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물에 대하여 - 2022 우수환경도서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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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하나인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가 방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명확한 숫자를 제시하며 현 상황의 위기를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조목조목 설명해 줌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확히 일치하는 기후 위기에 관한 책, #시간과물에대하여 를 읽었다.

마그나손 작가는 빙하 곁에서 태어나 빙하가 사망선고를 받기까지의 긴 시간을 지켜보아온 조부모와의 삶,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준비하다 북유럽 신화와 힌두교와의 연관성을 발견하며 깨닫게 된 신화 속의 연결고리, 어린 시절 본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짐했던 대로 악어의 보호를 위해 연구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외삼촌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을 보따리에서 풀어낸다. 전혀 연결점이 없는 것 같은 이야기들의 종착점은, 한 곳이었다. "이제 우리는 전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연장과 모든 장비와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상과 후손을 둘 다 실망시킬 것이다.(P.296)" 더 늦기 전에, '오래된 근시안의 신, '탐욕'(p.254)'에의 믿음을 거두고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는 외침이 한가운데 말이다.

마그나손은 1809년 아이슬란드에 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싶었던 예르겐의 '빈자가 부자와 똑같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일반 사람들의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생각, 상상할 수 없는 낯선 개념이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아이슬란드의 완전한 독립은 그로부터 140여 년이 지난 후인 1944년에야 달성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갑자기요? 갑자기 역사 이야기를요?라고 어리둥절해 있을 때, '자유'나 '평등'과 같은 단어와 같이, '해수산성화', '지구 온난화', '환경위기'라는 단어 역시 그때의 '자유'와 '평등'처럼 지금 우리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슬쩍 샛길에서 빠져나온다.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걸린 100여 년과 '환경위기'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는데 걸릴 100여 년의 시간의 무게가 과연 같을까. 더 좋은 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희망의 시간과 완전히 나쁜 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절망의 시간이 같을 리 없다. 게다가 1800년대의 100년 동안의 변화의 속도와 2000년대의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얼음이 물이 되는 -1도와 0도, 그 사이. 물이 수증기가 되는 99도와 100도, 그 사이. 무언가 전혀 다른 것 변해버리는 급변점은 그 한순간이겠지만, 실은 우리는 차근차근 단계를 밝아 변화의 순간을 맞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한순간의 티핑포인트를 향해 돌진하는 중인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구가, 급변하는 급변점이 어디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때라는 것만큼은 안다. 우리는 그 급변점을, 영원히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단어는 우리의 감정과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단어로 인해 우리는 존재의 상태를 파악하고 우리의 가슴에 잠들어 있는 것을 묘사할 수 있다.

단어는 보이지 않던 행동들을 엮어 얼개를 짠다.

(p.82)'.

어떤 식으로든 자연의 '이용 가치’를 논하는 경제학에 속해있는 권력으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들, 다국적 제조 기업에 값싼 에너지를 팔기 위해 물길에 막히거나, 수장될 위기를 맞은 자연들. 권력을 쥔, '어떤 사태가 와도 무사한 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결코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늘 굶주림과 공포를 부추겨 더 많은 계곡을, 더 많은 폭포를 기꺼이 희생하도록 조종하여(p.71)' 망가져버린 자연들... 티베트고원의 빙하 680곳을 조사한 결과 95%가 후퇴했고 알래스카에서는 98%의 빙하가 급속히 감소했음에도, 13곳의 빙하가 (국지 강수량이 증가한 덕에) 더 커졌기 때문에, 그것을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증거로 내세우는 권력의 말(p.206)'들이 우리의 감정과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행동을 엮는다. '전 세계 석유 이익이 하루 약 6000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서 산유국들은 우리의 어휘와 세계관을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주물렀다.(p.239)'는 문구가 머리를 꽝! 하고 내리쳤다. '현실을 창조하기 때문에 말을 소유하고 말을 배포할 수단을 소유해버린 (p.237)'권력의 말에 현혹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새삼 그 권력의 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후학자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 여러 책을 통해 깨닫는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 책의 앞과 뒤에서 반복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답이 되어줄 것이다.

