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한 독서 - 서평가를 살린 위대한 이야기들
금정연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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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했다. 서서비행의 그는. 여전히 괴팍한 농담과 본인 혹은, 아주 약간의. 그러니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제외한 '독특한'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미션 같은 문장들을 내던지며 여전히 그는, 결론적으로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읽고싶게 만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모를 문장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열흘간 품에 안고 다닌 이유는 그가 금정연이기 때문이었을터다. 금정연이라는 서평가에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첫 책 '서서비행'때문은 아니고 (물론 그 책을 재밌게 읽었고- 그 때에도 똑같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지간에 책을 읽고싶게 만든다', 고 생각했었다.) 그가 어떤 문학상 작품집에서 '에반게리온'을 들먹이며 여전히 '웃기게' 써내려갔던 평론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나에게 평론까지 웃기게 쓰는 '재밌는 작가'였고 그리하여 나는 이 책 역시 결국은 재미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열흘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실제로 낄낄대며 글을 읽어내려간 것도 사실이다. 이해 해서 낄낄댄게 아니라 이해가 안가서 낄낄댔다고 말해야 더 솔직하겠지만.


10명의 작가들의 책을 정말이지 단 한권도 읽지 않았고, 몰랐지만 그래서 더 낄낄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간질간질 나의 무지를 약올리며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진짜게 아니게, 놀려대는 것 같은 그의 고약한 농담에 웃고있는 내 스스로가 자존심이 상해서, 뒤로 갈 수록 진짜로 책을 읽고싶어지게 된 것을 보면 그는, (지금은 비록 퇴사했다하지만) 내추럴 본 도서MD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책 제목 그대로 ‘난폭’하기 짝이 없게- 마치 멱살을 잡혀 질질 끌려가듯이 무릎 꿇린 채 ‘읽어! 이래도 안 읽을 테냐!’하고 혼나듯 소개 받은 10명의 작가들 중 누구 하나 쉽사리 다가서지 못할 것 같지만, 아. 음. 그래도 이대로 라면 너무 자존심이 상하니까 일단 ‘걸리버 여행기’부터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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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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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 트위터를 통해 먼저 알게된 분. 황현산 선생님의 책 중 내가 두번째로 손에 쥔 책 <우물에서 하늘보기>. 전작 <밤이 선생이다>를 너무나도 좋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가 많았던 한편, 영 친해지기 어려운 시에 대한 이야기라서 출간 되자마자 덜컥 구매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내밀지 못했던 책이었다. 아, 물론 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난폭한 독서>를 겨우겨우 읽어내느라고 더더욱 첫 장을 펼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도 있도 말이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을 때도 동일한 것을 느꼈었는데 황현산님의 글은, 유난히 앞 뒷 문장의 연결성이 강한 것 같다. 앞의 문장을 읽지 않을경우, 뒷 문장의 의미가 전혀 읽히지 않는 문장이 많았다. 그래서 여느 책을 읽을때면 밑줄긋기 식으로 몇 개의 문장을 뽑아낼 수 있는 반면, 황현산님의 글은 그게 불가능했다. 한 꼭지 한 꼭지가 통째로, 강하게 묶여있는 문장들이 가끔은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을 때도 같았다. 유난히 한 꼭지를 다 읽어내는데에 시간이 배로 걸렸고 숨이 찬 듯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숨 찬 느낌이 싫지 않았다. 문장에 쫓기듯 달려나가는 느낌이 오래간만에 그저 활자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활자와 싸우고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일어난 일로인해 떠오르는 어떤 시에 관해, 혹은 어떤 시인의 글쓰기에 관해, 또는 시 쓰기라는 행위의 의미에 관해. 시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내는 글들을 읽으면 잘 알지 못한다 생각했던 시라는 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적이거나 퇴폐적인 예술이 아니더라도, 예술을 예술되게 하는 기본요소에서 사치는 큰 몫을 한다. (중략) 시를 쓰는 시인이 감정의 사치를 위한것이 아니라면 운과 박자를 맞추기 위해 왜 그렇게 긴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강렬하게 뇌 속에 박힌 단어는 다름아닌 '사치'였다.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기기"위한 시인의 사치. 그 단어 하나하나에 담겨져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의 쓰임새를, 그 사치의 '가치'를. 우리는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기를 두려워하는 지쳐빠진 마음"으로 모른척 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이었다. 이 책을 통해 시라는 문학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여전히 시라는 짧은 문장, 짧은 단어들 속에 꽉 들어찬 사치스럽게 쓰여진 의미가 버겁고, 해석하지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선택되기까지의 단어가 담고있는 시간과, 의미에 대해 조금이나마 '눈치' 챌 수 있게 된 것. 그럼으로써 한 걸음 더 '시'라는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한 것 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아름다운 문장의 사치를 함께 누리고 싶어졌다는 것 만으로 말이다. 몇 번이나 소리내어 읽은 긴 한 단락의 글을 적으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싶다. 황현산 선생님의 좋은 생각이 담긴 좋은 글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싶다. 건강하시길.



