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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평점 :
한 마디로, 요즘 지치는 일상 중에서 단 샘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준 책이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한 장 한 장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무릎을 치며 아! 맞아! 하고 추임새를 넣고 싶어지는 책.
무엇보다도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염증섞인 의문과 짜증에 통쾌한 답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닯기도 하다.
이 책은 유시민씨가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 썼다.
조금 더 일찍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무도 예측 못했을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그 어떤 낌새도 눈치도, 역시 이 책의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가 유시민씨의 논리에 대해 100% 공감한다고는 할 수 없다.
가령 사회자유주의라던가 하는 중도적인 정치이념도 나에게는 좀 더 검증해 볼 시간이 필요한 주장이다.
저자가 노 전 대통령을 모실 때, 국회의원을 하던 때, 공직에 있을 때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도 무척 흥미롭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어가는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전반부의 헌법에 대한 생활철학적 접근이 좀 퇴색되어가는 느낌도 없지 않다.
뭐 어짜피 저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또 나름대로 궁금증도 해결되고 그랬구나~ 하고 공감도 하게 되니 나쁠 건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저자는 한 사람의 화자일 뿐이고 다양하게 드러나는 시각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며, 다만 그것이 심정적으로 논리적으로 타 화자의 이야기보다 많이 공감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유시민씨의 글을 읽고,
내가 한국에 없었던 8년간, 특히 노무현 정권 때의 한국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2008년 초에 귀국한 후, 한국 사람들의 정치적 변화무쌍함과 거침없음과 또 한편으로는 (순전히 내가 보기에) 어리석은 정치적 판단과 그 행위가 솔직한 마음으로 적지 않이 놀랐던 참이다. 이명박정권 이후에 벌어지는 적나라한 '문명의 역행(위 책에서 인용)' 현장을 목도하면서 그 놀라움은 울화통으로, 분노로, 그리고 불가해함과 무기력함으로 연동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미 그 전에 이명박이 선출된 최근의 대통령 선거를 인터넷 중계로 타국에서 지켜보면서부터, 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이명박의 대통령 선출로 이어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마음 밑바닥에 응어리처럼 자리잡고 있던 차였다.
이 책은,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의 답답함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어쨌거나 최종적으로, 대안은 사람들이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고, 또 거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민주주의의 댓가를 후불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이명박 파쇼 정권의 등장인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처럼 약간 너그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래, 한번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댓가는 지불해야 하겠지만 또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 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이 책이 주는 느낌도 저마다 다르고 (그것은 반감 혹은 공감, 아니면 설득 혹은 반론의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평가도 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는 그토록 한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변화(혹은 성장)한 시기에 한국에 없었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나와 남의 삶에 대한 비전을 회복하기 위해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한 권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