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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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책이 판타지 소설처럼 다가왔다.

문학 시간에, 책에 흥미라고는 1도 없는 아이들에게,

한 시간 내내 소설을 소리내어 읽어준 것만으로도,

소설을 스스로 찾아서 읽게 된다니? 이 꿈만 같은 이야기.

 

작년에 나는 독서 강사라는 이름으로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권장도서 목록의 책들을 학생들이 읽게 한 뒤 독후감 쓰기나 독서 퀴즈 등으로 평가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 중학생 권장도서 중 하나인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앞에 두고 학생들은 "이걸 왜 읽어야 해요?" "중2병 같아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라!"명령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이 책은 첫문장부터 낯설다.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는다. 일주일에 평균 세 권, 많이 읽을 때는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 어디를 가든 가방에 반드시 책 한 권을 챙긴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시나요?

나는 대답한다.

재미있으니까요.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동화는 환상적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읽어 주던 동화책의 세계에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글자를 깨우치고 스스로 읽게 되면서 부모님 몰래 밤을 새서 책을 읽기도 했다. 나는 [해리 포터]시리즈를 처음 읽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분당의 한 서점에서 책을 집어들고 그 자리에 서서 두 시간 넘게 해리 포터를 읽었다. 그때 시리즈 2편까지 나왔었고 나는 그날 밤을 샜다. 책을, 소설을 읽느라.

 

이를테면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151쪽)

 

학교 현장의 독서 교육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소설을 소설처럼 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의 지식처럼 딱딱하게 굳혀 부스러진 조각들을 먹이며 빨리 소화시키라 명령한다. 그리고 한탄한다. 요즘 애들은 왜 책을 안 읽는지! 그런 뒤 책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독자의 권리,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어떤 책을 읽어도 상관없고 골라 읽고 거꾸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는 권리 열 가지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독서는 명령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스스로 읽는다.

독서는 수동태가 아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읽는다.

학생들 앞에서 이 말을, 독서 수업 시간이 되면 저 독자의 권리를 칠판에 커다랗게 쓴 뒤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는 그런 날이, 올까?

 

[소설처럼]을 읽으며 소설처럼 그 날을 상상한다.

 

#문지스펙트럼 #문지스펙트럼서포터즈 #소설처럼



출처: http://koalachocolate.tistory.com/176 [코알라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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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들
윌 듀런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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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사상들 #윌듀런트

 

-23,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생각을 정의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생각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현상이며, 우리 존재의 마지막 수수께끼다. 다른 모든 것이 생각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류가 이룬 모든 업적의 원천과 목표도 생각 속에 있다. 생각의 등장은 진화라는 드라마에서 위대한 전환점이었다

생각하는 건 쉽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생각 중이다. ‘이게 무슨 책이라고?’

생각을 잘 하는 것은 어렵다.

생각을 공부하고 탐구하여 깊은 사고로 나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기초적인 도구로써의 생각, 이를 탐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저자는위대한 사상가10’ ‘위대한 시인10’ ‘인류 진보의 최고봉10’등의 목록을 만들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저자가 ‘20세기를 대표하는미국철학자라는 점이다. 위대한 사상가의 첫 번째로 공자를 꼽은 점에서~’할 수 있겠으나 읽다 보면 목록에 공감이 가질 않고 반박하고픈 마음이(세계 제일의 사상가에 이 사람은 어울리지 않아!)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일주일에 일곱 시간씩 4년 간 이 목록의 책을 모두 읽는다면 철학 박사 못지않은 학식을 갖출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는교육을 위한 최고의 책100’에도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책들이 눈에 띈다

 

이 책의 가치는 우리에게 생각의 지도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다만 그 지도가 1960년대에 업데이트가 멈춰 있어 새로이 생긴 길이나 지도가 표시되지 않고 지명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그 틀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을 생각하는 어려운 일에 이 책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등불을 제공한다.

 

철학을 알고 싶은 자, 위대한 사상가들 목록과 유용한 책 목록을 참고하여

나만의 목록을 만들어라

인간의 위대한 생각 목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윌 듀런트를 존경한다.

#민음북클럽 #민음사 #독서 #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첫번째독자 #book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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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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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란 이상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에세이 선집,
이 기세로 [무한한 재미]까지 번역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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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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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물 흐르듯 넘어간다.
벌려놓은 몇몇 이야기들을 수습하지 못한 뒷맛
특히 나는 남자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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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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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첫 번째 독자의 신상명세,

 

대학교 졸업반 때부터 사범대생으로서 자연스럽게 임용고시를 준비,

3년 만에 최종 3차 까지 갔다가 1.5점이 부족하여 낙방,

바로 다음 해 1차에서 광탈, 다시는 임용고시를 보지 않기로 결심,

 

