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사상고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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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새해 첫 달 이 책과 함께 보낼 수 있어 행운이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삶의 습관을 점검하고 새로운 태도로 몸과 마음을 다듬을 좋은 기회니까.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쇼펜하우어가 건네는 적절한 조언들에 큰 도움을 받았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의 원제는 '소품과 부록'이고 쇼펜하우어의 대표 저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후에 출간되어 그에게 뒤늦은 명성을 안겨 준 책이다. 독서 순서는 이 책을 먼저 읽고 '나 쇼펜하우어와 궁합이 잘 맞네...?'하면 자연스럽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훨씬 명료한 서술과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내용들-우리에게 행복만큼 중요하고 궁금한 관심사가 어디 있겠는가?-이 쇼펜하우어의 세계로 진입하는 장벽을 가볍게 낮춰 준다.


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제목에 집중하여 '행복론'을 중심으로 정리한다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이란 '나 자신으로부터, 고통을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것'이라는 방법론으로 말할 수 있다. 세계는 나의 표상-먼저 내가 있고 그다음에 세계가 있다-이고, 삶이란 고통이며,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세계관은 고통으로 가득한 의지(욕망, 욕구, 갈망, 추구, 노력 등)로 이루어진 곳이다. '인생이란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는 힘든 과제와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때 "나는 인생을 견뎌 냈다"라는 말은 멋진 표현이다(266쪽)' 행복한 상태는 소극적이고 고통은 적극적이기에 우리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행복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37쪽, 이 때문에 가장 좋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많을수록, 따라서 향유의 원천을 자기 자신 속에서 더 많이 발견할수록 인간은 더 행복해진다.

115쪽, 그러므로 행복론은 그 명칭 자체가 미화하는 표현이고, '행복하게 산다'라는 말은 '덜 불행하게', 즉 그럭저럭 견디며 산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가르침으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인생이란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이겨 내고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127쪽, 현재만이 진실하고 현실적이다. 현실은 현실적으로 충만한 시간이고, 우리의 생활은 오로지 현실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항시 명랑한 기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불쾌감이나 고통이 없는 그런대로 견딜 만한 자유로운 시간은 일부러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과거에 품은 희망이 실패로 돌아갔다거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짜증 난 얼굴로 현재를 우울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지난 일에 대한 불만이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재의 좋은 시간을 내팽개치거나 경솔하게 망쳐 버리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131쪽,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기 자신이 전부일 수 있어서, "나는 모든 재산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확실히 우리의 행복에 가장 유익한 특성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관점이 절망적이라는 인식보다 고통이기에 이를 견딜 방법을 모색하는 긍정적 태도가 크게 다가왔다. 고통을 견딜 주체는 오직 나 자신 뿐이니 내가 할 일은 나를 다듬는 것.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외부의 요인(돈, 명예, 우리가 욕망하는 수많은 것들)에 나의 행복을 의탁하고 얽매이지 않으며, 스스로 자유로워 질 것. 그렇다고 세계와 아주 단절되지는 말 것. 고슴도치들이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듯(이 비유를 쇼펜하우어가 처음 썼다! 503쪽) 서로를 견디고 존중할 수 있는 정중함과 예의를 발견할 것.


이만하면 연초에 읽을 만한 훌륭한 행복론과 인생론이 아니겠는가.

#쇼펜하우어 #철학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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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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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알람 ‘신형철’ 이름 하나에 두근거리는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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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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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렸던 책 이번 하반기 독서는 다락방에서 미친 여자들과 함께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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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120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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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상권 리뷰를 쓰면서

이 이야기는 민담집 같은 이야기 모음집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의외로(?) 이야기 속 화자는 명확하다. 작가 초서 본인이 등장한다.

그는 '나'로 등장하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한줄평을 던지기도 하고, 별점도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기도 한다.

나는 그의 존재가 이야기 속에 드러난다는 점으로 보아

[캔터베리 이야기]는 명백한 소설로 읽힌다.

소설가가 자신의 문체를 찾아 탐구하고 고뇌하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 소설.

[캔터베리 이야기] 하권 중간에서 초서는 완전한 운문으로 토파스 경 이야기를 하다 독자의 항의를 받고 중단한 뒤 새로운 이야기를 꺼낸다. 완전한 산문으로 된 멜리비 이야기를 완주한다.

