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증보신장판)
정두희 지음 / 아카넷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개혁가 또는 이상주의자. 조광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무척이나 단편적이다. 그리고 그의 개혁정치는 너무 이상적이었고 과격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아니 그 이상의 관심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조광조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역사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엄격하고 완벽해서 가까이 가기 힘든 이미지이다. 이 책은 조광조의 인간적인 면을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실록과 <정암선생문집> 등 접근 가능한 사료들을 분석하여 조광조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각해보니, 조광조가 이상주의자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조광조의 개혁이 과격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당시 시대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연산군의 폭정이 중종반정으로 무너졌지만 반정세력들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종은 반정세력들의 ‘바지사장’일 뿐이었고, 반정의 주역들은 몰염치하고 무능했다. 그들은 연산군 조정의 신료들이었고, 그들도 연산군의 정치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도 별 공도 없는 친인척들을 정국공신 목록에 올림으로써 공분을 자아냈다. 한마디로 정권의 도덕성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황이었다.

  조광조는 이러한 국정파탄의 원인을 ‘국가의 근본’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의 국시인 성리학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생겼다고 본 것이다. 그는 왕에서 조정의 대신들에 이르기까지 ‘명도근독(明道謹獨)’, 즉 성리학의 정신을 따르고 홀로 있을 때조차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국가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면에서 조광조는 극도의 이상주의자였다. 하지만 조광조는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기 먼저 솔선수범하여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사림들의 대표가 되고 조정에서도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개혁이 과격하지는 않았다. 과거제를 대체하는 현량과, 즉 추천제 임용을 제안하면서도 대신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절충안을 채택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는 과거제를 운용하되 별시를 현량과로 운용하는 것으로 절충했다. 그리고 이런 정도의 개혁은 조선의 체제에서도 수용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국공신들은 크게 위협을 느꼈고, 조광조 일파를 급습해서 개혁을 무위로 돌려놓는다. 조광조는 정치를 알지 못했다.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혁명이 아닌 이상에야 정치가 필요함을 몰랐던 것 같다. 군권을 장악한다든가 완급을 조절한다든가의 대비가 전혀 없었다. 어쩌면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그가 현실 정치에 발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가 비극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능한 정치인이 행동으로 보이고 조광조가 뒤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더라면 개혁의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광조가 하려고 했던 개혁은 민생과는 조금 거리가 먼 작업이었다. 그리고 조광조가 원했던 나라는 이후에 실제로 도래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의 성리학이 유일한 학문으로 자리 잡은 조선은 그리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었다. 어쩌면 조광조의 개혁은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민초들의 삶과는 무관한 지배층 내부의 노선투쟁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조광조 본인도 유력 가문 출신이었고, 그가 주장하는 성리학 사회가 되면 민초들의 삶이 거대한 이데올로기 속에 갇혀 더 부자유스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광조의 개혁이 갖는 가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 때문일 것이다. 아는 것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조광조는 배운 것을 토대로 사회의 불의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현재 정국의 문제점을 간파해 당시 지배층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현실 정치에 들어와서도 꼿꼿한 지식인의 모습을 유지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조광조와 같은 지식인의 전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에도 폴리페서라고 불리는 기회주의적 지식인들이 많고,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려고 하는데도 끊임없이 정치참여의 요구를 받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정치와 학문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도 각자의 할 일이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와 학문은 각자 서기에는 너무나도 취약한 것 같다. 조광조가 살던 시대에는 정치와 학문이 분리되지 않았던 때라 정치에 휩쓸려 조광조가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실천적 지식인이 사회의 민주주의적 토대를 닦고, 현실정치인은 그 토대 위에서 수준 높은 정치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언제쯤 가능할까.

  이 책은 지나치게 학술적이지도 않고, 대중적으로 치우치지도 않았다. 때문에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이다. 또, 조광조라는 한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전후를 모두 추적하면서 자칫 인물중심으로 흐를 수 있는 시선에 균형을 잡았다. 절판된 것이 무척이나 아쉽지만 찾아서 본다면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16세기 조선사와 조광조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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