"나태와 무책임에 형식이 없듯, 악의 심연에도 형식이 없다. 미뤄둔 숙제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쌓아둔 죄악이 우리를 마비시켜, 우리는 제가 할 일을 내내 누군가 해주기만 기다리며 살았다. 누군가 해 줄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다. 아니, 기다리지도 않았다. 책 한줄 읽지 않고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우리들은  "산다는 게 이런 것이지"같은 말을 가장 지혜로운 말로 여기며 살았다. 죄악을 다른 죄악으로 덮으며 산 셈이다. 숨쉴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를 연결해주지 않으며, 힐링이 우리의 골병까지 치료해줄 수 없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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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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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출신 작가, 장강명의 소설은 기자라는 직업군 특유의 특성 탓일까. 지독히 현실적인 것 같다. 다분히 '있을 법 한 이야기'를 가지고 본인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강렬하게 내던지는 스타일이랄까. (고작 두 작품 읽어보고선 뭘 다 아는것처럼.) 한국 사회는 줄세우기 문화가 너무 강하다. 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한국 사회는 유독'이라는 말을 덧붙이지는 못하겠는데 어쨋든,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의 줄세우기 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내가, 살아봐서 잘 알겠다. 그런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계나는 그래서. 호주는 좋았을까? 그랬을까? 


난 계나가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줄 뒤쪽에 서 있는 스스로가 싫어서 였을 것이다. 계나는 앞으로 '외국'에서 사는 것으로 한국식 줄세우기에서 앞줄에 선 '기분'을 행복의 원천으로 삼아 끊임 없이 한국에서 여전히 시댁 욕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와, 프로그래밍도 못하면서 IT회사에 다니는 친구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비교우위의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여기 이 지점이다. '비교우위'. 남들과 다르게, 남들보다 잘, 남들보다 멋지게 살아야하는거다. 그런 행복이 과연 언제까지나 유효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본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그들은 아니 우리는 또다시 줄을 세울 것이다. 그 속에서 아마 줄 뒤에 선 자는 또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 한국에서 '탈출' 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비교우위의 안도감을 느끼며 또, 그곳에서 끊임없이 비교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계나는 '기자 남편과 안정적인 가정'을 버리고 다시 호주로 떠난다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한 자긍심으로 한동안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이 오래갈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계나는 분명 멋진 사람이다. 원하는 것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행동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굳이 호주가 아닌 이 지옥 안에서 해 낼 순 없었던걸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것 또한 어쩔수가 없다.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것이 반드시 '내가 아닌 당신 때문에' '빌어먹을 사회 시스템 때문에' 라고만 단정지을 수 있는걸까. 이미 우리, 나 자신이 그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만이 우리는 이 지옥을 빠져나갈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건 아닐까.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항상 드는 생각은, '적어도 우리 세대부터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과 '그러나 우리 세대 별 반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뒤석여 참, 뭐라 한마디로 정리가 안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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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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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공부 뒤에 숨어 내 삶의 다음 코스로의 한 걸음을 유예시켜본 적이 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대학교 5학년이 되었던 때의 이야기이다. 기업체는 졸업예정자를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라는 변명은 실은 지금은 할 수도 없다. 결국 원하는 회사엔 가지 못했고 나는 지금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유예의 시간동안 과연 나는 그 시간의 값 만큼의 일인분을 하며 살았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 아니, 전혀 아니었다. 엄기호, 하지현의 대담집, <공부 중독>은 묻는다. 어떤, 공부를 하려 하냐고. 왜, 공부를 하려 하느냐고.


- 만점이 흔하게 되면 생기는 문제가 틀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십여년 공부 생활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덧 그 방식이 삶의 기본 태도가 될 가능성이 많아요.


