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참 좋아'라는 동화책이 있기에, 여섯살 짜리 아들에게 물었다.

나: 넌 니가 참 좋으니?

아들: 음...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어요.

나:어떨 때 싫은데?(역시 긍정적인 건 당연한 걸로 치부하고, 부정적인 것에 관심을 더 보였다)

아들:이빨이 썩으니까 사탕을 안 먹어야 되는데, 내가 엄마를 막 졸라서 사탕 사먹을 때요.

마음 한켠이 싸~해 왔다. 그렇구나. 저렇게 조그만 녀석도 자신에게 바람직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알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자신에게 실망하는구나.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제력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에게 넘겨 줘버린 나에게 자책감이 밀려왔다. 쉬기 위해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떼쓰면 그냥 들어줘버린 나. 그렇지만 전처럼 심하게는 아니다. 그저 안쓰러울 뿐. 나도 아이도. 그리고, 뭐, 치과의사가 있으니까.^^

이 이야기를 게임 좋아하는 친구에게 했더니, 종종 인터넷 고스톱을 하는데, 시작할 때는 잠깐만 하자 하고 결심하고선, 새벽 두세시까지 하고나면 후회스럽고 자신에게 실망스럽고 그렇다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그리고, 대체로 바람직한 행동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러니까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 아닐까? ^^

과거의 경험과 나이로 인한 한계, 기질, 현재 환경 등등을 고려할 때,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걸 거다 -라고 말한 후배의 말이 마음속에 늘 남아있다.

다만, 돌파구를 찾고 싶지만 못 찾아서, 혹은 알지만 실천이 어려워서 그럴 뿐. 혹은 아직 때가 안되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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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라. 참된 축하는 정신 나간 mindless것임을!

자신의 영혼에 귀기울일 때 너희는 무엇이 자신에게 "최선"인지 알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진실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진실인 것만을 따라 행동할 때, 너희는 너희의 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중이고, "과거의 진실"에 근거한 체험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지금의 진실"에 근거한 체험을 강조할 때, 너희는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네가 선택한 현실을 창조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느냐고? 그것은 네가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리를 깨달아라, 그러면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니.

그런데 일단 네 진실을 깨닫고 나면, 그걸 두고 마음을 자주 바꾸지 않도록 하라. 이렇게 되는 건 네 정신이 무엇이 "최선"인지 알아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걸 그만둬라! 정신에서 벗어나라. 네 감각으로 되돌아가라!Get back to your sense!

"분별력을 되찾아라"Get back to your senses고 할 때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네 생각은 말 그대로 생각일 뿐이고, 정신의 구조물, 네 정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일 뿐이다. 하지만 네 감각이라면-그것은 지금 이 순간 실재하는 것이다.

감각은 영혼의 언어이고, 네 영혼은 네 진실이다.

자, 이제 그 모든 게 아귀가 딱딱 들어맞지 않느냐?

당신 말씀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느낌들까지도 표현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느낌은 부정적이지도 파괴적이지도 않다. 그건 그냥 진실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자신의 진실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너희가 자신의 진실을 사랑으로 표현할 때, 부정적이고 위험스런 결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행여 그런 결과들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대개 다른 누군가가 부정적이거나 위험한 방식으로 너희의 진실을 체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라면 너희로서는 그런 결말을 피할 방도가 별로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진실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명백히 그다지 적절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한다. 그들은 불쾌한 일을 일으키거나 그런 것에 직면할까봐 무척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진실을 철저히 감춘다.

잊지마라, 메세지를 얼마나 잘 받는가는 메세지를 얼마나 잘 보내는가만큼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네 진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는 네 책임이 아니다. 너는 단지 그것이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만 보장할 수 있다. 여기서 얼마나 잘이라는 게 단지 얼마나 명확하게란 뜻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얼마나 사랑으로, 얼마나 자비롭게, 얼마나 예민하게, 얼마나 용기 있게, 얼마나 완벽하게란 뜻이 들어있다.여기에는 半만의 진실이라든가 "잔혹한 진실", 혹은 "평이한 진실"조차 들어설 여지가 없다. 여기에 존재하는 건, 하늘이 너를 굽어살피사 진실과 진실 자체와 오직 진실 뿐이다.

