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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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온 전시를 잘 기록하고 싶어 미술 관련 책을 읽고 있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한겨레출판 인스타그램에서 이 책의 서평단 모집 글을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서둘러 저요! 저요! 요즘 보고 온 전시를 잘 기록하고 싶어서 미술 책에 푹 빠진 저야말로 서평단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 이렇게까지 적진 않았다.)라고 서평단 신청 접수를 했고, 지난 목요일 책을 배송받았다.


철학과 미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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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유하게 만드는 데 그 아름다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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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대하면서, 혹은 삶을 살아가면서 즐거운 철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끄러움을 다소 덜어내고 이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 사회는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매여 있습니다.

정해진 답을 기를 쓰고 찾기보다는 스스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로,

또 답이 될 수 있는 선택지를  획기적으로 늘려내는 철학자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들어가는 말 중


책의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철학,이라는 단어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졌던 책이 한결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느낌대로 너무 먼 곳을 바라보기보단 바로 지금 우리의 삶과 그림, 그리고 철학을 연결 짓는 작가님의 탁월한 솜씨가 매우 돋보이는 책이었다. 자신의 전공과 그림을 연결 지어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는 작가분들이 계셔서 정말 행복하다.


첫 챕터부터 그림 자체는 익숙하지만 단 한 번도 손을 클로즈업해 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그림 '천지창조'를 통해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던 니체를 그림 앞으로 불러오고, 영원회귀하는 우리 인생을 영원히 반복되어도 만족스러울만한 아름다운 삶으로 한 차원 고양시키자고,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드높이는 삶을 살자고 말하는 작가님의 글 솜씨에 감탄하며 책에 빠져들었다. 책가도를 바라보며 '가치 다원주의'를 이끌어내고 어린아이가 사과를 따고 있는 톰 시에라크의 작품 '빨간 모자'에서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까지 이어지며 정치 국가의 사회계약설을 훑어낸다. 파울 클레 Paul Klee의 <상대의 지위가 더 높다고 믿는 두 사람의 만남, 1903>으로 루소의 자연 상태를 풀어내는데, 그 괴이하고 코믹한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최근 다른 책에서 <앙겔루스 노부스>라는 그림으로 만난 적이 있었던 '파울 클레'가 좋아져 버리고 말았다. 파울 클레는 특히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서, 이 책에서 많은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앙겔루스 노부스>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스쳐 지나가는 화가 중 하나일 뻔했던 파울 클레가 이 책을 통해 이름을 단단히 기억하는 화가가 되었다.




Paul Klee | Two Men Meet, Each Believing the Other to Be of Higher Rank, 1903

이미지 출처 :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62643



작가님은 위의 그림, <상대의 지위가 더 높다고 믿는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루소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교와 허영의 문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 비교가 단지 비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리 두기며 혐오로 번지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p.107)'는 문장의 서늘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뒤에서 정의의 여신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 이야기를 좀 더 심화시키는데, 아파트 브랜드나 타는 차, 가지고 있는 가방이나 옷차림 등으로 '전혀 필요 없는 곳에까지 구석구석 눈가리개를 치워놓고는 타인을 훔쳐보고 재단하려는 (...) 감아야 할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날카롭게 쳐다보아야 할 곳에서 눈을 감는(p.186)'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곱씹어 생각하게 만든다.



클림트가 작업한 오스트리아 빈 대학 강당의 천장 <철학>, <의학>, <법학>을 모호한 개념의 반대되는 이미지를 통해 더 강렬하게 본질을 드러낸다고 설명하며 철학자 '주디스 슈클라'의 사상을 소개하고,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파울 쿨레의 그림들을 여럿 소개하며 '관념을 눈에 보이게 하는 작품들.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띄우고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들(p.196)'의 매력을 엿보았다. 나는 실은 지독한 허무주의자이면서 냉소주의자인데,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내내 거기에서 머무르지 말라고, 한 차원 더 나아가 만물을 유쾌하고 성스럽게 긍정하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다시 나아가라고 말해준다.



인간은 비어있는 존재다. 

어느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불행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불행한 순간이 나를 지나갈 뿐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 아니라 악한 마음이 잠시 나를 스쳐갈 뿐이다.

나는 명예로운 인간이 아니라 명예가 잠시 나에게 와서 머물 뿐이다.

우리가 비어있다는 점, 딱딱한 돌이나 껍데기처럼 굳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존재로 말랑하게 변신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점은 

우리 삶을 한층 다양하고 즐겁게 한다.

비어 있는 구멍을 좋은 것으로 채우려고 노력하고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

이것이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P.208


어제까지는 냉소주의자였을수도 있다. 불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우리는,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자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가슴속에 응어리져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변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변할 수 있다... 그림을 보는 일, 책을 읽는 일, 좋은 음악을 듣는 일, 그런 일들이 결코 무용한 일이 아닌 이유는 그것에 있지 않을까. 마주하고, 읽고, 듣고 거기에서 얻은 감동, 기쁨, 혹은 불쾌함, 충격. 그런 것들로 내 비어있는 구멍을 채우려 노력하며 좋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제대로 된 질문을 통해 더 아름다운 내일로 걸어나가고 싶은 허기진 사람들이 이진민 작가님이 풍성하게 차려낸 식탁 앞으로 더 많이 초대받았으면 좋겠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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