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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ㅣ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평점 :
나에게도 책이나 영화 때문에 좋아진 술이 있다. 첫 번째로는 김렛.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에서 "진짜 김렛은 진 반과 로즈 라임 주스 반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대사가 있어서, 이 소설의 팬들은 이 레시피를 '챈들러 김렛'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바에 가면 항상 김렛을 찾게 되었더랬다. (그러나 저 '로즈사의 라임주스'가 한국에서 수입하는 업체가 없어 정식 레시피로 맛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도 한다. 나는 한때 자주 가던 바에서 딱 한 번 챈들러 레시피로 마셔본 적이 있다.) 또 하나는 영화로도 유명한 <캐롤>의 원작 소설에 나온 '올드 패션드'. 이 칵테일은 한때 몇 번 들러보았던 '책바'에서 처음 마셔보고 그 반해버렸던 칵테일이다. 원래도 술을 좋아하는 편인데,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가미된 술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이 책은 그 '이야기가 가미된 술' 이야기가 끊임없이. 정말이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나 많이 알고 계신 걸까. 도대체 .... 그동안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신 것일까?라는 정말이지 순수한 궁금증이 자꾸만 피어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더랬다. 마치 작가님이 피츠 제럴드의 소설을 읽으며 '이분, 꽤나 드셨군'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2년 전 출간된 전작 <밤은 부드러워, 마셔>의 두 번째 책인데, 첫 번째 책의 표지를 보니 그 당시에 이 책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찾아읽지 않았던 걸까?라는 후회를 잠깐 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아직 안 읽은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재밌게 읽을 책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 후훗. (사실 한은형 작가님의 소설도 읽어본 게 한 권도 없어서 스스로 너무 놀랐고, 몇 권 읽어보려고 리스트에 업 해 놓았다. )
책을 읽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여행을 하다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알게 된 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다 보면 너무나도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데, 책 속에 나오는 술은 마실 수가 없으니 에잇! 하고 나도 모르게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캔을 따고 만 것이 여러 번이다. 마셔봤던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술의 맛과 향이 절로 살아나 입맛을 다신 것도 여러 번이고. (그러나, 나의 첫 블러디 메리의 경험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기에 이 술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땐 정말로 눈살을 찌푸리며 읽었더랬다. 크크 왜 두 번이나 나오는 건지... 표지의 불독이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의 시 노트를 씹어 먹은 그 녀석이라는 것도 재밌는데 그 녀석이 마시고 있는 게 블러드 메리라서 또 웃었다.) 책을 읽으며 술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였지만, 무언가에 이토록 깊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다시 한번 나에 대해 깨달았다.
'판매 1위' 라든가 '요즘 사람들이 제일 좋아해요'
라는 말에 마셔 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세상의 권위나 인기는 나의 기호에 그다지
(어쩌면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내 삶을 하나씩 채워가는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으셨지 않을까.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을 이리 저리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내 삶에 들여놓을지를 결정하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나도 이렇게 단단한 취향을 갖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귀는 정말이지 얇디 얇아 문제겠지만.
다 읽고 나서는 윔블던의 상징이라는 핌스 칵테일을 마셔보고 싶어졌고, 김환기의 서러움을 생각하며 마셨다고 하신 뮈스카도 마셔보고 싶어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콩에서 한 모금 마시자마자 우웩 하며 다시 입대지 못했던 블러디 메리. 그것을 한 번 제대로 다시 마셔보고 싶어졌다. 당장 코냑 한 병 사와 하리보 곰과 지렁이 젤리를 풍덩 넣어버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적절한 음식과,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사람들과 나를 페어링 해서. 아무튼, 마셔. 마십시다.
(+) 전작인 <밤은 부드러워, 마셔>도 읽어보아야겠고, 초현실 주의자의 술을 이야기하며 나왔떤 <에르메스 수첩의 비밀>이라는 책도 궁금해서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아참참 한은형 작가님의 소설들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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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책에 대하여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