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우 - 개정판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드라마 <섹스앤더 시티>에서 나온 대사가 문득 생각났다. 

'모든 관계는 정의하려 할 때 어긋나기 시작한다'고. 

이 작품에 나온 두 남자도 그렇다. 남녀, 국적, 나이와 상관 없이, 그저 주어진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뿐이었다. 자신이 기다리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처음 이 작품의 'BL설'은 출판사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도대체 이게 왜 BL물이냐며 수많은 포스팅과 감상문들이 블로그에 올라왔지만, 불만은 불만일 뿐, 이미 쏟아져 나온 카피글은 어쩔 것이며, 그 BL물 스러운 띠지는 어쩔 것이야;;;  

"반했다고 말해"라니...

하지만 본문을 읽다 보면 사실 그 대사가 얼마나 요염하고 슬프게 들리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을 보고 그 책을 게이물이라고 낄낄대며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여운을 느낀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모를 기로 속에서 주인공 가즈아키는 중국인 살인 청부업자  리오우를 15년 동안 기다린다. "대륙으로 너를 데리고 가 주겠다"는 약속만을 굳게 믿은 채. 만약 여기서 가즈아키가 리오우만 그리워 하며 매일밤 눈물을 흘렸다면 그야말로 BL물이겠지만, 가즈아키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게다가 처음 만난 22살에서 15년이나 흘러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재회를 한다. 이쯤되면 이들 사이에는 사랑, 혹은 우정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650페이지에 달하는 종이 속에서, 15년 간의 세월 속에서 단 네 번을 만난다. 단 몇 번의 만남으로 15년을 기다릴 수 있는 자신, 15년을 기다리게 한 자만,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반했다고 말해." 

두 번째 만남에서 이름을 묻는 가즈아키에게 리오우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내게 반했기 때문에 이름을 묻는 거라고 말하라 했다. 

이토록 강렬한 만남에 눈을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저 둘은 애써 그 감정, 관계를 정의하지 않았고 그러한 감정을 거부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들의 관계를 우리가 일부러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서툰 단어로 자신들을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들의 관계가 더욱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만큼 우리를 순응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내가 다카무라 가오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의 대담한 필치 속에는 왠지 모를 아련한 슬픔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표작 <마크스의 산>에는 연쇄 살인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는 순수와 범죄의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 선 불쌍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책 어느 페이지를 펼쳐봐도 한가득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읽기 힘들다는 산에 대한 엄청난 묘사는 거대한 산 앞에 놓인 인간을 더욱더 한없이 작고 힘없는 존재로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즈사와를 잃은 간호사의 독백 장면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댈 수 있지만 말 하면 할 수록 '언어는 끊임없는 미끄러짐'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낄 뿐이었다.

<리오우> 는 다카무라 가오루 여사의 초기작인 만큼 <마크스의 산>보다는 쉬운 문장을 쓰였다. 사실 총과 공장에 대한 묘사가 교고쿠도의 장광설 만큼, <마크스의 산>에 나오는 산의 묘사 만큼 흘러나오기는 하지만, <마크스의 산>을 읽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마크스의 산>보다는 확실히 보기 편하다. 그리고 다카무라 가오루 특유의 은은한 아련함은 작품 내내 가득 퍼져있다. 리오우와 가즈아키, 둘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은 다카무라 가오루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술되지마 오히려 그게 가슴을 더 후벼판다. 그리고 그 둘을 둘러싼 배경은 그야말로 '격변의 아시아'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정신없이 큰일이 빵빵 터져 주신다. 다만 가즈아키의 시선으로 그 사건들을 봐서 그런지 건조체도 아니고 이건 완전 '사막체'로 서술되어 사실 큰 사건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게 독자가 헷갈릴 정도다. 이래서 다들 다카무라 가오루를 대단하다고 하나-싶을 정도다. 게다가 번역인은 김소연씨.ㅎ 이제는 너무 커져버린 그녀의 초기 번역작인 만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책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처음에는 그냥 스케치만 눈에 들어와 좋아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디자인을 다시 보니 페이지 저 리오우라는 글씨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즈아키와 리오우가 두 번째 만났던 모리야마 공장 안쪽 방에서, 리오우가 립스틱으로 자신의 이름을 테이블에 쓰는 장면. 그래서 리오우라는 한자만 저렇게 붉은 색이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었을때 표지에서 다시 한 번 묘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덮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손안의책 센스. 손안의책은 늘 끝내준다.ㅎ 

 PS- 이 책은 누가 뭐래도 연애소설이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의 연애소설의 진가를 맛보시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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