독자를 고려하여 새로운 문체를 찾아 나서는 일이 소설가의 임무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초서는 당대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자신의 책 속에 끌어안고 싶었고 달성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 앞에서 결국 책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미완의 결말조차 지극히 소설적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작가가 원하기만 하면 끝없이 쓸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궁극의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캔터베리 이야기]는 소설의 역사 초입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청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제 이야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하시거나

예를 들면 여러분이 전에 들으신 이야기보다

지금 하려는 짧은 이야기 안에 속담이 더 많더라도

제 주제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전에 들으신 것과

꼭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부탁드리는데 저를 비난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전달하려는 교훈은

제가 쓰는 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출처인

짧은 글의 교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끝까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하권, 102쪽,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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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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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순간에 책을 동행하고 여행을 떠나는 일에도 예외가 없는데

아이와 함께한 여행과 책이란 얼핏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매 순간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해야 하기에

당장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몰입할 수 있는 책으로 골라야 한다.

시집, 그리고 독특한 소설,

김혜순 시인의 신간과 정지돈 소설가의 장편소설,


소설이 아무 페이지나 펼칠 수 있는가?

정지돈의 소설이라면 가능하다.

애초에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그렇게 씌어진 소설이다.

주인공 정웰링턴이 있고,

화자 나-정웰링턴의 이야기를 쓰려는 소설가-가 있고,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공산주의자로 미국을 떠나 체코에서 의사가 되어 살다 모종의 이유로 중단된 삶을 가진, 현앨리스라는 공산주의자로 북한에 갔다 스파이로 처형된 어머니를 가진, 무엇인가 하려 했으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그 모든 순간이 무의미했던, 그렇기에 모든 의미를 가진 정웰링턴이란 사람을 소설로 쓰려 시도한 소설가의 소설.

 

-19, 체코에서의 삶이 정웰링턴을 죽음으로 이끈다면 그의 죽음은 필연적인 결과인가? 안나와 윌리의 딸인 타비타의 탄생은 우연적인 결과인가? 하나의 난자가 하나의 정자와 결합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우연이 거듭되어야 하는가? 우연이 거듭된다는 사실이 곧 우연이 아니라는 뜻 아닌가? 지금 시대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이러한 논쟁이 그들에게는 행위의 근본 원칙이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아무것도 무의미하지 않았다. 모든 행위가 유의미했으며 의미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뜻했고 그것은 영원불멸의 법칙이 존재함을 뜻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

 

개인적으로 공산주의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을 좋아하지 않고,

사실 공산주의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기에 함부로 말할 순 없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이념 논쟁으로 복잡했던 이 시대를 다룬 소설 속 인물들을, 삶의 '의미'를 찾아 애쓰고 투쟁하고 산화한 인간으로 재해석하여 읽는다.

그들은 그 의미를 공산주의로 받아들였고,

의미는 실패했다. 삶은 실패했다.


삶이 실패했다고 인간은 실패하는가?


그 둘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 소설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소설이냐고, 뚜렷한 사건도 줄거리도 재미도 없는(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무의미하다고, 무의미한 소설은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설 속 ''도 혹 이 소설이 실패하지 않았나 소설 속에서 되묻는다. 그리고 그걸 봐 달라 요청한다, 실패 혹은 작가가 해내지 못한 것을.

 

-150, 모든 소설은 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우연적인) 이유가 있다. 작가는 어떤 한계에 의해서 그렇게 쓴다. 다시 말해 소설이 특정 형태가 되는 것은 결단이 아니라 포기에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해낸 것보다 해내지 못한 것을 봐야 한다(*첫 문장에서 괄호 안의 단어 중 적절한 것에 체크 하시오).

 

두 권의 책을 가방에 넣으며 두 권을 번갈아 가며 읽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한 번 펼친 정지돈 작가님 소설을 쉽게 닫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바다로 가는 차 안에서, 바다에서, 카페에서, 아이가 잠든 숙소 소파에 앉아, 계속해서 읽었다. 멈추지 않고 읽은 소설 속 모든 문장은 내게 유의미했고 그러므로 모든 독서와 여행의 순간은 영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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