보같은 소년이 존재하고, 독자는 그들의 순수함에 빠져 미소짓는다.
<퍼레이드>는 신혼부부용 맨션에 밀입국자 처럼 모여 사는 다섯 남녀의 이야기다.
선배의 여자를 사랑하는 요스케
잘나가는 배우를 남자친구로 둔 고토미
남자의 신체 일부를 일러스트로 그리는 미라이
남창인 사토루
조깅 매니아에 깐깐한 나오키
이 다섯명이 각 채터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다섯명이 전부 연루된 사건은 하나도 없고 단지 자신의 사생활만 이야기 한다. 자신의 고민이라고 해 봐야 소소한 일상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만한 고민거리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조하며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는 개개의 주인공들의 비밀을 모두 공유한 동반자, 즉 한 집에 살고있는 동거인들 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서의 만족감을 느낀다.
"난 이 집에 있으면 마치 채팅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이 공간에 맞는 나를 만들어 내는 기분이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초반부에 나온다. 누구도 서로를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자신마저 각자의 공간에 맞는 자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인간의 원형적인 고독과 타인과의 단절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겁지 않게, 작가 특유의 방방뛰는 개그를 날리며 독자를 혼란시킨다. 마치 이 책속에 나온 세계가 단지 이야기일 뿐이라고.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 제목이 왜 퍼레이드 인지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만든 가면을 쓰고 퍼레이드를 하는 사람들. 화려한 춤과 조명속에 가리워져 본질을 알아보지 못한다. 독자는 퍼레이드에 정신이 팔려 자신이 그 세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나 혼자서 그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관객인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