사랑과 자비라는 신성들을 들여오는 게 "하늘이 너를 굽어살피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청한다면, 나는 언제나 너희가 이런 식으로 교류하게끔 도울 것이기에.

그렇다, 소위 가장 "부정적인" 느낌들까지 표현하라. 하지만 파괴적으로 하지는 마라.

부정적인 느낌들을 표현하지(즉 밀어내지) 않으면, 그것들을 사라지게 만들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 느낌들을 가두게 된다. "갇힌" 부정은 몸을 해치고 영혼에 짐을 지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품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그 사람이 몽땅 듣는다면, 그런 생각들이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전달되더라도, 그건 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나는 네 부정적인 느낌들을 표현하라(밀어내라, 제거하라)고 했지, 어떻게 혹은 누구에게 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모든 부정을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런 느낌들을 그 사람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 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순수성이 손상되거나 다른 사람이 거짓을 믿게 되는 경우 뿐이다.

부정은, 설사 그 순간에는 그것이 네 진리처럼 보이더라도, 결코 궁극의 진리를 나타내는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치유되지 않은 네 부분에서 생긴 것일 수 있다. 아니, 사실 그것은 항상 그렇다.

이 부정들을 밀어내고 그것들을 풀어놓는 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들을 풀어놓을 때, 즉 그것들을 밖으로 밀어내어 네 앞에 놓을 때에야, 비로소 너는 자신이 정말로 그것들을 믿는지 판단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명확하게 그것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추한 것이라도 일단 표현되고 나면, 너는 그것이 더 이상 "진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발견할 것이다.

두려움에서 분노에 이르기까지 표현된 모든 느낌들에서, 너는 그것들이 일단 말로 표현되고 나면, 그것들은 더 이상 네가 진실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발견한다.

이런 식으로 느낌은 농간을 부릴 수 있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이긴 하지만, 그것이 네 마음이 만들어낸 어떤 모조품은 아닌지, 네가 과연 자신의 참된 느낌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떤 느낌들은 참된 느낌들, 즉 영혼에서 태어난 느낌들이지만, 어떤 느낌들은 모조 느낌들이다. 이것들은 너희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 느낌들이다.

달리 말해 그것들은 전혀 "느낌"이 아니다. 그것들은 생각이다. 느낌으로 변장한 생각들.

이런 생각들은 너희의 이전 체험과 남들을 관찰한 체험에서 나온다. 누가 이빨을 뽑을 때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고 나면, 너희도 이빨을 뽑을 때 얼굴을 찡그린다.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어쨌든 얼굴을 찡그린다. 너희의 이런 반응은 현실과는 무관하다. 단지 남들의 체험이나 예전에 너희에게 일어난 일에 근거해서 너희가 현실을 지각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일 뿐이다.

인간 존재로서 겪는 가장 위대한 도전은 '지금 여기가 되는 것'. 상황을 꾸며내길 그만두는 것이다! 지금pre-sent순간(너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에게 "보낸"sent 순간)에 대해 생각하길 그만두어라. 그 순간 속에 있어라. 기억하라, 너희는 이 순간을, 엄청난 진실의 씨앗을 품고 있는 그 순간을 하나의 선물로 자신에게 보냈다는 걸. 너희가 기억해내고 싶어하던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도 그 순간이 도착하면 너희는 당장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속에 있는 대신, 너희는 그 순간 밖에 서서 그것을 판단하곤 한다. 그러고 나서 너희는 다시 반응한다re-acted. 다시 말해 너희는 예전에 했던 식으로 행동한다.

이제 이 두 단어를 잘 살펴보라.

 REACTIVE(반응하는)

 CREATIVE(창조하는)

이 둘은 같은 단어이다. 단지 "C"만 움직였다. 그러니 너희가 매사에 정확하게 "C"를 놓을 때 너희는 '반응하지' 않고 '창조하게' 될 것이다.

...삶은 창조과정이다. 그런데 너희는 줄곧 그게 마치 재연 과정인 것처럼 살고 있다.

.............................

친구나 상담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인 것 같다. 일단 무엇이든-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상대방에게 직접 부정적인 느낌을 이야기하기 전에, 검토하는 과정이 때로 필요하다. 작은 느낌들은 그냥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라지기도 하고, 큰 것들은 조금 정돈되니까. 정돈된 후 이야기하면 파괴적인 힘이 줄어들고 창조적인 힘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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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양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반드시 폐지되어야 했던 호주제! 드디어 호주제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호주제폐지 이후의 변화는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호주제 폐지, 무엇이 달라지나요?

