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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3
막심 고리키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평점 :
공산혁명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던 1906년. 순수하게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했을 막심 고리키의 작품, <어머니>를 읽었다. 자본가, 권력자들의 착취에 고통받는 러시아 인민들의 삶을 구원할 혁명을 꿈꾸던 그가 삶의 끝부분에는 결국 소비에트 문학계의 권력가로 군림하다 죽었다는 사실은 조금 김빠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사람들 앞에서 겁 없이 말하지 마라! 사람들을 조심해야 해. 다들 서로 미워하니까.
욕심과 질투심으로만 살아가거든. 악한 일을 하는 걸 다들 기뻐해.
네가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판단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널 미워할 거고 결국엔 널 망칠 거다!
"악한 일을 하는 걸 다들 기뻐해." 파벨의 어머니의 이 말을 읽으며 나는 소란스럽고 천박한 말을 쏟아내는 유튜버들을 떠올렸다.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가짜 언론사들을 떠올렸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어떤 종교인을 떠올렸다. 돈 앞에 더욱더 천박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안타까운 죽음에 제대로 애도할 시간조차 갖지 않고 지원금에 대한 얘기부터 지껄이는 천박한 정치인들과 뻔뻔스러운 태도로 교묘하게 죄를 빠져나가는 한 장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무뢰한 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악한 일을 하는 걸 기뻐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600페이지 남짓 되는 이 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100여 년 전의 러시아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지 않은가, 하고 자주 탄식했다.
사실 '러시아 혁명',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에픽 속의 차갑고 서늘한 모습, 혹은 전함 포템킨의 그 소리 없는 절규의 모습뿐이라서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책을 읽었고 그래서 유난히 더 러시아의 시대 상황이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이미지의 힘은 참으로 강력하기도 하지... 아무튼,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들과 그의 동료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아들의 석방을 위해서 동참했을 뿐이다. 하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며 "짐승처럼 살면서 자기들이 잘 산다고 거들먹거리는( p.161)"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모든 것이 이상하게 평온하고 불쾌하게 단순한(p.178)"상황을 깨달아 간다. 어머니가 만나는 수많은 '파벨의 동료'들은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제각각 다른 시선과 의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혁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어머니의 '모성'을 통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권력, 그 권력 앞에 무너지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권의 본질을 향한 메시지. 이 소설이 오랜 시간 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삶이 있고, 아이들을 위해서 세상이 있는 거예요.....!(p.296)"라는 어머니의 말은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 우리가 두려워하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내일의 아이들에게만큼은 이 고단한 시대를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더 좋은 세상을 더 정당한 세상은. 더 이상적인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그 순수하고 숭고한, 단순한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소설을 읽으며 했다. 그리고 몇 해 전 겨울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던 마음과 지금 이 순간에도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소설 속 어머니의 마음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로 이어졌다.
'사회주의 소설'이라는 단어로 이 소설을 가두기엔 너무 아까운 문장들이 많았다. 어떤 '-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돈과 권력과 욕망의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이 소설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어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세상에 얼마나 놀라운 것들이 많이 살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지, 그리고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p.375)"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좀 더 오래 감동할 수 있는, 미래로 이어갈 수 있는 가치를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선 나부터.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