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스의 산 1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왠지 모르게 브로크 백 마운틴을 떠올리게 한다. 장르도, 내용도 정 반대지만 산과 그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서 연상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본성이 순수이든, 악랄함이든, 시기이든, 분노이든 간에 양쪽 작품 다 웅장한 산과 그 앞에 놓인 인간의 대비는 그 존재 자체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순수와 범죄의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 선 불쌍한 인간의 이야기”라 하겠다. 주인공인 미즈사와는 연쇄 살인을 일으킨 범죄자지만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가, 그는 “왜” 정신병자가 되었는가를 보면 독자는 어느 쪽 손도 들지 못한다. 범인을 좇는 고다형사의 리얼한 사건일지와 미즈사와와 간호사의 절절한 이야기 역시 푹 빠져 헤어날 수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순수와 범죄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아이러니는 이 작품이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 중 최상의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읽는 내내 조금 불안했던 것은 작가의 엄청난 묘사력이었다. 93년작을 개고하며 작가가 자연, 심리 묘사에 더욱 힘을 실었다는데 이것 때문에 지치는 사람도 어지간히 있겠구나 싶었다. (플루베르의 작품도 읽다가 지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문장들에서 씹는 맛을 느꼈다. 묘사 하나 하나가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에 완독 후 지금도 아무 페이지나 열어 문장을 열심히 읽고 있다. 오히려 아직도 이런 문장과 묘사를 하는 작가가 남아 있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진, 성실한 필력을 가진 작가의 증거라 생각한다.

끝으로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께 한마디 하자면 이 작품을 읽으려면 산에 올라야 한다. 단단히 옷을 껴입고 지팡이도 챙겨서 눈 덮인 산을 조심조심 느릿느릿 걷는 기분으로 읽어야 한다. 산의 정상에 오르려면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것과 같이 이 책도 인내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모든 것을 잃은 미즈사와가 필사적으로 오른 마크스의 산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등산로이다.

***

이렇게나 애정을 외치다가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 작품 역시 여느 미스터리 소설과 같이 작가가 주머니에 꼬깃꼬깃 숨겨둔 비밀을 맨 마지막에 슬그머니 내 놓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800페이지도 넘는 방대한 분량을 편지 한 장으로 해결하려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는 곧 마지막 장면 때문에(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상쇄되므로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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