"증조할머니가 1924년에 태어나셨으면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지?"

"아흔넷"

"넌 언제 아흔넷이 될까?"

"2102년 아냐?"

"맞아. 그때 너도 지금 할머니처럼 활기차길.

어쩌면 바로 이 집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네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처럼 2102년에도 너의 열 살배기 증손녀가 찾아와

이 부엌에 함께 앉아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어쩌면."

"계산 한 번 더. 네 증손녀는 언제 아흔넷이 될까?"

"2092에 94를 더하면...2186년!"

"그래. 상상할 수 있겠어? 2008년에 태어난 네가 2186년에도 살아 있을 아이를 알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그럼 1924년에서 2186년까지 전부 몇 년일까?"

"262년?"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p.28)

"250년 넘게 말이지.

그건 너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야.

너희의 시간은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

너희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자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시간, 너희가 빚는 시간이란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너희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단다."

(p.354)

내가 지금 기후 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그 무엇보다도 '우리 다음 세대의 삶'을 '지금의 우리'가 망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위의 문장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누군가의 할머니, 누군가의 아들딸, 손주, 손녀가 아니라- 당장 나의 증조할머니에서 나의 증손녀에게까지 이어진 가까운 사람들의 시간을 내 손으로, 극심한 가뭄과 극심한 폭우가 반복되고 해수면 상승으로 번영의 흔적이 모조리 사라진 세계로 빚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락한 삶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희생시킨 대가(p.229)'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낙원을 물려받아 망쳐버린, 이기주의와 탐욕의 노예(p.295)'로써 후손들에게 '수치'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후손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나를 위해서'. 우리는, 나는. 멈춰야 한다고- 책을 읽으며 수없이 STOP 경고등이 번쩍였던 것이다.

마그나손의 조부모님의 이야기에서, 배워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마음과, 자연에의 경외와, 사랑의 마음을. 그리고 그렇게 배워 일구어낸 것들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떳떳한 마음으로 전달해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수치스러운 조상이 되겠는가? 당당한 조상이 되겠는가. 우리는 지능이 있으므로, 옳은 선택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를 다 읽고, 달라이라마의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 새겨보았다.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탐욕에 눈이 멀지 않기를. 그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것이다.

저의 믿음이나 경험,

저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건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롭거나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자신의 삶이 쓸모가 있게 되는 거니까요.

(...)

부자들이 사치를 누려도

만족은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바라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으면,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면-

그런 삶은 의미를 잃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경이로운 지능이 있습니다.

이 지능을 활용해 세상의 행복을 늘리고

평화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공감을 사회에 선사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이바지하는 것 말입니다.

(p.123)

*본 리뷰는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은 책을 읽고 남기는 리뷰입니다.

두렵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책을 보내주신 #북하우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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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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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선하고 사려깊은 문장을 계속 써 주세요. 삶과 세상과 우리를 계속 다정하게 사랑해주세요, 하고 작가님을 응원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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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자유 - 김인환 산문집
김인환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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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 이제 같이 함께 걸어볼까요, 하며 가볍게 걸음을 슬쩍 옮기던 책이 바로 돌변하여 동학을 시작으로 불교 이론, 중세철학, 경제학, 과학과 조세법까지. 대학 강의였다면 네? 갑자기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하며 교재를 뒤적거렸을법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개론 수업을 들으러 왔고, 일주일의 수강 변경 기간 동안 음, 이 강의 느낌 좋은 걸, 하며 수강하기로 결심했더니 3회차 강의부터 갑자기 대학원 수업으로 강제 이동당한 느낌이었던, 그야말로 읽기에 버거웠던 책, 타인의 자유를 읽었다.


