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집
니콜 크라우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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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이 많은 거대한 책상을 중심으로 얽힌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 그 책상의 주인은 나치 점령 시기에 죽임을 당한 유대인 역사학자고, 그의 아들 바이스가 가구 사업자가 되어 아버지의 책상을 찾기 시작하고, 몰수당한 유대인의 가구들은 전 세계를 떠돌아 영국에 사는 유대인 소설가, 소설가를 찾아온 젊은 칠레 시인, 미국의 소설가를 거쳐 그의 딸이 손에 넣는다.

제목 '위대한 집'의 의미는 바이스가 책상을 추적해 유대인 소설가의 남편에게 들려 준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는 책상을 찾아왔지만 책상은 20년도 더 전에 칠레 시인에게 넘어간 뒤였고, 소설가는 죽었고, 남편은 죽은 아내가 숨기고 있던 다른 모습을 알게 된 뒤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뒤, 유대인들은 구전되던 율법을 정리해 책으로 만든다.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유대인은 뭐란 말인가? 나중에야, 자카이가 죽은 후에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마치 뒷걸음치며 물러나야 보이기 시작하는 거대한 벽화처럼,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그 대답은 예루살렘을 하나의 개념으로 전환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원을 책으로, 도시 자체만큼 광대하고 성스럽고 섬세한 책으로 바꾸는 거죠. 잃어버린 것 주변으로 사람들을 모아, 그 텅 빈 자리에 모든 것이 비치게 만드는 겁니다.'(396쪽) 그렇게 유대인들은 각자의 기억을 모아 '위대한 집'을 만든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거나 잃어버린 자의 옆에서 그의 상실감을 목도하는 자다. 소설을 쓰다 남편도 가까운 친구도 전부 잃어버린 사람, 삶의 부조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는 남편, 강압적인 아버지에 의해 정상적인 어떤 것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잃어버린 아이들, 그들 중심에 놓인 그 책상. 잃어버린 것을 대체할 만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제대로 이해는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서랍이 달린 책상처럼 우리는 각자의 서랍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측하고 상상하여 성스럽고 섬세한 '집'을 만드는 수밖에.

-138쪽,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한 여인,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 늘 옮겨다니는 그 중심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에 대한 좌절감과 피곤함, 그리고 절망이 몰려왔다. 기름진 음식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이 흐르기만 기다렸다. 눈물이 좀 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알 수 없는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로는 너무 피곤하고, 지고 있는 짐이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고, 나는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앉아 지칠 줄 모르고 유리창을 때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우리가, 아내와 내가 함께 지낸 날들을 생각했다. 그런 날들엔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자기 전 벽에 붙어 세워둔 의자는 다음날 아침에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전날 이야기했던 작은 습관들은 다음날에도 그대로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사실은 환상일 뿐이었다. 단단한 물질이라는 것이 환상이고, 우리의 몸이라는 것이 환상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덩어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수백억 개의 원자들이 오가는 과정, 어떤 것은 새로 도착하고 어떤 것은 영원히 떠나가버리는 과정이었다. 마치 우리 각자가 커다란 기차역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 아니, 기차역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오가는 와중에 적어도 선로와 그 아래의 자갈, 유리 천장은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 인간은 그보다도 못한 무엇, 매일 서커스 공연장이 세워졌다. 다시 허물어지는 공터와 비슷했다.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모든 것이 바뀌고, 똑같은 공연은 한 번도 없는 그런 곳. 상황이 그 지경인데,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도 제대로 이해해 보겠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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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들은 - 최승자의 아이오와 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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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두 권을 번갈아가며 읽었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에서도 아이오와 IWP 참여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온다. 그때의 경험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그 계기로 서양 점성학 및 신비주의 공부에 빠져들었고, 병을 얻게 되었다고. 

[어떤 나무들은] 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며 흥분해서 쓰신 후반부가 아슬아슬하게 읽혔다. 한낱 독자인 내가 감히 선생님에 대해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시달리신다는 병의 전조가 예고된 독백들. 

매일 조금씩 오래 읽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나무들은]이 조금 더 좋다. 일기라는 형식이 시인님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고 있는 느낌을 주어서. 일기를, 특히 작가들의 일기를 읽는 걸 좋아한다. 일기를 펼쳐 10월 24일의 기록이 있는지 찾는다. 그날이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ㅋㅋ). 1994년 10월 24일에 시인은 아이오와에 계셨고, 그때 나는...몇 살이었더라? 아무튼. 


