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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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시인님의 <소란>을 읽었다. 난다 출판사에서 새 옷을 입고 재출간되는 이 책을 향한 편집자분들의 소란스러운 애정이 담뿍 전해져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참아보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소란스러운 감정의 소리에 함께 행복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책을 받아보니, 단단한 커버 위에 인쇄된 조셉로루소의 그림속 연인의 뒷모습에서도, 그런 소란스러운 행복의 기운이 은은하게 전해져왔다. 그런 은은함과 잘 어울리는 톤 다운된 민트색 가름끈은 또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시인님이 쓰신 개정판 서문 속의 "진짜 삶은 '어림'이 깃든 시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어림에서 멀어집니다." 이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나는 언제부터, 얼마나, 어림에서 멀어져 왔을까. 언제부터 마음속의 소란을 그저 잠재우려고만 해 왔을까. 사랑해서, 설레어서, 혹은 아파서, 슬퍼서. 소란스러워지던 마음을 침묵하게 만들어버렸던-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했던, 애써 능숙한척, 별 거 아닌 척, 괜찮은척 하며 서툴게 어른 행세를 했던 지난 시간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너무너무 아쉬워졌다. 우리, 모든 감정 앞에서 '어림'을 잃지 말자. 그 마음의 소란 속에서 '결국 뭐라도 얻을(p.13)'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시인님의 마음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사랑과 행복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의 마음들을 적어내려간 아기의 발간 볼 같은 포동포동한 행복의 문장들도 좋았지만 이상하게 슬픔의 문장들에 더 마음이 갔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서 결국 푸르른 잎사귀를 틔워내는 옹골진 새순같은 문장에 담긴, 슬픔속에서 끝내 긍정의 힘을 이끌어내는 강하고 단단하지만 선하고 우아한 마음을 마주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좋은 문장들 위에 인덱스 테이프를 붙이고, 또 붙이다 보니 수두룩하게 오렌지빛 책갈피가 생겨버렸다. 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뻐근함이 느껴질 때면 책장에서 <소란>을 꺼내어 들고 싱싱한 오렌지빛 문장들을 오물오물 씹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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