처음엔 인덱스 테이프를 손에 쥐고 읽기 시작했다. 얼마 안 지나 나는 테이프를 포기하고 연필을 손에 쥐어야만 했다. 테이프가 하염없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연필로 도구를 바꾼 뒤 모르는 부분엔 동그라미와 물음표를 기재하고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엔 짙게 밑줄을 그었다. 거의 대부분의 페이지, 거의 대부분의 문장에 연필로 메모가 덧씌워졌다. 이렇게까지 어려울 일인가, 하고 투덜대려고 할 즈음 한 꼭지가 마무리되고, 그 후엔 잠깐 쉬어갈까,라는 느낌으로 조금은 덜 난해한 글이 이어졌다. 강약의 조화 덕에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고자 한 편집자분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학문들이 한 사람에 의해 한 권의 책에 몽땅 담겨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결국 책 속에 있었다. "의미는 책의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다(p.30)"기 때문인 것이다. 모든 학문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깊이의 비젼 대신 옆으로 보는 비전을 따라가며 맥락을 구성하라(p.30)"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책을 읽으며 서두에 말한 '맥락의 독서', '미완성의 독서', '중도의 독서', 그리고 '항상 중요한 무엇인가를 남겨 놓는 잉여의 독서'가 무엇인지를 깨달아갔다. 연관성 없어 보였던 학문들이 하나의 학문과 한 권의 책으로만 채워놓은 빈틈이 많은 세계 속에서 점차 비어있는 퍼즐을 완성해가며 결국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방법,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이성적 원리에 따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할 때 인간은 교양의 나라로 도피하게 된다.(p.126)"는 문장을 통해 학문을 학문으로만 마주하지 말고 믿고 소리 내어 말하라고, 움직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얼마나 이해했어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배시시 얼굴을 붉히고 뒷머리를 긁적대며 20%....?라고 답하겠지. 만약 이 책이 대학 강의였다면 기말고사 시험지엔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열심히 들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내년에 다시 뵙겠습니다,라며 눈물 젖은 긴 장문의 편지를 적고 교수님과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갔으리라.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려웠고 버거웠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는 사람은 어떠한 일도 성취하지 못한다.(p.55)". "인간은 실재하는 진리를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평생을 통해 인격을 완성해나가야 하며 이렇게 사는 것만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인간의 길이(p.98)'므로, 물음표를 잔뜩 써놓은 키워드들을 잘 정리해서 하나하나 공부하며 맥락을 구성해가야겠다. 우선은 가장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던 릴케, 부터 시작해보아야지.