나는 왜 쓰지도 않고 나는 무엇을 쓰지도 않는다. 나는 나를 쓸 뿐이다. 그게 왜가 되고 무엇이 된다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 (175쪽)



특정 이데올로기나 이즘에 속박되지 않고 그저 나 자신에 대해 쓸 뿐이라는 시인의 자유, 고독, '자기를 속이지 않기 위해서, 자기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222쪽),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읽었고 그때마다 다른 시인의 시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나를 치고 갔었다. 그게 무엇인지 에세이를 읽고 난 후에야 조금 알 것 같다. 라디오의 주파수처럼 문득 선명하게 들리는 시가 있다. 글이 있다. 삶의 태도가 있다. 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찾아 읽어야겠다. 

어떤 나무들은 바다를, 바다의 소금기를 그리워하며 바다 쪽으로, 그 바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다 쪽으로 구부러져 자라난다고 한다. 그런 나무들이 생각났다. - P51

나는 왜 쓰지도 않고 나는 무엇을 쓰지도 않는다. 나는 나를 쓸 뿐이다. 그게 왜가 되고 무엇이 된다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 - P175

나는 언제나 나 자신으로 꽉 차 있어서 나 외부의 것에는 흥미를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꽉 채우고 있는 나 자신은 죽음처럼, 송장처럼 내 내부에 누워 있기만 한다. 이 내 내부의 송장을 어서 치워버리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일어나 문을 열고 나로부터 나가다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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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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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배고픔과 꿈 첫 장부터 세게 얻어맞고 어질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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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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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 마침 창밖의 하늘은 파랑, 땅 아니 강도 파랑, 온통 파랑의 세계. 태양을 반사하는 수면의 윤슬과 같이 온통 반짝임으로 가득한 이 책은 느리게 읽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껍질을 벗겨내 삶의 광휘를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펜촉의 빛은 황금빛. 그가 담고 싶었던 하늘의 푸르름이란 죽음의 어둠과 같은 푸른빛.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81쪽) 작가 스스로 다짐하며 썼을 문장.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이 장엄한 푸름이 절망의 끝을 알려주며 당신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같은 책, 서문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그것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이름을,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다.

같은 책, 38쪽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다. 시는 불타는 돌들에 둘러싸인 침묵이며 세상은 별들에까지 이르는 차가움이다. 새벽 두 시, 여왕들은 죽고 나는 그들의 외침에 경탄한다. '항상 사랑하고, 항상 고통받으며, 항상 죽어가기를.' 세상은 이 외침에 깃든 영감을 알지 못한다. 삶의 등불을 켜주는 이는 죽은 자들이다.

같은 책, 84쪽


삶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우리 눈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황금빛 눈을 심는다. 눈을 뜨면 단 한 줄기 빛이 죽음의 모습과도 같았던 삶의 모습을 태워버린다.

같은 책, 104쪽


빛으로 가득한 이 책은 얇고 두꺼우며 가볍고 무거운데다 차가우면서 뜨겁다. 다 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다시 한 번 또, 분명 열려 있다 생각했던 문은 굳게 닫히고 나는 필사적으로 그가 보여 준 것들의 흔적을 더듬거리며 기록한다. 환희의 인간이 남기는 것들은 순간적이고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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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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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서늘하다. 창밖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복도는 서늘하다. 시간강사로 일할 때 공강이면 수업 중인 교실 복도를 왕래하곤 했다. 교사들이 수업하는 소리, 학생들이 대답하고 떠드는 소리, 폭죽처럼 터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서늘한 복도를 걸었다. 아직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한 무명의 소설가는 교사도 소설가도 그 무엇도 아닌 상태였고 때때로 늦은 밤 몰래 울었지만 학교 복도를 걸을 때만큼은 괜찮았다. 아마 학교에 깃든 어떤 힘에 위로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 미래가 결정되지 않은, 가능성만을 가진 아이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공간이 가진 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위안.


<여름방학>의 병자 씨도 학교를 퇴직한 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 다닌 기억을 그리워한다. 네 명의 오빠를 가진 그녀는 오빠들 때문에 병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오빠들 때문에 결혼하려던 남자와 헤어져야 했다. <어제 꾼 꿈>의 애순 씨는 집 근처 유치원에서 열린 동시 발표 대회를 구경하며 울먹인다. 오빠가 죽은 뒤 원치 않는 결혼을 했던 그녀는 남편을 두 번 잃고 자신의 동생과 자식들과 돈 문제로 냉전 상태다. <어느 밤>의 덕선 씨는 남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밖으로 나가 훔친 킥보드를 타고 동요를 부른다. 운명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 위안을 구하는 작은 몸짓들, 어떤 습관들, 얼음이 되어버린 나의 존재를 구원하려는 안간힘들.