1.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구성원 모두가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로 된다.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가족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나,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와 가족을 구분하던 법적 개념이 철폐되고 호주제로 인해 법적, 사회적으로 2차적 존재에 머물렀던 우리 사회의 어머니, 아내, 딸들인 여성의 인권이 회복된다. 또한 수직적이고 차별적인 가족관계에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족관계 및 혼인관계로 변하게 될 것이다.

2.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며, 양성평등하게 규정된다.
현행 법에 의하면 호주를 기준으로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민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에 입적한 자를 가족으로 하지만, 민법개정안이 통과되면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그리고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그 범위가 확대된다. 따라서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는 며느리와 사위,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처남, 처제까지 가족에 포함된다. 또한 호주 대신 본인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양성평등하게 가족의 범위가 정해진다.

3. 자녀에게 아버지의 성(姓)과 본을 강제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성을 원칙으로 한다.
현행법상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부성(父姓)강제를 완화하였다. 개정민법에 의하면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원칙으로 하되, 부모가 혼인신고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협의한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된다. 협의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문제점이 있으나, 법적 강제성을 철폐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4. 형제,자매간에 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혼인신고시 아버지성 또는 어머니성으로 쓰기로 결정이 되면 그 부모에게서 출생한 자녀는 결정된 하나의 성을 쓰게 된다. 따라서, 형제자매간은 통일된 성을 쓰게 된다. 처음에 아버지의 성을 쓰다가 중간에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기는 불가능하고,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야만 성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아버지가 혼인외의 자를 인지하여도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현행법상 어머니의 호적에 올리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던 혼인외의 자를 아버지가 인지하게 되면 아버지의 호적으로 옮겨지고 성도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했었으나, 개정민법에 의하면 부모의 협의에 의하여 자녀가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인지하기 전의 성과 본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미혼모가 자녀를 키우다가 친아버지의 인지신고로 자녀의 호적이 옮겨지고 성이 바뀌던 불합리함을 제거하고 앞으로는 부모 협의로 어머니 성을 계속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 재혼가정의 자녀는 새아버지의 성을 쓸 수 있다.
현행법상 자녀는 반드시 친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어 재혼가정에서 아내의 전혼자녀는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학교생활 등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등 자녀복리의 저해요인이 되었다. 개정민법이 시행되면 재혼부부는 친양자 입양을 청구하여 자녀에게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할 수 있다.

7. 재혼가정에서 배우자의 전혼자녀는 친자로 공시된다.
혼인기간 1년 이상 된 재혼부부가 배우자의 전혼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게 되면 그 자녀는 새아버지의 성을 따를 뿐만 아니라 발급되는 신분등록부에도 친자로 공시된다. 신분등록부 원부에는 입양사실이 기재되지만 원부를 발급하는 일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엄격히 제한되므로 사생활이 보호된다. 친양자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는 자녀 나이는 15세 미만자이고 친생부모가 친양자 입양에 동의할 것을 요건으로 하며 친양자로 되면 친생부모와는 법적으로 부모, 자식관계가 완전히 단절된다.

8. 입양제도를 개선하는 친양자제도가 도입된다.
친양자제도는 재혼가정 뿐만 아니라, 혼인기간 3년 이상 된 부부로서 입양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따라서 입양시설 등에서 자를 입양하는 경우에도 신분등록부에 친생자로 공시된다. 새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 경우에도 친생부모와는 법적으로 부모, 자식관계가 완전히 단절된다.

9. 성 변경의 가능성은 있으나, 무조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정민법에 의하면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 어머니, 또는 자녀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바꿀 수 있게 된다. 성을 변경할 여지는 인정되지만, 가정법원의 엄격한 판단에 의하여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면 자녀의 복리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쓰기를 거부한 경우 등이 해당한다.

