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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진검승부 - 조선왕조실록에 감춰진 500년의 진실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조선사 진검승부 -역사의 재해석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요즘 들어 조선왕조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이 역사학계 내외에서 활발하다. 학술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교양 차원에서도 높은 관심과 조명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왕조의 장구한 역사를 기록해 낸 조선왕조 실록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재해석이 눈에 띈다. 과거의 한 시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면 할수록 좋다. 해석을 통해서만이 과거에로의 여행이 가능한 후대의 사람들에게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해석을 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질 때 그 속에서 가장 타당한 해석을 만날 수 있고 경도된 역사 인식을 지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 '조선사 진검승부'는 의욕은 넘쳤으니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 한 권이 아니었나 싶다. 신문기자로서 조선왕조실록의 재해석이라는 광대한 작업에 착수한 저자는 실록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역사의 가르침'에 대해 겸허한 마음과, 평가하는 것이 아닌 공감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접할 때에 무엇보다 갖춰야 할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교양으로서 역사를 취할 때 우리에게는 한 가지 더 필요한 자세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실록에 적혀져있는 사건들 중에서 일부를 저자가 발췌하여 그 사건의 배경과 사후 해석을 덧붙이면서 늘어놓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과 사건들의 연결고리이고 전체적인 그림과 그로써 밝혀지는 조선왕조에 대한 새로운 역사 해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각 주제들을 관통하는 굵직한 역사적 통찰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매 주제마다 저자가 끝부분에 한 마디씩 던지며 현실정치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글귀가 있지만 통찰로 연결된다기 보다는 사소한 감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저자는 실록의 역사관에 공감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정치인들과 삶을 공유했을지는 몰라도 실록이라는 방대한 역사 기록에 대한 재해석과 평가, 이를 통한 시대의 통찰에는 소홀한 것 같다.
또 한가지, 이 책이 놓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라는 덩어리이다. 실록은 어디까지나 정치세계에 대한 기록에 불과하다. 또한 결코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기록도 아니며 (저자가 자주 밝히듯이) '승자의 기록'일 뿐이다. 실록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기록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접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실록에 너무 근접한 시야에서 역사를 재해석 했을 때는 정작 조선시대를 살았던 일반 민중들에 대한 삶을 읽을 수 없게 된다. 기록을 재해석 한다고 했을 때에는 그 기록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즉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유추와 평가도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역사를 새로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지난하고 힘든 일인 것이다.
소소한 읽을거리, 재미거리를 원한다면 이 책으로 충분하다. 역사에 대한 상식도 많이 쌓을 수 있다. 사건들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간다는다는 점도 이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연구자의 열정과 고뇌를 느낄 수 있고 '잘 된' 재해석을 접하고 싶다면, 같은 조선시대를 다룬 다른 역사서들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면 '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배상열)이나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1,2'(김인호, 박훤)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