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마라. 참된 축하는 정신 나간 mindless것임을!

자신의 영혼에 귀기울일 때 너희는 무엇이 자신에게 "최선"인지 알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진실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진실인 것만을 따라 행동할 때, 너희는 너희의 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중이고, "과거의 진실"에 근거한 체험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지금의 진실"에 근거한 체험을 강조할 때, 너희는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네가 선택한 현실을 창조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느냐고? 그것은 네가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리를 깨달아라, 그러면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니.

그런데 일단 네 진실을 깨닫고 나면, 그걸 두고 마음을 자주 바꾸지 않도록 하라. 이렇게 되는 건 네 정신이 무엇이 "최선"인지 알아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걸 그만둬라! 정신에서 벗어나라. 네 감각으로 되돌아가라!Get back to your sense!

"분별력을 되찾아라"Get back to your senses고 할 때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네 생각은 말 그대로 생각일 뿐이고, 정신의 구조물, 네 정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일 뿐이다. 하지만 네 감각이라면-그것은 지금 이 순간 실재하는 것이다.

감각은 영혼의 언어이고, 네 영혼은 네 진실이다.

자, 이제 그 모든 게 아귀가 딱딱 들어맞지 않느냐?

당신 말씀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느낌들까지도 표현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느낌은 부정적이지도 파괴적이지도 않다. 그건 그냥 진실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자신의 진실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너희가 자신의 진실을 사랑으로 표현할 때, 부정적이고 위험스런 결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행여 그런 결과들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대개 다른 누군가가 부정적이거나 위험한 방식으로 너희의 진실을 체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라면 너희로서는 그런 결말을 피할 방도가 별로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진실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명백히 그다지 적절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한다. 그들은 불쾌한 일을 일으키거나 그런 것에 직면할까봐 무척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진실을 철저히 감춘다.

잊지마라, 메세지를 얼마나 잘 받는가는 메세지를 얼마나 잘 보내는가만큼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네 진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는 네 책임이 아니다. 너는 단지 그것이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만 보장할 수 있다. 여기서 얼마나 잘이라는 게 단지 얼마나 명확하게란 뜻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얼마나 사랑으로, 얼마나 자비롭게, 얼마나 예민하게, 얼마나 용기 있게, 얼마나 완벽하게란 뜻이 들어있다.여기에는 半만의 진실이라든가 "잔혹한 진실", 혹은 "평이한 진실"조차 들어설 여지가 없다. 여기에 존재하는 건, 하늘이 너를 굽어살피사 진실과 진실 자체와 오직 진실 뿐이다.

사랑과 자비라는 신성들을 들여오는 게 "하늘이 너를 굽어살피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청한다면, 나는 언제나 너희가 이런 식으로 교류하게끔 도울 것이기에.

그렇다, 소위 가장 "부정적인" 느낌들까지 표현하라. 하지만 파괴적으로 하지는 마라.

부정적인 느낌들을 표현하지(즉 밀어내지) 않으면, 그것들을 사라지게 만들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 느낌들을 가두게 된다. "갇힌" 부정은 몸을 해치고 영혼에 짐을 지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품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그 사람이 몽땅 듣는다면, 그런 생각들이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전달되더라도, 그건 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나는 네 부정적인 느낌들을 표현하라(밀어내라, 제거하라)고 했지, 어떻게 혹은 누구에게 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모든 부정을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런 느낌들을 그 사람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 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순수성이 손상되거나 다른 사람이 거짓을 믿게 되는 경우 뿐이다.

부정은, 설사 그 순간에는 그것이 네 진리처럼 보이더라도, 결코 궁극의 진리를 나타내는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치유되지 않은 네 부분에서 생긴 것일 수 있다. 아니, 사실 그것은 항상 그렇다.

이 부정들을 밀어내고 그것들을 풀어놓는 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들을 풀어놓을 때, 즉 그것들을 밖으로 밀어내어 네 앞에 놓을 때에야, 비로소 너는 자신이 정말로 그것들을 믿는지 판단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명확하게 그것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추한 것이라도 일단 표현되고 나면, 너는 그것이 더 이상 "진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발견할 것이다.

두려움에서 분노에 이르기까지 표현된 모든 느낌들에서, 너는 그것들이 일단 말로 표현되고 나면, 그것들은 더 이상 네가 진실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발견한다.

이런 식으로 느낌은 농간을 부릴 수 있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이긴 하지만, 그것이 네 마음이 만들어낸 어떤 모조품은 아닌지, 네가 과연 자신의 참된 느낌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떤 느낌들은 참된 느낌들, 즉 영혼에서 태어난 느낌들이지만, 어떤 느낌들은 모조 느낌들이다. 이것들은 너희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 느낌들이다.

달리 말해 그것들은 전혀 "느낌"이 아니다. 그것들은 생각이다. 느낌으로 변장한 생각들.

이런 생각들은 너희의 이전 체험과 남들을 관찰한 체험에서 나온다. 누가 이빨을 뽑을 때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고 나면, 너희도 이빨을 뽑을 때 얼굴을 찡그린다.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어쨌든 얼굴을 찡그린다. 너희의 이런 반응은 현실과는 무관하다. 단지 남들의 체험이나 예전에 너희에게 일어난 일에 근거해서 너희가 현실을 지각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일 뿐이다.

인간 존재로서 겪는 가장 위대한 도전은 '지금 여기가 되는 것'. 상황을 꾸며내길 그만두는 것이다! 지금pre-sent순간(너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에게 "보낸"sent 순간)에 대해 생각하길 그만두어라. 그 순간 속에 있어라. 기억하라, 너희는 이 순간을, 엄청난 진실의 씨앗을 품고 있는 그 순간을 하나의 선물로 자신에게 보냈다는 걸. 너희가 기억해내고 싶어하던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도 그 순간이 도착하면 너희는 당장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속에 있는 대신, 너희는 그 순간 밖에 서서 그것을 판단하곤 한다. 그러고 나서 너희는 다시 반응한다re-acted. 다시 말해 너희는 예전에 했던 식으로 행동한다.

이제 이 두 단어를 잘 살펴보라.

 REACTIVE(반응하는)

 CREATIVE(창조하는)

이 둘은 같은 단어이다. 단지 "C"만 움직였다. 그러니 너희가 매사에 정확하게 "C"를 놓을 때 너희는 '반응하지' 않고 '창조하게' 될 것이다.

...삶은 창조과정이다. 그런데 너희는 줄곧 그게 마치 재연 과정인 것처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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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나 상담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인 것 같다. 일단 무엇이든-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상대방에게 직접 부정적인 느낌을 이야기하기 전에, 검토하는 과정이 때로 필요하다. 작은 느낌들은 그냥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라지기도 하고, 큰 것들은 조금 정돈되니까. 정돈된 후 이야기하면 파괴적인 힘이 줄어들고 창조적인 힘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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