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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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를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권석천 작가님의 '철학'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우선 '최선'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첫 번째 의미로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두 번째 의미로 '온 정성과 힘.'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 책은 두 번째 의미에 좀 더 주목한다. 잘 살기 위해,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좋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할 수 있는 한의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삶을 마주하는 태도야말로 '철학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앙일 테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최고의 삶'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향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충실히 살아내는 '최선의 삶'을 위한 철학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p.8)

이 책의 묘미는 무엇보다 고루하고 지루하고 따분할 것만 같은 고대 철학의 고전을 부러 찾아 읽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다. 까마득한 옛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우리의 고민과 똑 닮은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아마 작가님이 오랜 기자 생활 동안의 경험을 녹여내어 철학을 우리의 삶에 쉽게 대입해 보고, 거기에서부터 어떻게 고민하고, 사고하고, 사유하고 깨달아 나아가야 할지 이끌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천 년이 흘러도 인간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조금은 잠재워준다. (한편으론 수천 년이 흘러도 인간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삶의 허무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열두 명의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에서 나에서 타인으로, 그리고 세상으로 시선을 이동시킨다. 1부와 2부에서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과 비교해 3부에서는 조금 그 힘이 약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아마 3부에서 소개한 철학자들의 이름이 1,2부에 소개된 철학자들이 비해 나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중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숙한 인간이라서인지 1부의 내용들에서 특히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 듯하다. 특히 '질문'하는 힘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본다. 내향형이라서 누군가에게 질문하기 꺼려졌다면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줄이라도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평생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충분히 질문하지 못한 채로 생긴 신념은 엉성하고, 삐뚤어져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남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짜 궁금한 것은 '궁금한 마음과 표정' 그대로 물어보라"는 말과 플라톤의 "초보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지?'하고 창피함을 느끼는 대신 '새로운 상황에서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남의 비웃음이 너무 두렵고, 실패가 너무나도 두렵다. 이 '남의 비웃음'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불필요한 행동뿐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라는 문장 속의 '불필요한 생각'일 것이다. 남의 비웃음이 두려워서, 실패가 창피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죽을 텐데, 그건 두렵지 않은가? 하고 나에게 계속, 질문해 보아야 할 일이다.


많은 작가의 책들과 모든 종류의 책들에 대한 독서가 

자네를 두서없고 불안하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게.

자네의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시 잡을 생각들을 끌어내려면, 

자네는 적은 수의 뛰어난 사상가들 사이에 오래 머물면서 

그들의 작품을 소화해야 하네. *세네카/독서의 방법, 15쪽 

(...)

세네카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과도한 독서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죠.

"그날 소화할 수 있는 한 가지만 고르라"고요.


열두 명의 철학자들 중 가장 나를 '멈칫'하게 만든 철학자는 바로 세네카였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당장의 내가 가장 마음에 걸려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딱히 '과도한 독서'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일단 한 달에 열 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읽기'의 제대로 된 마무리로 '서평'을 제대로 써 두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도무지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내 스스로가 참 싫은 요즈음이기 때문이다. 한 달에 열 권이 누군가에겐 '과도'하지 않은 수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과도한 수'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지 않고 제대로. 세네카의 글들을 다시 곱씹어 읽으며 또다시 다짐해 본다. (항상 다짐하지만 그렇지만 매일매일 재미있어 보이는,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 자꾸만 자꾸만 출간되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이 책은 그래도 서평을 남기며 소화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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