한 뒤부터 한겨레문화센터와 문지문화원 등 각종 소설창작강의를 수강하며 습작 시작,

5년 동안 20편 가량의 단편을 습작하고 장편 초고 집필 중,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전 최종에도 올라가 본 적 없음, 1차라도 통과한 건지 알 수 없음,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무엇 때문에 시험에서 떨어진 건지, 어디가 부족한 건지, 왜 입시에 성공하지 못하는지 아무도 내게 평가 기준 같은 것들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내 이십대를 지배한 임용고시와 신인문학상 공모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키가 팔척 장신에 손이 여덟 개 달린 거대한 검은 그림자를 상상한다. 그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지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공립학교 교사와 등단 작가를 선발하는 그 손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지, 왜 저 사람은 합격하고 나는 떨어진 건지 평가기준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임용고시는 모범답안을 공개하지 않고, 당선작의 기준은 소문만 무성하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정교사들과 등단한 작가들이 들어간 '높은 성'에 왜 나는 입장할 수 없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스스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분석하고 재조립한다. 공부가 부족했구나, 심사위원이 선호하는 문체와 거리가 멀구나, 올해 유행하는 개론서는 무엇이고 신춘문예용 글꼴과 자간은 어떤 것이지? 확신 없는 싸움 속에서 나는 서서히 닳아 갔다. 내 안에서 나를 조금씩 갉아 먹는 괴물, 패배감이라는 우울증이었다.

 

-17쪽, 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 시험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문학공모전이 바로 그 시험이다.

대학 입시와 기업의 공채 제도, 각종 고시나 전문직 자격증 시험도 모두 본질적으로 같다.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고, 지독히 한국적이다. 지원자는 모두 한 시험장에 들어가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친다. 소수의 합격자와 다수의 불합격자가 생긴다. 불합격자들이 좌절로 괴로워하는 동안 합격자들은 불합격자들과 멀어진다. 그들은 합격자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규칙을 배운다. 패거리주의, 엘리트주의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괴물의 정체는 공채라는 시스템이다. 수능, 고시, 공채, 지극히 한국적인 시스템. 누구든 시험을 칠 수 있고, 아무나 합격하지 못한다. 수능이나 고시의 공정성은 누구나 인정하며 그것을 폐지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큰 반발이 일어난다. 입시에 수많은 이들이 매달리며 자존감을 잃고 창의성을 갉아먹어도 '시험이 그나마 낫다'는 정서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왜 이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커져버린 걸까?

 

작가는 입시가 힘을 얻는 가장 큰 근거로 '간판'을 꼽는다. 2000년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장편소설공모전이라는 또 하나의 '입시'는 작가들에게 '등단'이라는 간판을 주고 출판사는 '소설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을 얻게 했다. 인정받은 작가라는 안정감과 함께, 서점을 방문한 독자들이 책을 고르는 기준점으로 이 장편소설공모전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 단체 구성원이 되는 입시에 통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자격증처럼 작동한다.(289쪽)'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신분은 다른 직종에 비해 불확실한 부분이 있고, 이를 등단이라는 제도가 간판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이 간판이 입시에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을 성공 이후 발전하지 못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간판을 얻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패배감과 좌절감에 빠지도록 한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전공 과목 최신 이론 공부를 소흘히 하는 정교사, 일년에 단 한 번 치뤄지는 임용고시에서 합격하지 못한 이들을 최소한으로 지원하는 제도 하나 없는 현실, 수많은 소설가 지망생들의 사라진 시간들, 간판 하나 얻기 위해 버려진 시간과 노력.

나 역시 그 간판을 얻기 위해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를 했고, 작가라고 불리고 싶어 공모전용 틀에 맞춰 글을 썼다. 문학 자습서를 쪼개 외우고 신춘문예용 글꼴로 내 글을 편집했다.

 

그 속에 내가 되고 싶었던 국어교사는 없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작가는 소설 등단 제도와 취업 공채 제도를 번갈아가며 제시하고 분석한 뒤,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짚는다-간판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 제안한다-그렇다면 간판 높이를 낮추자, 구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정보, 충분한 보상,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

 

특히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시하고 투명하게 공유할 것을 주장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지금 한국의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429쪽)' 등단이라는 간판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만들어 버린, 한국소설을 외면하는 독자를 위해 '독자들의 문예운동'을 전개해 보자는 시각에 동의한다. 영화에 비해 책, 소설은 비평의 절대적 개수가 적고, 등단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칭찬하기에만 바쁘다. 미등단 작가들도 활발히 활동하고 읽히는 환경, 베스트셀러나 몇몇 평론가의 의견보다 동네 책방 추천이나 작은 독서 모임에서 다양한 책이 공유되는 네트워크 구축, 등등.

 

서평을 지금보다도 더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은 독자가 되어야, 언젠가 내 글을 읽어 줄 또 다른 좋은 독자가 등장할 테니까.

 

객관적인 1차 자료들과 각종 도표, 분석 자료로 가득한 르포 형식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뜻밖에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건조한 문체와 아직은 제안 단계인 해결 방안을 보며 내 자아는 괴물이 갉아먹어 너덜너덜해진 부분들을 조금씩 고치기 시작했다.

 

나의 실패는 온전히 내 탓만이 아니었다.

공정했다고 생각했던 제도의 경직화와 각종 부작용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나 자신만을 책망하는 것은 내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판이 아닌 내 본래의 욕망을 생각했다.

선생님이라는 자격만을 받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즐거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은지.

작가라는 이름 하나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려 하는지,

매 순간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최선을 다해 써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싶은지.

 

나를 직시하고, 곧장 행동에 옮긴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은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책을 써 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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