- 공부가 우리 사회에서 삶의 다음 담계로 넘어가는 것을 유예시켜주는 프리패스가 되어버린거죠. (중략) 시험을 안 보면 좋은게 실제 내 능력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저는 이것을 요즘 아이들이 정신 승리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통해서 나는 여전히 가능성있고 굉장히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는거예요. 자기애의 훼손 없이 말이죠.


사실 삶은 어느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때 배울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런 일체의 과정을 다 위험한 것이라고 불온시해요. 배우긴 배워야 하는데 위험하지 않게 배워야 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떄문에 피해야하고, 대신 그걸 커리큘럼으로 만들어서 관념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 입니다. 다시 존 듀이 식으로 말하면 겪는 것 없이 그저 배우는 것이죠. 저는 사는 건 감당하는 거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까지는 겪으면서 감당하는거고, 감당할 수 없을 때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는데, 감당해나가는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고 할까요?



우리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0년의 과정을 거쳐 지식은 '주입 받는' 것이고 답은 '하나 뿐인' 것이라고, 그렇게 세되되어 자라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 세상에 대한 호기심. 궁금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는 능력. 다름을 이해하는 관용. 정답을 향해가는 용기. 정답을 찾아내는 시간의 소중함. 뭐 그런 것들 아닐까. 대학생때까진 뭐 하기 싫어도 알아서들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주니까  딱히 찾아서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야,  아 이것도 배우고 싶고 저것도 배우고싶다 라면서 강좌같은걸 엄청 찾아보고 들으러가고 그랬었던것 같다. 그래, 방통대도 다녔었지. 이 책을 읽고 '강좌를 찾아가 듣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안가는 것 보다 가서 듣는게 좋은것일테다. 관심 가지고 찾아본 것 만으로도 일단은 할 걸음 나아간 것일 테니까. 그런데 잘 정제되고 정리된 2시간, 을 [주입]받고 난 뒤에, 사실 그것만으로 막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워하며 그걸로 끝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그 지식을 소화할 수 있도록.'감당해내는 과정'을 거친게 맞는걸까.....하는 생각을. 


나는 여전히 공부를 하고 싶다. 이것도, 저것도. 그러나 다만 올해부터는. '위험하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생각하는 시간, 찾아보는 시간. 그렇게 '허툰' 시간을 할애하며 공부하고, 내 에너지를 들여 알아내면서. '쉽지 않게' 말이다. 여전히- 앞으로도. 이런 저런 강좌도 열심히 들으러 갈 것이다. 그러나 전에는 '2시간 동안 강좌를 들은 나'에 만족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것을 '감당해나가는 과정'을 꼭. 거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러니까 함부로, 쉽게, 이것저것, 기웃기웃대지 않고 '정말' 원하는 것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본 뒤에 움직이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과욕이고, 허세의 수단일 뿐이지 않을까.


이 책은 사실 '공부하는 태도'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태도와, 왜 그러한 태도로 공부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회적인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하고 있었더랬다. 엄기호 X 하현진이 대담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아직, 그것 말고는. 공부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것도 현실아닐까. 나의 세대는 '공부해서 신분 상승이 가능한 세대'와 '공부해봤자 금수저에 밀리는 세대'의 중간에 선, 그나마 운이 좋은 세대인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해 봤다. 아무래도 어렵다. 이 꼬이고 꼬여 아예 한 뭉치가 되어버린 문제들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정말이지,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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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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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는 눈 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 같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 두터운 현재를 갖고있지는 못하기에 서로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신영복선생님도 감옥에서, 참으로 다양한 인간군을 만나며 삶을 배워나가시고

이 책의 저자인 문유석 판사님도 법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군을 만나며 삶을 배워나가시지 않는가.


그에 반해 나는 얼마나 작은 보자기위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고만고만한 중산층 집에서 태어나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고만고만한 삶을 살고있는 나.

이 '작고 얄팍한 현재'속의 나의 감수성의 질은 별로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다양한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가야겠구나. 

뉴스에 나오는 큰 사건들의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

현재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독신인 나와는 달리 결혼한 사람으로서의 삶 혹은 아기 엄마, 혹은 아빠로서의 삶,

혹은 나와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친구의 삶,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친구의 삶,


그러니까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모든, 별 것 아닌것 같은 그러한 삶도.

사실은 별 것 아니지 않다는 인식. 모두의 하루하루는

나의 하루하루와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특별한 하루하루라는 인식을

항상 가지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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