귀여운 어나더커버


따뜻한 신발을 신고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하던 나는 뭐가 되었을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적절한 단어를 떠올려보았다.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음,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지." 나는 그렇게 말해보았다. 그리고 차에서 펜을 꺼내와 '내 자리'라고 쓰인 낙서 옆에 새 낙서를 했다. '그래, 니 자리.' 그러고 나자 그냥 어른이 된 나 자신이 그다지 실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섯 번의 깁스>


나는 빨래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빨래가 흔들리면 그 주변의 어둠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착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옥탑방으로 이사를 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


윤성희 작가님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인간을 습격하는 피치 못할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운명은 갑자기 돌진하는 자동차의 형태로 덮쳐 오고(<여섯 번의 깁스><어제 꾼 꿈><네모난 꿈><눈꺼풀>), 암과 같은 질병의 모습으로 찾아올 때도 있고(<남은 기억>),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까운 이의 이해할 수 없는 범죄 행각으로 인한 심적인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여름방학><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블랙홀><스위치>).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뿐인 내게 자동차가 돌진할 수도 있다. 나의 엄마가 분노에 차서 마을 잔치 음식에 농약을 뿌리는 사건이 생길 수도 있다. 내게 다정하던 옆집 형이 교도소에 가고, 돈 문제로 가족들이 갈라서고,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잦아진다.


형은 주기율표 외우는 걸 좋아했는데, 화가 날 때마다 그걸 중얼거리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다. 형이 구속된 뒤에 나는 주기율표를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놓았다. 왜 그랬을까?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그걸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


예측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얼어붙는다. 킥보드를 타다 넘어진 그녀는 몸을 일으킬 수 없다(<어느 밤>). 정류장을 덮친 자동차에 치인 나는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은 있는데 눈꺼풀 하나 움직일 수가 없다(<눈꺼풀>). <여섯 번의 깁스>처럼 깁스를 하거나 <블랙홀>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와 구속된 어머니가 남긴 시골집을 정리하러 찾았다가 일주일 넘게 나오지 못한다. 몸이 굳어서, 다치고 아프고 힘들고 슬프고 어떻게 해도 이 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절망감 앞에서 우리는 얼음이 된다. 어떻게 해도 눈꺼풀 하나 움직일 수가 없는데, 더 이상 뭘 할 수 있죠?




<여름방학>의 병자 씨는 이름을 바꿀 결심을 하고 퇴직 이후의 삶을 '여름방학'이라 명명한다. 그리고 아파트 정문 옆 공원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한다. '여름방학 때는 누구나 물놀이를 하는 법이니까.' <남은 기억>의 나는 아이들에게 명치를 가리키며 물총을 쏴달라 부탁한다.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야 하니까. 조카손녀를 따라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에서 재료를 모아 마녀 수프를 만들고(<어제 꾼 꿈>) 아빠와 나란히 누워 정말 좋았던 삶의 순간을 떠올린다(<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 서로에게 무해한 거짓말을 하며 웃는 어느 가족의 하루(<날마다 만우절>), 음식을 나눠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며 나는 너에게 땡을 외치고 너는 다시 나의 땡을 외치며 웃는다.


딸이 땡을 해주길 기다리면서 나는 종일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었고 그제야 딸이 내 손을 잡으면서 땡 하고 말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 가끔 얼음이 되어야겠다고. 나는 청년에게 지금은 술래를 피해 얼음이 된 거라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곧 누군가 땡 하고 외쳐줄 거라고, 얼음땡 놀이란 그런 거라고. 누군가 땡 하고 말해줘야 집에 갈 수 있는 거라고. 그러자 청년이 웃었다. 흐흐흐, 그렇게 웃었다. 조금 있으면 구급대원이 도착할 거예요. 그러면 제가 땡이라고 말해줄게요. <어느 밤>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도, 가끔 내게 상처를 입혀도, 그게 싫어 도망치고 싶어도 얼음땡 놀이는 혼자서 할 수 없고 누군가 나의 얼음을 풀어줄 것이다. 같이 가서 내 남편 돈 떼먹은 사기꾼에게 욕도 하고, 같은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 수육에 소주를 마시고, 가마솥에 백숙을 끓여 옆집 할머니 담금주를 몰래 훔쳐 나눠마시며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나눈다. 그렇게 영영 꼼짝도 안 할 것 같은 눈꺼풀을 조금씩 들어 올린다. 땡! 이제 집에 갈 수 있어요.


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만 있다면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역도 선수가 되는 상상을 했다. 내 역기는 봉 양쪽에 동그란 눈꺼풀이 달려 있다. 십 킬로그램짜리 눈꺼풀이. 나는 역도 선수다. 나는 국가대표다. 나는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경기에 나선 나는 0부터 9까지 천천히 숫자를 세면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역기를 든다. <눈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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