10. 호적 등, 초본 대신 새로운 신분등록부가 사용된다.
민법개정안이 통과되어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를 기준으로 하여 가별로 편제되었던 호적은 폐기된다. 새로운 신분등록법에 의해 마련된 신분등록부가 호적 등, 초본을 대체한다. 새로운 신분등록부에는 호주를 기록하는 난이 없어지고 호주 대신에 본인을 기준으로 하여 출생, 입양, 혼인, 이혼, 사망 등 출생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변동사항이 모두 기록된다. 또, 배우자, 부모, 배우자의 부모, 자녀, 형제자매 등의 인적사항이 기록된다. 다만 호주제 폐지의 법적 효력은 2008년 1월 1일부터 발생하므로 새로운 신분등록법 실시도 그와 같다.

11. 각 개인이 신분등록부의 기준인이 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를 기준으로 한 호적대신에 각 개인을 기준으로 하여 개인 한사람 한사람마다 신분등록부가 편제된다. 개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본적으로 검색이 가능하게 되고, 각 개인이 각자의 신분등록부의 주인이 된다. 결혼하더라도 아내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하는 대신에 자신의 신분등록부에 배우자의 인적사항을 기재할 뿐이며, 자녀 역시 아버지의 호적에 들어가는 대신에 자신의 신분등록부에 부모의 인적사항을 기재하게 된다.

12. 새로운 신분등록제에 의하여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하게 된다.
새로운 신분등록부에는 신분변동사항은 본인의 것만 기재되고, 부모 등 가족의 신분변동사항은 기재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부모의 이혼, 재혼 등 사실 여부가 기재되지 않고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아니하게 된다.

13. 호적등본 대신에 목적별 공부를 제출하게 된다.
상속관계 확인, 보험, 연금, 보상 등 수급자 확인, 기타 신원 확인을 위하여 제출하였던 호적등본 대신에 새로운 신분공시제에 의한 목적별 공부를 발급받아 제출하게 된다. 신분등록원부를 제출하는 것은 법에 의해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한하게 될 것이다. 보통의 경우 목적별로 가족사항, 혼인사항 등 필요한 공부(公簿)를 발급받아 제출하게 된다.

14. 새로운 신분등록부로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신분등록부 원부에는 본인을 중심으로 하여 배우자, 부모, 배우자의 부모, 자녀, 형제자매의 인적사항이 기재된다. 따라서 신분등록부상으로 얼마든지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사촌 이상의 관계는 현행 호적에서도 제적부 확인을 거쳐야 하는 사항이었으며, 전산화된 새 신분등록부에서 단계별 검색을 거치면 가능하다.

15. 족보는 문중에서 계속 기록, 보관하면 된다.
족보는 문중의 가계(家系)를 기록하는 사적인 기록부이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새로운 신분등록부가 호적을 대체하더라도 족보와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호주제를 폐지한 후에도 원하는 문중은 족보를 계속 기록, 보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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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으로 돌아온(?)지 일주일. 첫아이 돌 지나면서 거의 반이상 떨어져 살다시피 했다. 잠깐 같이 살았을 때는 시어머니 모시고 친척들이 자주 오던 때라서 단란한 가정생활이라 하기 힘든 시기였고.

왜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둘다 지기 싫어하고(성취와 힘에 대한 강한 욕구), 의존적이면서, 조건부 사랑을 받아온지라 서로의 다른점을 수용하기 힘든 상태였기 때문인 것 아닐까?

이제 내가 남편을 좋아하려 한다. (의지가 현실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선택하라.-신과 나눈 이야기 2편,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가) 그 사람과 아이들을 위해서 - 결국 내마음 편하자고.

그러려면 우선 한쪽 눈을 감고 남편의 장점을 바라보아야겠다. 자아가 강한 사람이 단점을 수용할 수 있다는데, 난 아직 거기까진 안되고  내 단점 수용도 되다 안되다 하는데, 내 단점 수용이 되고 나자신과 완전히 화해가 되고, '모든 것이 다 괜찮아' 라고 할 수 있어야 편안해 지겠지.

상담에서 내담자의 장점과 협력하라는 말도 들었고, 레지오 교본에서 나의 수호천사, 상대방의 수호천사와 협력하라는 말도 들었다.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의지와 집중과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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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뭘까?

단순한 '반응'에서 벗어나 '행동'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욕망'과 '반성'일까? 또 뭐가 있을까? 그걸 지속시키는 힘은 '의지' -그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어쨌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 아니면 '분노'인것 같다.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는 진정한 사랑, 조건없는 사랑을 받아보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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