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부살인업자, 소설가, 변호사, 건축가, 비행기 기장, 엄마와 아들과 비밀을 간직한 딸... 여러 명의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두서없이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딱 하나, 모든 인물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 3월 초,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가던 길, 비행기에서 끔찍한 난기류를 만난 경험이 있다는 점. 그리고 3개월 뒤, FBI가 주인공들을 찾아간다는 점. 1부의 마지막, 머릿속에 찍히던 점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난기류가 마치 복사기라도 되는 걸까. 3개월 전 난기류를 뚫고 도착한 비행기가, 다시 등장한다. 3개월이 지났지만, 지금 막 난기류를 빠져나온 비행기 안은 3개월 전의 시간 그대로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버렸고, 이로 인해 정부, 과학계, 종교계의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한다. 갑자기 두 명이 되어버린 243명의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떠한 이유로 나도 모르게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설은 그다지 기발한 상상력은 아니다. 하지만 에르베 르 텔리에 작가가 이 가설이 현실이 되었을 때, 어떠한 식으로 세상을, 나를, 원인을 알 수 없이 뒤늦게 복사되어버린 너를 '납득'시키고, '인정'할 것인가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주 흥미로웠다. 과학자들이 과학자의 방식으로, 정치가들이 정치가의 방식으로, 종교인들이 종교인의 방식으로 현상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매우 철학적인 한편 해학적이었다.

 

특히 추기경 두 명, 랍비 두 명(정통파와 자유파에서 각각 한 명씩), 정교회 사제 한 명, 이슬람 학자 세 명(수니파, 살라프파, 시아파에서 각 한 명씩), 금강승 승려 한 명, 대승불교 승려 한 명 총 열 명의 종교인들의 대화가 무척 재미있었는데 그들에게 누군가 한 인물을 원자단위까지 동일하게 복제했다 하자 대뜸 구글의 소행이냐고 하는 장면에서 이미 이를 꽉 깨물었고, 이들이 3개월 만에 등장한 또 하나의 존재들이 과연 '창조물'인지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싸워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던 미국 대통령이 미키마우스도 사탄의 피조물이라는 말에 발끈하는 장면에선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미국 정부를 비롯한 서구 사회는 이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과 같은 사태를 최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성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고자 한다. (중국 정부의 처리와 비교해 보면 더욱더 이성을 잃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적 태도 역시 마지막 장에서 ...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인간의 자유 의지, 운명, 현실, 그리고 존재 이유에 관한 감동적인 실현"이라는 뉴욕타임스의 도서 평이 아주 적절하다. 오래간만에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침대 위에서도 한참 책장을 급히 넘기며 허겁지겁 읽은 책이었다. 갑자기 3개월 전의 나를 다시 마주하게 된 주인공들이 어떠한 결정을 하고, 어떠한 미래로 걸어갈지, <아노말리>를 읽어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