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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 예술 중독자 ㅣ 현대 예술의 거장
메리 V. 디어본 지음, 최일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평점 :
그 유명한 타이타닉 호에서 사망한 벤자민 구겐하임의 딸이며, 독일계 명문가 구겐하임 가문의 막강한 자금력으로 전쟁중인 유럽의 한복판에서 "하루에 그림 한 점"을 구입하며 자신만의 컬렉션을 구축해나간 컬렉터.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짤막한 페기 구겐하임의 전부다. 책을 읽고 나니 대체로 사실이지만 몇몇 부분은 단순화의 오류가 있는 문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2006년 초판 출간 이후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16년 만에 새롭게 단장하여 출간된 개정판, #을유문화사 의 #현대예술의거장시리즈 #페기구겐하임_예술중독자 를 읽었다.
페기 구겐하임은 어린 나이에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편안한 당대 사회가 이상적으로 그리던 그대로의 여성의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도 있었음에도 동시대의 여성들과는 다른 길로 힘차게 발을 내뻗는 모험을 즐기는 여인이었다. '정해진 길'로 가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있는 페기 구겐하임의 성격은 작품을 컬렉 하는 데에도 고스란히 그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알려지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화가들의 작품 활동을 후원하고, 검증되지 않은 작품을 컬렉 할 수 있는 예술의 길을 훤히 밝히는 밝은 눈. 이 책은 그녀의 이 밝은 눈이 그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 아님을,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고, 그 어떤 순간에도 '자기'를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였기 때문에 갖출 수 있었음을 그녀가 여러 사람과 나눈 서신과, 그녀에 대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야기한다.
나는 특히 책 초반부에 그녀가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각하는 부분이 정말 좋았다. '일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잃지 않는 예술가의 존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페기는, 물론 나와 같은 소시민처럼 이력서를 접수하고 압박면접을 버텨내며 간신히 취업한 것과는 다르지만, '선와이즈 턴'이라는 서점에, 물론 이 역시 돈 많은 자들의 놀이터 같은 느낌의 직장이었지만, 취직하여 그곳에서 아방가르드 문화를 흡수하고 예술에 관한 태도, 그리고 예술계에서 자신의 할 수 있는바가 무엇인지를 정립해나간 듯하다.
"페기의 갤러리는 매우 대중적인 사업이었다. 보도 자료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그녀가 머릿속에 그린 것은 단순한 갤러리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교환되는 곳이었고, 정체되고 동떨어진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는 예술의 공간으로서, 알려지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예술가들을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금세기 예술에 공헌하게 되는 그런 장소였다. 그 사명은 진실로 "과거를 기록하는"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봉사하는"것으로서, 당시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는 완전히 생소한 목표였다." - P.408
지금의 갤러리는 누구나 들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만, 1940년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러한 분위기를 처음 시작한 게 페기 구겐하임이었다는 것도 너무나도 짜릿하고 즐거운 사실이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작품을, 예술가들을 구출하는 데 힘을 보태고 사람들이 성공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던 예술가를 과감하게 후원할 수 있었던 여성. 그녀의 미술사적 역할을 제대로 쫓아가볼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을 읽으며, 언젠가 꼭 이탈라의 베네치아에 있는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그녀의 흔적을 직접 찾아볼 수 있기를 바라보았다. #별숲밑줄 #2022별숲책일기 #페기구겐하임 #을유서포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