이 책의 저자인 김인환 교수님은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의 지기라고 하신다. 표지 속 숲을 걷고 있는 노신사 두 분을 황현산 선생님과 김인환 교수님이라고 생각하며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면 든든한 스승의 뒤를 따라 걷는듯한 느낌이 든다. <난다 출판사> 덕분에 황현산 선생님을 알게 되었었다. 2013년에 발간된 <밤이 선생이다>를 통해서였다. 처음 선생님의 글을 본 이후로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 반갑고 감사해서 열심히 뒤를 쫓았었다. 그런 선생님이 떠나가신 자리에 선생님의 친우분이 찾아와준 느낌이다. 황현산 선생님보다는 조금 더 엄하고, 무뚝뚝하시지만 흔들림 없이 앞으로 걸어가는 또 다른 선생님의 뒷모습을, 다시 쫓아 걸어가 보아야지.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책에 대하여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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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 소설가 박완서 대담집
김승희 외 지음, 호원숙 엮음 / 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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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그곳에선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처음으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려봅니다. 선생님. 부끄럽지만 책과 거리가 멀었던 어린이, 아니 청소년, 아니, 청년 시절까지도. 정말 책과 먼 인생을 보낸 덕분에, 그나마 책과 조금 가까워진 후에도 경성의 작가들이나 일본 작가들에게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부끄럽게도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것도 작가님의 소설 작품이 아닌,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인 <세상에 예쁜것>을 통해서 말이죠. 그 후에 부러, 몇 권 열심히 찾아 읽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지난 기록을 되짚어보니 <친절한 복희씨>와 제 1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던 <그리움을 위하여>가 제가 읽은 선생님의 작품의 전부더군요. 감히 이런 제가 '우리'에 끼어도 되는걸까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을, 그리고 인간 박완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읽으며, 선생님은 한결같은 분이셨을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대하는 방식과 문학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 인터뷰어와의 대화이던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한결 같음으로 써내려가셨을 선생님의 작품들을 아직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점이, 저는 지금 참 부끄럽습니다. 서둘러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선생님의 성함으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그만, 숨이 턱, 막히고 말았습니다. 어떤 작품을 먼저 읽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문학동네와 세계사에서 각각 출간해 놓은 산문 전집가 소설 전집을 사야할까, 아니면 선생님의 작품이 태어난 시간을 따라 <나목>에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아직까지 고민만 수 없이 하며 선생님의 작품읽기를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초등학생 때, 전업주부셨던 엄마는, 책을 자주 읽으셨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직장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통, 책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한가하실 때면 뿅뿅대는 핸드폰 게임에만 몰두하시곤 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함께 책 읽기를 권해보았습니다. 어떤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엄마가 읽어서 좋았던 책이 뭐냐 묻자,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선생님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완벽한 제목을 말씀하시진 못하셨습니다. 그 왜..... 싱아...... 라고 하셨죠.)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 제가 읽지 못한 선생님의 소설이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거라고는 정말이지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선생님에게로 다가서는 그 시작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하기로. 그리고, 선생님의 소설을 하나하나 엄마와 함께 읽어보기로 말입니다.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나의 추억거리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될 거라는 기대감, 그리고 누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재미나지도 않는 엄마와 저의 무사안일한 매일매일이 선생님의 소설을 통해 반짝이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에 가슴이 벅차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고통에만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해서 무기력해져버린 삶에도- 위안이 필요하고 (P201),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의 작품은 엄마와 저의 무기력해진 삶에 분명, 큰 위로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의 소설과 수필을 하나하나 열심히 읽어가면 언젠가. 저도 선생님을 아끼는 수 많은 사람들의 등 뒤에 살짝, 줄 설 수 있게 되겠지요. 그 때가 오면, 다시 한 번 이 책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꺼내어 읽고, 선생님, 마음이 한껏 좋았어요, 만나뵈어서.라고 부끄러운 마음 없이 외쳐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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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독서 - 서평가를 살린 위대한 이야기들
금정연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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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했다. 서서비행의 그는. 여전히 괴팍한 농담과 본인 혹은, 아주 약간의. 그러니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제외한 '독특한'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미션 같은 문장들을 내던지며 여전히 그는, 결론적으로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읽고싶게 만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모를 문장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열흘간 품에 안고 다닌 이유는 그가 금정연이기 때문이었을터다. 금정연이라는 서평가에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첫 책 '서서비행'때문은 아니고 (물론 그 책을 재밌게 읽었고- 그 때에도 똑같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지간에 책을 읽고싶게 만든다', 고 생각했었다.) 그가 어떤 문학상 작품집에서 '에반게리온'을 들먹이며 여전히 '웃기게' 써내려갔던 평론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나에게 평론까지 웃기게 쓰는 '재밌는 작가'였고 그리하여 나는 이 책 역시 결국은 재미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열흘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실제로 낄낄대며 글을 읽어내려간 것도 사실이다. 이해 해서 낄낄댄게 아니라 이해가 안가서 낄낄댔다고 말해야 더 솔직하겠지만.


10명의 작가들의 책을 정말이지 단 한권도 읽지 않았고, 몰랐지만 그래서 더 낄낄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간질간질 나의 무지를 약올리며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진짜게 아니게, 놀려대는 것 같은 그의 고약한 농담에 웃고있는 내 스스로가 자존심이 상해서, 뒤로 갈 수록 진짜로 책을 읽고싶어지게 된 것을 보면 그는, (지금은 비록 퇴사했다하지만) 내추럴 본 도서MD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책 제목 그대로 ‘난폭’하기 짝이 없게- 마치 멱살을 잡혀 질질 끌려가듯이 무릎 꿇린 채 ‘읽어! 이래도 안 읽을 테냐!’하고 혼나듯 소개 받은 10명의 작가들 중 누구 하나 쉽사리 다가서지 못할 것 같지만, 아. 음. 그래도 이대로 라면 너무 자존심이 상하니까 일단 ‘걸리버 여행기’부터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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